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이명박 정부 주변 외교안보 전문가가 북한 문제를 우리가 손에서 내려놓아야 주변 국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한 것에서부터 정책의 실패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제 발상의 틀을 바꿔야 한다. 평양과의 관계를 내려놓고,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가지고 뭘 해보겠다던 발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100일은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금 평양과 베이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미국·중국·일본의 숨막히는 외교 각축전 어디에도 이런 순진한 발상이 먹혀들 소지는 없다.

“우리가 북한과 관계에 매달리니까, 주변 국가도 덩달아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손을 놓으면 다른 나라도 그럴 것이다. 북한 같은 골치 아픈 나라와 굳이 관계해서 뭐 하겠는가.” 올해 초, 인수위에 관여했던 한 인사가 새 정부 외교안보팀의 생각이라며 이런 얘기를 했을 때,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농담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의 얘기에는 새 정부 들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를 부르짖던 이른바 정부 주변 전문가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한국 외교 문제를 주변국, 특히 미국·일본 등의 불신에서 찾았고, 그 불신의 원인을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태도라고 봤던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주변국의 신뢰를 얻으려면 북한 문제에서 손을 떼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주변국이 다시 신뢰하게 돼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북한 문제를 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미 동맹 복원이나 한·미·일 공조 복원의 밑바탕에는 바로 북한 문제를 우리가 내려놓는다는 것이 전제돼 있었던 셈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을 마치 냉전 시대의 반북주의자로만 보지 말아달라는 취지에서 필자에게 한 말이지만 설명을 듣고 나서는 더욱 황당하다는 느낌뿐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과정이 모두 이런 발상에 근거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상당 부분 일치한다. 정권 초 북쪽에서 대화 요청이 비공식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 복원이 먼저라며 거절했던 것에서부터, 워싱턴·도쿄·베이징까지 돌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던 것을 보면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새 외교안보수석 하마평에 바로 이런 전략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인물이 오르내린다. 반면 남북 관계 복원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현 통일부 장관 거취와 관련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연합뉴스대선 후보 시절 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본 뒤 웃는 이명박 대통령.

북한을 놓았더니 신뢰가 쌓였나?

단순히 포장만을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아니다. 근본 발상부터 다시 짚어볼 일이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손을 놓았더니 과연 미국이나 일본도 그렇게 했는지, 또 그들과 신뢰가 쌓여 과연 ‘이제 북한 문제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는지. 그렇다면 대북 문제로 불신받던 한국의 국제 신뢰도가 높아져, 지금쯤은 북한이 우리에게 대화를 구걸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실제로 이 정권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은 5월이면 북한이 틀림없이 무릎 꿇고 올 거라며 믿어달라고 얘기하고 돌아다녔다는데, 6월 중순인데도 그럴 조짐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한국이 무릎을 꿇는 형국이니, 지금쯤은 뭔가 근본 성찰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졸렬한 발상이었다.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평양은 21세기 동북아 국제정치의 가장 치열한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 평양이 예뻐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남은 미개척지인 데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먼저 할 일은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책상물림의 공상, 세상 흐름에 무지한 학자들의 잘못된 이론에서 대북 정책은 해방돼야 한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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