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다음 날에도 아침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한국 직장인들에게 낮잠은 사치다. 기껏 ‘휴게실’이 있더라도 상사 눈치가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서 직장 내 영어 강사로 일했던 정지은씨는 점심을 포기한 채 책상에 엎드려 잠든 직장인들을 보며 ‘회사 옆에 간이침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정씨에게도 한국의 ‘빡센’ 업무 문화는 고역이었다. 만나는 직장인마다 ‘잠 부족’을 호소했다. 그러다 문득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눈치 안 보고 낮잠 잘 수 있는 곳을 만들면 어떨까?” 마침 어머니가 여행 중 해먹(그물침대)에서 쉬던 모습이 떠올랐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카페 ‘낮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IN 윤무영

‘낮잠’은 음료 대신 시간과 공간을 판다. 1시간에 5000원, 30분 추가는 3000원이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이 몰려온다. 그렇다고 ‘낮잠’이 수면실 분위기는 아니다. 침대 대신 천장과 벽면에 해먹이 매달려 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잡생각을 하고자 몸을 기댄다. 최근에는 주변 상인과 북촌 나들이를 온 사람들도 ‘낮잠’을 찾는다.

정지은씨는 ‘낮잠’을 운영하면서 오히려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더 절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아침 9시에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분이었어요. 전날 철야를 하고, 다시 회사에 나가기 전에 잠깐 눈을 붙이러 찾아온 거죠.”

정해진 공간과 제한된 시간을 파는 장사라, 남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정지은씨는 수익이 안 나더라도 힘이 닿을 때까지 계속 ‘낮잠’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에 낮잠 문화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직장에 낮잠 복지가 있어야 해요. ‘낮잠’을 운영하는 건 일종의 복지를 제공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씨의 다음 목표도 많은 건물에 ‘낮잠’ 체인을 여는 것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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