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조사위)가 출범 전부터 ‘세금 도둑’ 누명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위를 도둑으로 몰고 간 이는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다. 1월16일 김 의원은 조사위 설립준비단의 직제·예산안을 두고 “이런 형식의 세금 도둑적 작태에 대해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슈를 제기했다. 설립준비단이 계획 중인 조사위의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금세 반박에 직면했다. 조사위에 상임위원으로 내정된 박종운 설립준비단 대변인(대한변협 추천)은 “김재원 의원의 발언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설립준비단은 여전히 관련 정부 부처와 협의 중이다”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조사위 규모(정무직 제외 120명)에 대해 “여성가족부나 방송통신위원회보다 크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건일 뿐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빠른 시일(최장 활동 기간 1년9개월) 내에 성과를 거둬야 하는 조사위 특성상 241억원 규모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세월호 조사위 흔들기’ 비판을 받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황전원 조사위 비상임위원.

야권과 조사위 주변에서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쪽은 김재원 의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본인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의 여당 측 주역이었으면서, 그 기준에 따른 직제·예산안을 ‘세금 도둑’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설립준비단 사칭 논란도 일었다. 이날 김 의원의 발언 직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이라는 발신자 명의로 ‘조사위 설립 추진 현황’ 문건이 여기저기 배포되었다. 그러나 설립준비단 측은 “해당 문건을 보도자료로 배포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고, 확인 결과 발신자의 이메일 주소는 김 의원 보좌진의 계정이었다. 설립준비단이 정부와 조율 중인 내부 정보를 김 의원 측이 공식 자료인 양 언론에 발송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자세한 자료를 요청하는 기자들이 많아 아예 공식 보도자료로 배포하려다 실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세금 도둑’이라는 표현은 빠르게 확산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세월호 참사 특별법과 조사위에 대해 본격적으로 힘 빼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프레임 싸움이다. ‘세금 도둑’ 프레임은 대중을 자극하기 쉽다. 최근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공제율 축소 등으로 증세 논란이 일면서 여론이 세금 문제에 더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특례’ 논란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유가족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것과 같다.

김재원 의원의 발언이 세월호 특위에 참여하는 여당 추천 인사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세금 도둑’ 발언 이후 조사위원회 내부에서도 직제안·예산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새누리당 추천을 받아 조사위 비상임위원으로 내정된 황전원 내정자는 1월18일부터 20일까지 연이어 성명을 내며 조사위 설립준비단 해체와 직제안·예산안 수정을 요구했다. 김재원 의원의 ‘세금 도둑’ 발언에 이어 ‘조사위 내홍’ 구도가 그려진 셈이다.

ⓒ연합뉴스‘세금 도둑’ 발언을 한 김재원 의원(맨 오른쪽)은 세월호 특별법 합의의 여당 측 주역이었다.

여당에서 추천한 다른 조사위 내정자들도 설립준비단 활동에 의문을 제기했다. 1월21일 조사위원 예정자 2차 간담회에서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으로 내정된 조대환 내정자는 설립준비단 해산 안건을 발의했다. 조사위의 기틀을 잡던 설립준비단의 활동을 조사위 산하 소위원회로 이관하자는 주장이었다. 차기환 내정자도 비공개로 예정되어 있던 간담회를 공개로 전환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본격적인 조사위 출범 전에 한 간담회였지만, 언론에 ‘내부 갈등’처럼 비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일베 게시물 퍼나르거나 공천 탈락했던 위원들

조사위 시작 전부터 설립준비단을 흔드는 것은 여권의 주도권 잡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설립준비단은 상임위원 내정자 5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여당 추천 위원은 조대환 변호사 1명뿐이다. 나머지 상임위원은 각각 유가족·야당·변협·대법원의 추천으로 내정되었다. 여당으로서는 주도권을 갖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비상임위원 내정자 12명을 합하면 그림은 달라진다. 비상임위원 가운데 여당 추천 인사는 총 4명, 4대1 구도에서 12대5 구도로 바뀔 수 있다.

여당 추천 비상임위원들의 면면도 만만찮다. 고영주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의 모태가 된 ‘부림사건’ 당시 공안 검사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고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정국과 관련해 “정부를 왜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여당 추천 위원인 차기환 변호사도 SNS에서 극우 사이트 ‘일간 베스트 저장소’ 게시물을 퍼날라 입길에 올랐다. 차 변호사는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달라는 유가족의 요구에 대해 SNS와 종편 방송에서 꾸준히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고 변호사와 차 변호사는 최근 옛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검찰에 고발한 ‘통진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에서 각각 상임위원장과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다른 두 내정자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거론된다.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해 7·30 보궐선거 당시 부산 해운대기장갑에 공천을 신청한 바 있다. 개인 명의로 설립준비단 해체 성명을 발표한 황전원 전 한국교총 대변인도 2012년 총선 당시 경남 김해을에서 공천을 신청했다. 지난해 12월15일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 같은 여당 추천 인사의 면면이 조사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조사위원으로서의 전문성보다 여당 의견을 얼마나 잘 대변할 수 있느냐가 추천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세금 도둑’ 발언과 뒤이은 설립준비단 해체 공세는 그런 성향의 인사들이 본격적인 세월호 조사위 흔들기에 나섰다는 의미로 읽힌다.

ⓒ연합뉴스차기환 변호사(왼쪽)와 고영주 변호사(오른쪽)는 세월호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사실 이 같은 ‘힘 빼기’는 특별법 설계 단계부터 일관되게 지적되어왔다. 지난해 여야 간 합의 단계부터 여당이 특별법의 효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은 조사위 위원장을 누구로 할 것인지와 유가족에게 특검 후보 추천권을 주는 문제로 막판 진통을 겪었다. 결국 유가족이 추천한 이석태 변호사가 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특검 추천 과정에는 유가족이 직접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제도를 만드는 단계에서 작동한 ‘힘 빼기’가 제도를 시행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조사위 설립준비단 박종운 대변인은 “지금까지 상임위원들끼리는 누구 추천인지와 상관없이 모두 한뜻으로 위원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의원의 발언 이후 여당 추천 상임위원 내정자(조대환 변호사)가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인다. 충분히 정치적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조사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조사위에 대한 견제는 구체적 활동과 더불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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