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1월2일 소니 영화사 해킹과 관련해 대북 제재 조치를 취했으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새해를 시작하며 하와이 휴가지에서 워싱턴에 복귀하기 전,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동해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핵심 정보부서인 정찰총국, 광업개발공사, 단군무역회사 등 3개 기관과 개인 10명에 대해 미국 금융 시스템의 접근과 개인 간 거래를 금지했다. 이와 함께 미국 재무부는 앞으로 미국의 민간 기업이나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이버 공격에도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행정명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각각 행정명령을 통해 대북 제재 조치를 내렸다. 이미 세 번째인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005년 6월 미국과 북한 간 모든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의 1∼3차 핵실험에 맞서 대북 제재 결의(1718호·1874호·2094호)가 채택되기도 했다. 북한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부터 북한 최고 지도자를 위한 사치품 수출 금지에 이르기까지, 인도적 항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품에 대한 제재가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1월7일 서울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가 대북 제재 조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대북 제재를 통해 이렇다 할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 적은 없었다. 북한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그에 상응한 보복 조치로 일관해왔다. 특히 북한 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악순환이 반복됐다. 미국은 2005년 9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하던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여파로 BDA에 있던 북한 계좌(2500만 달러 규모)가 동결되자, 북한은 2006년 10월6일 1차 핵실험으로 응수했다.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2009년 5월과 2013년 2월 각각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때마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주도 아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이 강행한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2013년 2월 3차 핵실험도 가장 혹독한 제재를 받던 시점에 진행되었다.

이번 소니 영화사 해킹에 대한 대북 제재를 두고서도 실효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정찰총국은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 나온 2010년 8월의 대북 제재 때도 포함된 바 있다.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은 현재 외부 지원이 많이 필요하고,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라 새로운 제재가 가해진다면 다소 피해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제재 대상에 오른 개인 10명의 경우 북한 지배 계층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고 가짜 이름을 쓸 가능성도 높아 제재의 실효성이 적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소니 영화사 해킹이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확산되는 와중에 이를 잠재우기 위한 시도로 이번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가 나왔다는 의혹까지 일면서 오바마의 행정명령은 정당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시사IN 자료2005년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위)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는 등 강경한 대북 제재를 취했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매번 반복돼왔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맞서 유엔은 2009년 6월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당시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현 주한 러시아 대사)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2009년 6월13일자)에서 “제재가 (북한에) 아프긴 하겠지만, 북한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고통을 주지는 않으리라 보인다”라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대북 제재는 그 자체만으로 북한의 행동을 바꾸지 못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이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권 밖에 있는 데다 중국이라는 막강한 우방이자 경제 원조국이 버티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세 번 모두 참여했지만 북·중 관계를 고려해 적극적인 실행은 미뤄왔다. 게다가 미국과 유엔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무역 관계는 2011년 60억 달러(약 6조5800억원)에 달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가 무색하다는 방증이다.

설날에 맞춘 이산가족 논의 등 차질 빚을 수도

미국이 지난 60년의 경제 제재가 실패했음을 인정하면서 최근 쿠바와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제재를 푼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쿠바는 1960~1980년대 미국의 제재에 맞서 미국의 우방인 일본·영국·스페인 등과의 교역을 통해 활로를 찾았고, 1990년대 들어 후원국이던 옛 소련이 멸망하자 중국과 베네수엘라를 교역 파트너로 끌어들여 미국의 경제 제재를 이겨냈다. 북한도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한 미국의 대북 제재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대북 제재가 비록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실효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북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졌으리라고 본다. 중앙정보국에서 북한 문제를 분석하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으로 옮긴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외교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2005년 9월 BDA에 대한 제재에 대해 “북한의 특정 계층을 겨냥한 금융 제재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대북 제재안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지난 10년 동안 꿈쩍하지 않던 이란이 지난해 결국 핵 협상에 복귀한 것도 금융 제재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오히려 북한의 일부 무역업자들은 더 부를 축적했다는 의외의 주장도 있다. 하버드 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존 박 연구원이 안보 전문 학술저널 〈계간 워싱턴(Washington Quarterly)〉 2014년 가을호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화교 상인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비싼 중개료를 받으며 북한 측이 원하는 각종 물품을 제공한다. 이들 덕분에 중국 회사와 거래해온 북한의 일부 무역업체는 제재 이전보다 훨씬 은밀하고 광범위한 조달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업체들은 제재를 받기 전 주로 동유럽과 중동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지만 제재가 심해진 뒤로는 중국으로 거래처를 옮겨 더욱 번창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대북 제재는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북 제재 조치의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미국이 이번 제재를 ‘대응 조치의 첫 단계’라고 밝힌 만큼 후속 조치에 따라 모처럼 해빙 분위기에 접어든 남북한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날에 맞춘 이산가족 상봉 논의 등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월7일(현지 시각) “남북 간 대화를 분명히 장려해오고 있고, 대북 제재는 한국 정부를 의식한 게 아니다. 대북 제재를 피하려면 인권·핵 같은 요인에 (북한의)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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