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위 징계다. 상지대는 지난해 12월 정대화 교수(59)에게 파면을 의결했다. 학교 명예훼손·겸직 위반이 이유였다. 상지대 징계위원회는 정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해 신입생 모집 등에 피해를 끼쳤고, 학교에 알리지 않은 채 다른 회사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며 파면을 결정했다. 애초 이사회에서 중징계로 의견을 올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미성년자 성폭행 시도를 한 혐의의 교수에게 지난해 11월 해임 처분을 내린 것과 비교된다. 정 교수는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교육부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올해 2월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지만 학교는 당장 1월 중순까지 연구실 짐을 빼라고 했다.

어찌 보면 예정된 순서였다. 지난해 3월 김문기씨 둘째 아들 김길남씨를 이사장으로 선임한 다음, 8월 김문기씨가 총장이 되었다. ‘사학 비리’로 구속까지 되었던 인물이 21년 만에 상지대에 복귀했다(〈시사IN〉 제363호 ‘상지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기사 참조). 꾸준히 ‘김문기 반대’를 외쳐온 정 교수는 이미 지난해 11월4일 학교 이사회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했다. 그날 곧바로 학교 홈페이지에서 그의 아이디가 사라졌다. 같은 날 저녁, 상지대는 정 교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내일은 교수 사정으로 휴강한다고 연락했다. 그가 맡은 강의는 〈한국 정치론〉 〈민족과 통일〉 〈한국 정치의 재발견〉이었다.

ⓒ시사IN 조남진상지대학교 곳곳에 ‘사학 비리의 원조’ 격인 김문기 총장(전 이사장)의 치적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총장으로 복귀했다.

2014년 11월11일 오전 10시께, 정 교수는 〈한국 정치론〉 강의실로 들어갔다. 2~4학년 학생 80여 명이 듣는 교양 강의였다. 안보를 전공한 70대 대체 강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 앞에 섰다. 단식 8일째라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했지만 배에 힘을 꽉 주었다. “직위해제를 인정하지 않지만 법적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다. 양심에 따라서 한 행동을 옛 재단이 보복을 한 거라 생각한다. 총장은 아니지만 이런 혼란이 생겨 미안하다.”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이 흐려졌다. 옛 재단과 싸우며 각오하던 일이었지만, 그래도 하던 수업을 중간에 빼앗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와 학생들의 상황을 생각하니 순간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학생들이 책걸상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유

정 교수가 나가고 강의실에 들어가려던 대체 강사는 다시 한번 부탁을 받았다. 영문을 모르던 학생들이 자신들끼리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대체 강사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30분 토의 끝에 학생 60여 명이 대체 강사에게 사과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강의동 앞 정 교수의 천막 농성장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신청한 강의는 정 교수의 수업이라는 이유였다.

천막 강의라면 천막 강의고, 길거리 강의라면 길거리 강의가 시작되었다. 학생 수가 많아 모두 천막에 앉을 수가 없어서 강의실에서 책걸상을 들고 나와 길바닥에 두고 앉았다. 말을 크게 할 수 없는 선생을 배려해 마이크도 들고 나왔다. 정 교수로서도 특별한 일이었다. 출결 등으로 당장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학생들에게 왜 나왔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이 상황과 강의가 자기 인생에 오래 기억될 거라고 대답했다. 한국 민주화에 대해 가르치는 그날 수업의 주제는 6월항쟁이었다. 정 교수는 뜨거운 거리에서 이뤄진 민주화를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해나갔다. 문득 그의 인생에서도 오래 기억될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IN 조남진정대화 교수는 지난해 12월15일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최고 수위 징계인 파면 처분을 당했다.

화·수요일 강의라 다음 날도 학생들이 천막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날 강의할 시대는 김영삼 정부였다. 김문기씨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1993년 당시 이사장이었던 김씨는 김영삼 정부의 사정 1호로 감옥에 들어갔다. 부정입시 문제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으면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정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사학 민주화를 빼고 말할 수 없고, 그 중심에 상지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완성품이 아닌 까닭에 끝없이 가꾸고 감시하고 챙겨야 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민주화 퇴행이 상지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지대 사태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11월의 쌀랑거리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지만, 강의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도는 더 좋았다.

ⓒ시사IN 조남진정대화 교수는 지난 15일부터 상지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농성 아닌 농성'을 벌이고 있다. 파면되었기 때문에 연구실을 폐쇄하겠다며 드릴까지 들고 온 학교 쪽에 맞서, 스스로 연구실에 갇혀버렸다.

다시 학교가 나섰다. 두 번째 강의 이튿날인 11월13일 학과로 공문을 보냈다. ‘직위해제된 정대화 교수의 강의는 불가하며 학생들은 출석 일수 부족으로 피해가 예상됩니다. 해당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협조해주길 바랍니다.’ 학생들 학점을 볼모로 정 교수의 천막 강의를 흔들었다.

정 교수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했다. 직위해제 무효 가처분 소송을 할 테니 우선 수업에 들어가라고 했다. 한 주 만에 천막 강의를 접었지만 정 교수는 내심 가처분 소송에 자신이 있었다. 징계위원회의 징계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학교가 앞서 직위해제를 해버린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하면 맡은 수업은 자신이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가처분 소송은 계속 지연되었다. 소송 상대인 학교 쪽이 법정에 잘 출석하지 않았다. 기일도 빨리 잡히지 않았다. 그사이 학기는 끝이 났고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15일 결국 파면당했다. 교육부의 특별 종합감사가 끝나고 나흘 뒤에 나온 학교의 결정이었다. 지난해 7월 김문기씨가 상지대 이사로 선임되고 연이어 8월 총장이 되자, 교육부는 김씨의 이사 선임을 거부하고 총장직에서도 물러나라고 촉구했다(이사 선임은 교육부 소관이지만 총장 임명은 소관 업무가 아니다). 김씨가 꼼짝도 하지 않자 교육부가 11월24일부터 3주간 감사에 들어갔다.

11월4일부터 ‘김문기 총장 사퇴’를 걸고 단식에 들어갔던 정 교수는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단식”을 교육부 감사를 계기로 마무리지었다. 단식 16일 만이었다. 2010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이사 추천 몫에 대해 항의하며 단식한 지 4년 만이었다. “단식 전문가도 아닌데, 역사의 반복치고는 웃기는 장면 아닌가?(11월8일 정대화 페이스북)”라고 반문하기도 했고, “곡기를 끊으면 기억력이 감퇴하나? 연구실 비번이 가물가물해서 한참을 씨름했다. 이메일 ID를 잘못 입력하기도 했다(11월9일 정대화 페이스북)”라고도 썼다. 몸의 변화와 싸우며 진행한 단식이었다. 단식을 접을 만큼 교육부 감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대로 감사를 한다면 김문기 총장의 전횡과 무리수를 지적할 거라고 믿는다.

ⓒ상지대 총학생회 제공정대화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이 파면당한 정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천막 농성장에 모였다.

그렇다고 감사 결과만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기간에도 정 교수는 바쁘게 움직인다. 학기 중에는 매일같이 철거된 천막 농성장을 다시 세우는 게 일이었다. 밤이 지나고 나면 비어 있던 천막 농성장이 무너져 있었고, 자리를 비운 사이 칼과 가위로 난자된 비닐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누구 짓인지 짐작이 되었지만, 묵묵히 다시 천막 농성장을 세웠다.

조·중·동도 ‘인정’한 자격 없는 총장

방학인 1월에는 천막 농성을 잠시 접었다. 대신 동료 교수, 학생, 학교 관계자 등과 함께 서울 국회와 세종시 교육부 청사를 드나들며 상지대 상황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한 세월 반복되어온 상지대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는 이들에게 상지대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설명하고, 야권이나 시민단체 주장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반문에는 ‘김문기 상지대 총장 자격 없다’라는 내용이 담긴 지난해 8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설을 들이민다. 교육기관인 학교에 비리 전력자를 들이는 게 맞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라는 게 정 교수의 말이다.

지치지 않을까. 긴 싸움을 해온 교수들 사이에서는 “천막 농성·단식·삭발까지 다 했는데 아직도 이런 상황이다. 이제 남은 건 굴뚝에 올라가는 것밖에 없는데, 학교에는 굴뚝이 없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간다. 정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치면 좀 덜하면 되지. 잠깐 쉬기도 하고.”

“내무반에 한 사람이 깨어 있으면 100명이 편히 잔다. 다 자버리면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명색이 그래도 상지대인데. 우리 정문에 걸려 있는 빨간 현수막이 있었어. ‘여기는 대학 민주화의 성지 상지대입니다.’ 그 말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누구라도 뭐라도 해야 하니까.” 그는 자신을 불침번에 비유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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