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2일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장석조(사진))는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 동대문구청·성동구청이 관할 구역의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 영업시간 제한을 둔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2012년 각 지자체는 대형마트는 오전 0시부터 8시까지 문을 닫고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대형마트들은 이것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걸었다.

1심 재판부는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근로자의 건강권, 대형마트와 중소 유통업 상생 발전 등 공익 달성의 필요성이 크고, 영업 제한 시간은 소비자의 구매가 뜸한 시간대이므로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분은 상대적이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런 결정을 뒤집으며 해당 마트들이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폈다. 32쪽에 달하는 2심 판결문을 꼼꼼히 들여다본 법률 전문가가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짚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의 영업 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월 2회로 규정했다. 정기휴무 안내문이 부착된 한 대형마트.

이번 판결은 아마 가장 정직하지 못한 판결 중 하나로 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은 FTA 위반 운운하며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작 FTA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해외 업체 코스트코는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고 군말 없이 영업시간 제한을 지킨다. FTA 위반이라면 유통산업발전법 자체가 무효라는 뜻이니 실제 영업 상황과 관련 없이 코스트코도 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제경제법에서 많이 논의되는 ‘양적 제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적 제한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국가 간 거래를 제한할 때 국제경제법 위반이 된다. 즉, 외국 업체에 대한 차별이 있어야 한다.

일본도 1998년까지 대규모소매업법을 통해 150평(495㎡) 이상의 면적을 보유한 점포의 입점은 반드시 주변 상점의 허락을 얻도록 했다. 미국이 WTO에 제소해 일본은 대규모소매업법을 폐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각 지자체들이 규제 권한을 갖게 되어 지역에 따라 어느 곳은 기존 대규모소매업법보다 더 엄격하게 규제한다. 미국도 여러 지자체가 대형 점포의 진입을 아예 금지하거나 시의회의 허가를 얻도록 한다. 유럽 사법재판소(ECJ) 판결 중에 영국이 일요일에 소매업을 금지한 사례도 유럽 공동체(EC) 협약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령 FTA가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이번 판결은 잘못된 결정이다. 당장 ‘대형마트’에 대한 규정부터 아전인수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를 ‘3000㎡ 이상의 점포로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백화점과 구별하기 위해서 ‘점원의 도움 없이’라는 조문이 들어갔는데 왜 백화점에는 영업시간 제한을 하지 않을까? 품목이나 가격 면에서 전통시장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마트는 원래 대형 ‘할인’ 마트인데 전통시장에 비해 할인한다는 뜻이다. 소비자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고르므로 점원 인력을 줄일 수 있어, 할인을 하며 전통시장과 경쟁을 한다. 그렇다면 국회는 소비자가 직접 카트를 밀고 다니며 물건을 담아서 결제하는 곳을 상상하고 위 문구를 넣었을 텐데 이 판결의 기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소상공인·자영업 단체 회원들이 2013년 10월11일 ‘골목상권 죽이기 정책 규탄대회’를 열었다.

“대규모 점포에서는 채소·과일 코너 등에서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점원이 제품의 양을 덜거나 계량해 포장해주고, 정육·생선·반찬 코너 등에서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점원이 제품을 즉석에서 가공·손질해 제공하며, 건강기능식품·화장품·스포츠용품 코너 등에서 소비자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점원이 제품의 적합성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점원은 카운터에서 물건을 계산해주고,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서 물건을 찾아주며, 물건을 들어주거나 옮겨주는 등의 형태로 도움을 제공해 소비자의 구매 편의를 도모한다(2심 판결문).”

이래서 원고인 대형마트들은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논리인데, 실제로 99% 이상의 거래는 소비자가 점원의 도움 없이 카트에 직접 담아서 계산대에 끌고 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한 침소봉대다. 판결 또한 이를 의식해서인지 ‘카운터에서 물건을 계산해준다’는 것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무인 판매대가 아닌 이상 도대체 위에 열거한 정도의 일도 안 해주는 점포가 과연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건강권에 대한 해석도 특이하다. “전통시장 상인은 위 대규모 점포의 근로자보다 일반적으로 근무환경이 더 열악해 오히려 건강권 보호의 필요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2심 판결문).”

도리어 전통시장에 영업시간 제한이라도 할 기세인 이 판시에 대해 대형마트 노동자와 전통시장 상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보라. 진짜 세상 물정 모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영화 〈카트〉를 보지 못하겠다면 검색만 해도 영업시간 제한을 강력히 요구한 세력의 한 축이 민주노총 민간서비스노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출산’의 원인을 전통시장에 돌린 2심 판결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주차 공간, 편의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 여러모로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출산 등 사회문제를 도외시한 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더하는 방향으로 이 사건 기각 처분을 한 것이 과연 정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든다(2심 판결문).”

이건 뭐 정말 할 말이 없다. ‘저출산 등의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전통시장의 열악한 주차 공간, 편의시설에서 찾는 침소봉대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전통시장 점포 운영은 다수 여성이 하고 전통시장이 망하면 이들도 실업자가 될 터. 결국 이 판결의 판사들이 사회 진출을 보장해주고자 하는 여성에서 이들은 빠져 있지 않나.

이런 식이라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은 물론 저가 구매가 절실한 저소득층에게도 대형마트가 더 선호될 텐데 왜 친(親)노인, 친장애인 코스프레는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소비자에게 더 선호됨에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하려는 것 아니었는가. 지금 동네 구멍가게가 다 망하면 거기서 먹고살던 주인 여성들이 결국 동네 대형마트에 점원으로 취직해야 할 텐데, 과연 대형마트가 그렇게 전통시장보다 출산에 기여하는 직장일까.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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