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구호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너나 먹어 미친 소”가 대부분이었지만, 폭력 진압이 거듭될수록 군중은 “이명박은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나 지도부 없이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이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표를 주었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듯 촛불을 켰다.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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