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6월8일 새벽 한 전경이 시위 진압 도중 부상을 입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촛불이 거리와 광장을 뒤덮었다. 벌써 50여 일째 계속 타오르는 중이다. 100만 인파가 참여한 6·10 항쟁 기념 집회가 끝나고도 지칠 줄 모른다. 광장은 많은 사람이 뿜어대는 특유의 열기로 뜨겁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광장의 뒤쪽에 그들이 있다. 병역의 의무에 이끌려 전·의경이 된 20대 젊은이다. 촛불집회가 시민에게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한마당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이다. 가장 큰 고역은 씻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전·의경들은 일주일, 열흘 동안 누워서 잔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호소한다.

노예제와 비슷한 전·의경 제도 폐지해야

누워서 자는 것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인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전국 곳곳에서 전·의경을 끌어올린 탓에 이들이 묵을 숙소는 아예 없다. 경찰서 강당에 그저 매트리스 한 장 깔아주는 게 전부다. 화장실도 식당도 부족한 곳에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잠을 잔다. 그래도 강당 바닥이 버스보다는 낫단다. 범죄자를 가둔 교도소도 이렇게 허술하지는 않다.

경찰은 집회·시위 등 시국 상황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언제나 집회 참가자 수를 훨씬 넘는 인력을 투입하고, 3중 4중의 저지선을 확보해둔다. ‘뚫리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이러니 전·의경의 평균 근무시간은 하루 13시간을 넘는다. 큰 집회가 계속되면 수면시간은 물론 휴식시간도 없다. 구타와 가혹행위도 일반 군대보다 훨씬 심하다. 노예도 이보다 험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현역 사병에 비해 전·의경의 자살률이 두 배나 높은 까닭이다.

겉으로만 보면 전·의경이 혹사당하는 이유가 거리에서 벌어지는 집회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엉뚱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전·의경은 혹사당하지만, 경찰관은 전·의경을 관리하는 기동대 근무를 선호한다. 승진시험을 앞둔 경찰관일수록 더욱 그렇다. 부대 관리부터 시위 진압까지 궂은일, 험한 일을 전·의경이 전담해주기 때문이다. 업무가 편한 건 물론이고, 전·의경 덕분에 시험공부할 시간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의경은 교도소 재소자만도 못한 삶을 강요당하는데 직업경찰관은 오히려 기동대 근무를 선호하는 현실, 이것이 2008년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전·의경이 시위 진압부터 직업경찰관의 허드렛일까지 해주는 법률적 근거는 ‘전투경찰설치법’에 규정된 ‘치안업무 보조’라는 여섯 글자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 보조’라는 건 거짓말이다. 당장 집회 현장만 봐도 한눈에 그들이 전담이고, 직업경찰관이 오히려 전·의경을 보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의경 문제와 관련한 대안은 지금 당장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는 것’뿐이다. 치안 공백을 염려하는 경찰의 주장에 귀 기울일 만큼 그들의 처지가 만만치 않다. 설령 경찰의 ‘엄살’을 감안해도 그렇다. 인류가 뚜렷한 대안이 있어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은 아니다. 노예제 폐지가 옳기 때문이었다. 보수 언론은 큰 집회가 있을 때마다 전·의경의 고초를 보도한다.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지니까 젊은 친구들이 고생을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들은 전·의경 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없다.

국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경찰, 대간첩 작전을 벌인다고 만들어놓고는 기껏해야 정권 안보만을 지키는 준군사 조직, 시위 진압만을 주임무로 하는 특별한 경찰부대를 지금껏 유지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를 혹사시키는 ‘강제노역’ 제도가 이런 ‘웹2.0’ 시대에도 끄떡없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다.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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