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의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가 공사를 시작한다. 1년쯤 뚝딱거리는가 싶더니 그럴싸한 체육관 하나가 생겼다. 준공식에 지역구 국회의원이 와서 은근히 자랑을 한다. 기억을 더듬어봤더니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인조잔디를 깔 때에도 저 의원이 다녀갔다. 어느 학교에서는 낡은 화장실이 수선됐고, 또 어디서는 석면 천장재를 싹 바꿔줬단다. 국회의원이 일을 잘하더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다음 총선에서 당신이 현역 의원에게 표를 줄 가능성은 꽤 높아졌다. 학부모라면 한 번쯤 경험해보았거나 옆 동네의 소문으로 들어보았을 이야기다.

국회의원들에게 학교 예산을 끌어오는 것만큼 수지맞는 장사는 흔치 않다. 초·중·고교 학부모는 교육 이슈에 대단히 민감하고, 이들이 주로 분포하는 30대부터 50대 초반은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세대다.
 


문제는 돈이다. 예산 확보는 전쟁이나 다름없고, 지역구 학교마다 강당과 급식소와 인조잔디를 뿌리는 마법은 누구도 부릴 수 없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교육특별교부금(이하 교육특교)이라는 ‘특별한 돈’이 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지역구 예산 확보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주목하는 돈뭉치다. 2014년 한 해 교육특교가 1조4564억원이었다.

이 돈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27%와 교육세 전액으로 조성한다. 각 시도 교육청 예산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교육교부금의 4%를 교육부가 직접 집행하는 교육특교로 돌린다. 국가 시책사업이나 긴급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돈이다.

‘은밀한’ 지역현안 교육특교 금액 8800억원

이 특별한 돈은 국회 예산심의를 거치지 않아서 흐름이 낱낱이 공개될 ‘위험’이 거의 없다. 정부를 감시하는 국회의원들도 교육특교가 은밀한 돈으로 남아 있는 편이 낫다. 굳이 자료를 받아내어 공개하는 의원을 찾기 힘들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교육특교를 많이 받은 의원들 가운데 교육부를 담당하는 국회 교문위(위) 소속 의원이 많았다.

 


〈시사IN〉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정진후 의원(정의당)을 통해 교육특교 세부 내역을 입수했다. 교육특교 중 국가 시책과 재해 대비를 제외한 ‘지역 현안 특교’가 30%인데, 이것이 강당과 급식소와 인조잔디의 마법을 부리게 해주는 돈이다. 교육청 직접사업 예산 등 지역구로 분류되지 않는 항목을 제외하면, 19대 국회 들어 지역 현안 교육특교로 집행된 돈은 8800억원에 이른다. 2012년 5월부터 2014년 11월까지의 집행 내역이 분석 대상이다. 지금부터 단순히 ‘특교’라고 하면 이 지역 현안 교육특교를 뜻한다.

교육부가 제출한 원자료를 국회의원 지역구를 따라 분류해보았다. 특교가 모든 지역구에 고루 돌아가게 된다면 한 지역구에 36억원꼴로 집행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100억원대를 가져간 지역구가 9곳, 집행 내역이 0원인 지역구가 12곳이었다.

아래 〈표〉에 상위 20위까지 의원의 지역구와 특교 액수 등을 정리했다. 세종시가 지역구인 이해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1위다. 190억원에 이르는 ‘특교 폭탄’을 퍼부었다. 이 의원은 야권 최대 계파인 친노무현계의 핵심 인사이고,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력이 있다.

 

 

 

 

 


세종시는 학교 수는 많지 않지만 특별자치구이고 새로 조성되는 도시여서 신규 교육 수요가 많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이해찬 의원실은, 신규로 조성된 행정타운과 기존 읍면 지역 사이의 교육환경 격차가 심해서 지역 균형 차원의 특교 수요가 많았다고 했다.

여러 설명을 감안해도 이 같은 금액은 무척 이례적이다. 아래 표는 광역단체별로 집행된 특교 규모를 초·중·고등학교 수로 나눈 결과다. 즉, 특교가 한 학교에 평균적으로 얼마씩 돌아갔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평균은 7540만원이다. 가장 박했던 경기도는 5730만원이고, 광역단체 중 전국 2위인 울산도 1억3490만원이다. 그런데 세종시는 평균 4억430만원을 받았다. 1위와 2위 차이가 2위와 최하위의 차이보다 세 배 이상 많이 난다. 국회에서 예산을 다뤄본 경험이 풍부한 한 재선 의원은 “세종시의 특수성이나 ‘이해찬 효과’를 고려하고 봐도 과하다. 이 정도면 (세종시에 입주한) 관료들이 자기 동네 교육환경 조성사업을 한 모양이다”라는 신랄한 관전평을 내놓았다.

서울의 ‘특교’ 1·2·3위는 모두 교문위 소속

아래 표는 광역단체별로 ‘톱 3’를 보여준다. 전국 순위표와 조합해서 보면, 어떤 의원들이 특교 확보에 능한지 흐름을 볼 수 있다. 우선은 교육부를 담당하는 소관 상임위인 교문위 소속 의원들이 다수 포진했다. 서울의 1·2·3위는 모두 교문위 소속이다.

 

 

 

 

 


교문위 보좌관들 사이에는 “정가 20억원”이라는 말이 농반진반으로 돌아다닌다. 교문위 소속 의원이 특교에 관심만 있다면, 한 해에 그 정도 확보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역구에 있는 학교마다 두 바퀴씩 특교가 돌아서” 더 받을 방법이 없다는 교문위 터줏대감의 이름도 전설처럼 오르내린다.

한 교문위 의원실 관계자가 들려준 에피소드다. “언론은 국정감사 현장만 주목하지만, 사실 행정부 처지에서 더 골치 아픈 게 국감 결산보고서다. 여기에 기록이 남으면 인사고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감사원 감사를 요청한다고 쓰는 날에는 아주 피곤해진다. 국감 현장에서 두들겨 맞더라도 결산에서만 빼달라고 한다. 특교 ‘민원’을 슬쩍 들어주면서.”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다루는 국토교통위가 최고 인기 상임위라는 통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대도시일수록, 젊은 유권자가 많은 지역구일수록 교문위는 최고 인기 상임위다. 돈(특교)과 표(학부모 유권자)가 모두 가까이 있다. 한번 들어오면 눌러앉는 의원도 많아서 경쟁률은 더 치열하다.

특교를 오래 공략해온 한 보좌관은 특교를 표로 바꾸는 노하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밑 작업을 해서 강당 하나를 거의 따왔다 싶은 시점이 되면, 학부모들에게 청원 서명용지를 쫙 돌린다. 그게 꼭 필요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스토리를 만드는 거다. 특교를 따오면 착공식에 가서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만난다. 이분들이 동네의 ‘빅마우스’다. 지역에 소문이 쫙 퍼진다. 다 지어지면 준공식에 가서 눈도장을 찍는다. 이거 한 바퀴가 3000표짜리다. 이걸 임기 동안 지역구 학교에 돌리면… 알아서 계산하면 된다.”

교문위 위원들만 상위권을 독식하는 것은 아니다. 순위를 보면 여러 우회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원내의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다. 주요 상임위의 위원장이나 간사를 맡는다거나, 예산을 움직이는 예산결산위원회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홈페이지〈/font〉〈/div〉세종시는 학교당 평균 교부금 1위를 기록했다. 위는 세종시에 있는 한 학교의 강당·운동장 준공식.

 


국회의원은 온갖 지역구 민원을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직업이다. 군부대를 내보내야 할 일도, 연탄 공장을 치워야 할 일도, 대학병원을 유치해야 할 일도, 주차 단속을 뜯어말려야 할 일도, 전통시장에 지붕을 씌워줘야 할 일도 있다. 다른 상임위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장면은 반드시 나온다.

원내의 ‘좋은 자리’란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해결해줄 수 있는 자리다. 그러다 보면 교문위원이 특교를 확보해주는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특교 집행 전국 순위와 권역별 순위를 보면 주요 상임위와 예결위의 핵심 포스트를 잡은 의원 이름을 여럿 볼 수 있다. 누가 대선 주자가 되느냐를 다투는 거대한 권력투쟁과는 결이 다른, 원내의 일상적·미시적 권력지도는 이런 장면에서 드러난다.

원내의 ‘좋은 자리’는 예산과 법안으로, 예산과 법안은 결국 표로 번역된다. 국회에서는 임기 1년차와 3년차에 상임위가 어디이고 위원장과 간사가 누구인지 정하는데, 보통 시민은 관심도 두지 않는 이런 자리를 두고 매번 눈치작전과 내부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이유다.

특교의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10억원대와 1억원대 사업이 확연히 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체육관·급식소·기숙사 등 덩치 큰 사업은 대체로 10억원대다. 40억원이 넘게 투입되는 프로젝트도 종종 있다. 화장실이나 창틀, 냉난방 시설 등 환경 정비사업은 대체로 억대 범위 내에서 집행된다. 교문위의 예산통들은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억대 사업은 시도 교육청이, 10억원대 사업은 교육부가 결재권자라고 보면 된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교육청 위주로 잘게 공략해 들어가는 우회로도 있다. 환경 정비사업이 학부모에게 주는 만족감이 신축 건설사업 못지않은 경우도 많다. 묵은 악취가 나는 화장실 리모델링이 새 체육관보다 요긴할 수 있다. 전국 4위인 김태흠 의원(새누리당)과 13위인 정병국 의원(새누리당)이 그런 경우다. 보통은 1년에 두 번 정도면 적지 않게 받은 꼴인데, 두 사람은 분석 기간인 2년6개월 동안 지역구에 특교를 16회씩 받았다. 횟수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10억원대 사업은 김 의원이 세 번, 정 의원이 두 번밖에 없다.

전국 3위인 이채익 의원실(새누리당)도 교육청 공략을 특교 확보의 공신으로 꼽았다. 이 의원은 2013년에 새누리당 울산시당 위원장을 하면서 울산교육청과 당정 협의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특교 확보에 적잖은 성과를 올렸다는 자평이다.

‘외부 효과’ 덕을 보았을 법한 사례도 있다. 10위인 박상은 의원은 전체 특교 확보액 중 3분의 2가량인 63억원을 연평 초·중·고교 통합교사동 신축 한 건으로 받았다. 연평도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예산이다. 13위인 이종진 의원은 편중이 더 심하다. 96억원 중 72억원이 낙동강대구학생수련원 신설 지원금이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까지 의원을 지낸 지역구다.

교문위도 아니고 원내 실세도 아니지만 특교 공략에 노하우를 가진 의원도 있다. 전국 2위인 경대수 의원(새누리당) 보좌관들은 소관 부처도 아닌 교육부를 문턱 닳듯이 드나들었다. 교문위 의원실이라면 여의도로 부르지만, 이 방은 고리가 없으니 세종시로 내려간다. 그렇게 특교 하나를 따온 뒤에는, “우리는 지역이 네 곳(증평·진천·괴산·음성)이다. 어느 한 곳만 해주고 말면 다른 세 곳에서 난리가 난다”라는 식으로 읍소한다. 경 의원은 교육부 특교와 메커니즘이 비슷한 안전행정부 특별교부세 확보 순위에서도 2013년 2위를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학교는 정치인이 학부모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교육특별교부금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특교가 원내 권력지형을 미묘하게 반영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옛 통합진보당이다. 19대 국회 출범 당시부터 통진당은 종북 논란의 진원지로 사실상 ‘왕따’를 당했고, 2013년에 이석기 사건이 터진 후로는 거의 ‘불가촉’ 취급을 받았다.

교육환경 비슷한 관악갑과 관악을, 특교는 12대1

정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 전까지 통진당 지역구 의원 4명 중 김미희·김선동 의원이 ‘특교 0원’을 기록했다. 이상규 의원의 지역구는 2년6개월 동안 딱 한 번, 1억4000만원을 받았다. 246명 중 232위다. 오병윤 의원은 예외처럼 보인다. 특교 12건으로 41억원을 기록해 광주에서 3위다. 하지만 내역을 뜯어보면, 12회 중 11회를 이석기 사건 이전에 받았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속도로 특교 확보에 성공하다가 이석기 사건 이후로 뚝 끊겼다. 반면 비슷하게 소수 정당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246명 중 117위로 중간은 갔다.

이상규 의원의 사례는 그중에서도 인상적이다. 그의 지역구는 서울 관악을이었다. 바로 옆 지역구인 관악갑은 유기홍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구다. 유 의원은 상반기 교문위 야당 간사였고, 하반기에도 교문위에 남았다. 관악은 갑과 을이 교육환경에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지역이다. 하지만 특교는 관악갑 지역 학교가 12회(서울에서 횟수가 가장 많다), 관악을 지역 학교가 한 번을 받았다.

교문위 의원실을 중심으로 특교 예찬론자도 적지 않다. 한 예산통은 “특교는 지방정부, 교육청, 중앙정부, 그리고 지역민 여론까지 모두 합의를 이끌어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만 따낼 수 있다. 눈먼 돈이나 쌈짓돈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번 순위만 보아도 나오듯, 권력 실세면 앉아서 챙길 수 있던 시대는 지났고, 오히려 의원과 보좌진의 실력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발상을 바꿔서 이런 경쟁과 합의 창출 과정을 정치의 본령으로 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입법과 예산은 정치과정의 핵심이고, 탈법이나 부당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면 의원들 사이의 경쟁은 장려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특교와 같은 사례는, 원내에서 치열하게 벌어지지만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예산 정치의 작동 원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좋은 단면도다.

하지만 특교의 운영 실태가 원래 제도 도입 취지에서 멀어진 상태라는 지적만은 반박하기 쉽지 않다. 2014년 10월에 낸 교육부 예산 분석 자료에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특교가 “특별한 지역 현안에 대응하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연례적으로 시설비로 편중되어 쓰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체육관과 급식소가 당장 표로 변환하기 가장 간편하다는 특유의 메커니즘 탓이다.

이례적으로 특교 세부 자료를 공개한 정진후 의원의 고민도 비슷하다. 현재 국회에는 특별교부금 비율을 줄이고 내역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정 의원을 포함해 의원 발의가 여럿 있고, 정부도 유사한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진후 의원은 “세수 압박으로 올해 1조3000억원가량 지방 교육재정이 감소한다. 특별교부금 비율을 현행 4%에서 2% 정도로 내리고, 과도한 정치 논리와 지역구 관리용으로 쓰이는 현재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교육재정은 교육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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