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의 ‘속물성’이다. 촛불을 켜는 것만으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이명박을 먼저 끝장내지 않는 한,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고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촛불 ‘문화제’ 때는 두세 번 참석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광우병에 대한 위협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고, 내 이웃과 가족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쓰러지게 될 거라는 상상은 SF영화처럼 낯설었다. 거리로 본격 뛰쳐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국 5월24일 이후였다. 처음에 거리로 나섰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8차선, 4차선 도로를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함께 걷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워하면서도 불안해하고, 또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몰라 두려워했다. 그렇게 강제 진압이 닥쳐왔다. 바로 그날 이후부터, 퇴근 후 물먹은 솜 같은 몸을 말 그대로 질질 끌어서라도 광화문에 갖다두게 되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광우병은 멀었으나 물대포는 가까웠으므로.

처음에 구호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너나 먹어 미친 소”가 대부분이었지만, 폭력 진압이 거듭될수록 군중은 “이명박은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나 지도부 없이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이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표를 주었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듯 촛불을 켰다.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난나 그림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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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현진 (에세이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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