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서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국카스텐과 같은 친구들이 쭉쭉 뻗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국카스텐 이 새끼들아! 빨리 앨범 내라. 너희가 멈춰 있으면 결국 너희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마지막 앨범이 된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 발매 후, 신해철이 한 말이다. 그가 그리 갑작스레 떠나지 않았으면 갓 발매된 국카스텐의 2집을 상자째 들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2009년 초 발매된 데뷔 앨범 이후 5년, 국카스텐이 〈프레임(Frame)〉으로 돌아왔다.

아는 사람들만 알던 그들의 이름을 전국구로 올린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2〉의 센세이션은 2012년 하반기를 뒤덮었다. 여세를 몰아 2013년에는 앨범을 냈어야 정상이다. 그들 또한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소속사와의 분쟁이 발목을 잡았다. 그해 6월 예당의 변두섭 회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회사의 미래는 미궁에 빠졌다. 8월에는 상장 폐지가 되며 회사로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국카스텐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9월 예당에 내용증명을 보낸 데 이어 연말에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예당은 맞고소로 대응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법원은 국카스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기간에 계속 스튜디오에서 곡을 다듬었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또 새로운 노래들이 나오더라고요. 사실상 앨범 한 장 분량이 더 나온 건데, 두 장 분량의 곡 중 어울리는 곡들을 모아 한 장으로 냈어요. 〈프레임〉은 우리의 2집이자 3집인 셈이죠.” 그렇게 15곡이 담긴 이 앨범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또한 기대를 배반하기도 한다.

 
〈프레임〉에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얻은 자산을 지켜나가겠다는 얄팍한 타협이 없다. 뻔한 발라드나 그저 그런 모던 록 같은 ‘상업적 전략’은 열다섯 곡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목표는 딱 하나였어요. 우리 이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것. 그 목표를 이뤘으니 더욱 우리 음악에 집중한 거죠.” 앨범이 전략이라면, 대중적 싱글은 전략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다. 헤비메탈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그 많은 메탈 밴드들은 앨범에 록 발라드 하나씩을 끼워넣었고, 그 결과는 그들에게 부귀영화로 돌아왔다. ‘한 잔의 추억’ ‘나 혼자’ 같은 〈나는 가수다〉에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배려는 없었을까. 그들은 답한다. “‘로스트’가 있잖아요.” “음… 그것도 일반 대중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국카스텐은 단호하다. “그럼 우리는 그런 걸 할 수 없는 거예요.” 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국카스텐은 그렇게 어떤 기대를 배반하고, 어떤 기대를 뛰어넘었다.

1집의 성공 요소이자 정체성은 둘이었다. 하현우의 보컬과 송라이팅(작사·작곡), 그리고 전규호의 기타.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하현우의 보컬은 선연한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구성의 송라이팅과 어우러졌다. 그 노래 안에서 그의 목소리는 ‘기교’가 아닌 ‘표현’이었다. 이펙터를 스스로 개조해서 쓸 정도로,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소리를 들려준 전규호의 기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두 요소는 두 개의 탑이 되어 국카스텐의 승승장구를 견인했다. 그 표현의 내공은 더욱 깊어졌다. 하현우는 지난 앨범보다 더 다양한 창법을 들려준다. 굳이 고음을 쓰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는 힘을 빼고, 여러 녹음 방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만든다. 전규호는 얼핏 신시사이저 사운드처럼 들릴 소리를 모두 기타로 만들어냈다. “미디를 쓴 부분은 ‘변신’의 인트로에 들어가는 전주밖에 없어요. 나머진 다 기타로 친 거예요.” 김기범의 베이스, 이정길의 드럼이 만드는 리듬 역시 보컬과 기타를 견고하게 떠받친다. 아니, 그 모든 것이 융화되어 근래 보기 드문 ‘밴드의 소리’를 들려준다. 각자의 기량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액체처럼 녹아든다.

왼쪽부터 국카스텐의 전규호(기타), 김기범(베이스), 하현우(보컬), 이정길(드럼).
왼쪽부터 국카스텐의 전규호(기타), 김기범(베이스), 하현우(보컬), 이정길(드럼).
사람뿐이 아니다. 하현우에게 노래를 주는 건 이미지다. 화성도, 멜로디도, 가사도, 그리고 사운드도 모두 이미지라는 발화점에서 시작한다. 그는 음악을 시작하면서 줄곧 근육을 단련하듯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제련해왔다. 멜로디, 사운드, 가사가 2집에 이르러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융합으로 변이한 건 그 능력이 한 단계 상승했음을 말해준다.

“배야 울자”…‘작은 인질’에 담긴 세월호 참사

하여,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처럼 〈프레임〉에는 여러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오이디푸스’의 숭고함부터 ‘깃털’의 낙하감까지, 어떤 장르가 아닌 어떤 이미지들이 각각의 트랙을 지배하는 것이다. “작업하면서 여러 외국 곡들을 레퍼런스(참고) 삼아봤거든요? 그랬더니 우리가 원하는 사운드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레퍼런스 없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만들어냈어요.” 현재 대중음악계, 특히 인디 신의 화두인 ‘자기 아이덴티티’에 국카스텐은 가장 충실한 밴드다.

그들은 홍대 밴드가 아니다. 안산 밴드다. 기혼인 전규호를 제외한 모두가 안산에 산다. 매니저까지. 그러니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희생자 중 한 명인 단원고 박수현군은 생전에 국카스텐의 열렬한 팬이었다. 빈소와 분향소를 찾아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경험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화가 장 포트리에의 ‘어린 인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은 인질’이 그것이다. “곡을 다 만들어놓고 세월호를 겪었어요. 그런 후 노래를 다듬고 부르는데 그때의 감정이 스며들더라고요.” 지난해 8월에 열린 ‘사운드베리 페스타’에 선 국카스텐은 박수현군의 가족을 초대했다. “안산은 지금도 암울해요.”

2013년의 유일한 활동이었던 안산밸리 록페스티벌 무대에서 하현우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공연하니까, 그래도 마음이 후련해지네요.” 보는 사람들 모두를 후련하게 만드는 그들의 공연은 지난해 12월30일과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앨범 발매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화했다.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고, 방송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요. 그래도 공연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음원의 시대, 공연을 많이 하려면 차트 성적이 좋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타이틀 곡 ‘변신’이 “차트에 잠깐 인사만 하고 나왔”을 뿐이다. 낙담하긴 이르다. 음반 시장에서 〈프레임〉은 발매 1주일 만에 초도 물량 5000장을 모두 소화했다. 상업적 성과와 상관없이 그들은 겸손을 모른다. “전 〈프레임〉이 ‘올해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이 앨범을 들으면, 그들이 겸손할 필요가 없다는 데 동의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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