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탈당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12월24일 신당 창당을 선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국민모임)이 주목받고 있다. 정 전 고문의 합류로 ‘선언’과 ‘연합’ 단계에 불과했던 ‘국민모임’이 정국의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국민모임’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이사장은 “어쩌면, 결정적으로 박영선 의원이 신당을 만든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국민모임의 발단은 지난해 8월7일 여야 간 세월호 특별법 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장에 모여든 이들 사이에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일었고, 정치를 정치권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동영 전 고문과의 교감도 이때 처음 생겨났다. 정 전 고문은 1월11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9월2일 광장 토론회가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주최한 세월호 특별법 토론회가 열렸고, 이날 토론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게 정 전 고문의 설명이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24일 ‘국민모임’이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정치세력화의 방법을 찾던 이들은 11월 초, 함세웅 신부를 주축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선언으로 그쳐서야 뭘 바꿀 수 있겠나. 직접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이 흐름이 12월24일 105인 선언 및 신당 창당 발표로 이어졌다. 정 전 고문과는 창당 발표 전후에 이미 신당 합류 및 향후 진로에 대해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모임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모습에 실망한 이들과, 생활 영역에서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분노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시민사회 인사들이 105인 선언에 합류했다. 정동영 전 고문 외에도, 정 전 고문과 함께 탈당한 김성호·최규식·임종인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가 신당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국민모임이 1월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개최한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 토론회는 이 같은 요구가 날것으로 드러났다.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제외한 대다수 패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을 지적하며 신당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민모임을 ‘신당’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아직까지는 단순 연합체에 불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첫 토론회를 마친 국민모임은 부산과 광주에서 토론회를 이어나가고, 1월 중에 신당추진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국민모임이라는 큰 틀의 시민사회 연합과 ‘신당추진위’를 통해 구축되는 정당의 영역을 함께 성장시키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자금·당원·인물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다. ‘평화생태복지국가’를 천명했지만, 강령이나 정치적 지향점이 구체화된 것도 아니다. 제1야당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촉구하는 것과 직접 ‘당’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지역 기반이나 조직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모집과 모금이 얼마나 이어질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처지에서는 국민모임이 껄끄럽다. 2월8일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에서 신당으로 관심이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고문이 중심을 잡고 신당 창당에 가속도를 낼 경우, 전당대회 이후 이탈자들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정 전 고문 측 관계자는 “국민모임이 아직 ‘선언’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선언’ 단계에도 이만큼 흔들린다는 게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진보 정당 재편 논의 불씨 댕긴 ‘국민모임’

‘제1야당’과 달리 진보 정당에서는 국민모임 출범을 계기로 진보 정당 재편 논의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유일한 원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정의당 내부 기류는 통합에 긍정적인 편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당내 최대 계파인 국민참여당계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정동영 전 고문에 대해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점은 있지만, 진보 정당 재편 논의에는 대체로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1월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국민모임 서울 토론회. 참석한 패널들은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좀 더 적극적이다. 1월15일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모임을 비롯한 진보 세력에 대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찾아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정의당의 창당 정신 중 하나가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정의당과 국민모임, ‘우리 지금 만나’? 참조).

노동당은 1월23일 당대표 선거 이후 공식적인 견해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나경채 후보는 국민모임에 긍정적인 반면, 윤현식·나도원 후보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당 안팎에서는 노동당이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대로 어떤 식으로든 국민모임과의 통합 논의 테이블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

노동당은 지난해 이미 진보 세력의 통합을 논의했던 ‘진보혁신회의’에 참여한 바 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 진보혁신회의를 이끌던 이들 중 일부가 국민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통합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되리라 보인다. 노동당 핵심 인사 몇몇도 국민모임과 꾸준히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모임의 첫 번째 시험대는 4월 보선이다. 당선자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야 ‘대안’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은 부족하다.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되, ‘국민모임 추진위’로부터 추대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만약 4월 재보선 이전까지 창당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경우 신당 추진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국민모임에서는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합류 여부가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천 전 장관은 1월14일 YTN 라디오에서 “거취 문제는 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이후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문재인·박지원·이인영 후보가 적극적으로 천 전 장관의 이탈을 막으려 하고 있다. 국민모임이 넘어야 할 수많은 벽 중 하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