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는 프로그램 타이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유일한 PD다. MC까지 겸한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KBS),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채널A), 〈이영돈 신동엽의 젠틀맨〉(채널A) 등이 그것이다. 이 PD는 “방송은 캐릭터를 통해 차별화해야 한다. 내가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이영돈으로 상징화된 신뢰를 활용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3년 가까이 몸담아온 채널A를 떠났다. “채널A에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서로 변화가 필요했는데 그 시점이 맞아떨어졌다”라는 게 그의 변이다. JTBC 3층에서 만난 이 PD는 새 프로그램 준비로 분주했다.

ⓒ시사IN 이명익이영돈 PD는 KBS에서부터 JTBC까지 5개 방송사에서 일을 해왔다. 이 PD는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해피투게더 3〉(KBS)에 출연했을 때 유재석씨는 이영돈 PD를 ‘이적의 아이콘’이라 했고 박명수씨는 ‘보따리장수’라고 했다. (웃음) 1981년 KBS에 입사했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 가서 이민자 방송인 SBS에서 일했다. 한국 SBS 개국 때 참여했고 다시 KBS에 재입사했다가 종합편성채널이 생기면서 채널A로 갔다가 이번에 JTBC에 왔다. 5개 방송사에서 일하는 셈이다.

이번에 JTBC를 선택한 이유는? 종편 중에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높은 곳이고 투자도 많이 한다. 제작 자율성도 지상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영돈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점이다.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현재 ‘이영돈 피디와 함께’라는 회사의 대표다. 채널A를 나오자마자 만들었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1년간 JTBC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다. ABC나 NBC 등 미국의 앵커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회사 대 회사, 개인 대 회사가 계약한다.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고 그로 인해 JTBC의 가치가 상승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지고 그만두게 될 것이다. 프로페셔널의 세계다.

JTBC에 어떤 프로그램을 공급하기로 했나? 일단 두 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지난 11월27일 첫 방송을 한 〈에브리 바디〉(목요일 밤 9시40분)는 건강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하고 가수 김종국, 셰프 강레오가 MC다. ‘금연’ ‘뱃살’ ‘탈모’ 등 매주 한 가지 주제를 다룬다. 건강 관련 정보는 검증이 어렵다. 혹세무민하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정보를 재미있게 전할 것이다. 또 하나는 내년 1월부터 방송될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다.

〈에브리 바디〉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영돈 PD가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하는 셈인데,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영돈 신동엽의 젠틀맨〉(채널A)이 실패하면서 생긴 우려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젠틀맨〉은 숨어 있는 젠틀맨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으로, 훌륭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젠틀맨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재연하는 데 주위 사람들이 개입하면서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다. 즉 조작된 젠틀맨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을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좀 더 진화시킬 수 있는 포맷이었는데 12회를 하고 접었다. 안타까웠다. 최근 들어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급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다.

ⓒjtbc 제공이영돈 PD는 2015년 1월부터 새 탐사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젠틀맨〉이 과거 김영희 PD(MBC)의 히트작인 ‘양심 냉장고’와 ‘몰래 카메라’를 합친 것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어떻게 창의적으로 변형시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의 사이클 측면에서 보면 ‘몰래 카메라’가 다시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그램도 결국은 곱하기·나누기·더하기·빼기의 공식에 따라 창의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에브리 바디〉에서는 MC만 하나? 연출자로서 제작에도 관여하나? 진행자 역할만 한다고 보는 게 맞다.

내년 초에 방송될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뭔가? 지금 밝히기는 이르다. 이영돈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니까 아마 ‘이영돈의 ’일 것이다.

기존 방송사의 탐사 보도인 〈추적 60분〉 (KBS), 〈PD 수첩〉(MBC), 〈그것이 알고 싶다〉(SBS) 등과는 어떻게 차별화하나? 지금 지상파의 탐사 보도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 영향력도 이전에 비해 훨씬 떨어졌고 스타일도 변화가 없다. 심지어 고리타분한 느낌까지 든다. 민감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문제는 창의성 결핍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영돈 캐릭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별점은 대안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KBS에서 〈소비자 고발〉을 제작하다 종편에 와서 〈먹거리 X파일〉을 제작했는데 가장 큰 변화는 착한 식당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그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기존의 탐사 보도는 대부분 문제점만 이야기한다. 우리는 착한 것, 즉 좋은 대안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지 3년이 되었는데, JTBC는 공정한 보도와 적극적인 투자를 내세우며 종편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손석희 앵커에 이어 이영돈 PD를 영입한 것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JTBC의 퍼즐 맞추기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더라. JTBC는 예능 프로그램이 매우 강하다. 지상파와 견줄 만한 수준이다. 반면에 교양 프로그램이 취약하다. 내가 와서 강화된다면 전체적인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로서는 매우 부담이 된다.

종편 3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명암이 분명히 있다.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지상파를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념적인 논란을 제외하면 낮 시간을 장악한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효율이 높은 성공한 포맷이다. 하지만 ‘종편은 입으로 말아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사 토크 포맷이 과잉이고 진지한 탐사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예능도 ‘떼톡’이라는 집단 토크가 너무 많다. 콘텐츠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종편 최고 경영자들이 방송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방송 콘텐츠는 우수한 인력과 돈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는 개념이 확실해야만 경영이 가능하다. 천재적인 PD 몇 명이 먹여 살리는 게 방송이다. 그들이 프로그램 포맷을 만들어낸다. 이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잘 모르니까 투자를 안 한다. 또한 방송은 투자에 대한 성공 확률이 매우 불규칙하다. 어떤 경우는 열 번 실패 후 한 번 성공하고, 또 어떤 경우는 스무 번 실패하고 한 번 성공한다. 예측 불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몇 개의 프로그램이 회사를 먹여 살린다. 방송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이 구조를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KBS와 종편은 의사 결정 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나? 확실히 다르다. 종편에서는 오너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 방송은 돈이 많이 투입되는 사업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에 비해 지상파는 사장이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구조다. 종편이 수직적인 의사 결정 구조라면 지상파는 책임과 권한이 좀 더 분산되어 있는 구조라고 봐야 한다.
ⓒjtbc 제공안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판교 추락사고 현장에 다녀왔다.
방송사에 입사한 지 33년 됐다. 어릴 때 읽은 추리소설이 오늘날의 이영돈 PD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웃음)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당시 성문각에서 나온 세계추리문학 전집을 사주셨다. 25권짜리였다. 애거사 크리스티, 셜록 홈스, 괴도 루팡 그리고 일본 작가의 추리소설도 있었다. 거의 일고여덟 번씩 읽었다. 스토리도 박진감 있지만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더구나 반전이 있었다. 내가 지금 만드는 프로그램 스타일은 추리소설과 거의 비슷하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탐사 보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영화를 엄청 많이 봤다. 당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는 동시 상영 영화관이 많았는데, 극장 입구에 서 있으면 데이트하는 커플이 많이 온다. 그분들에게 부탁해 같이 손을 잡고 들어갔다. 어린애는 돈을 안 받았으니까 공짜로 영화를 무척 많이 봤다. 지금도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거나 머리가 아프면 밤에 영화관에 혼자 간다. 그런 경험들이 프로그램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PD가 되고 나서는 어떤 노력을 했나? 입사 초기 이틀에 하루씩 밤을 새워 편집할 때였다. 하루는 어느 선배가 새로 나온 시계가 많은데 그것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한 것은 ‘보통의 PD라면 어떻게 촬영하고 편집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것과 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밤을 새웠다. 자막을 넣을 때도 다르게 넣고 싶었다. 대개 연출자와 작가의 이름을 프로그램 맨 뒤에 넣는데 난 맨 앞에 넣었다. 마치 영화처럼. 책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잘난 체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 지금도 매번 고민한다. ‘남과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창의성이 중요하다.

지상파에서 오래 활동하다 종편으로 옮겼는데,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오프라 윈프리 채널처럼 이영돈 채널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필요하지만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먹거리 X파일〉은 우리 먹거리 산업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데도 기여하지 않았는가. 종편에서 탐사 보도 제작팀 구성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세팅했나? 외부의 프리랜서 PD와 JTBC PD를 합쳐 세팅했다. 총 7팀으로 운영한다. PD와 작가, AD와 리서처 4명이 한 팀이다. 내년 1월부터 방송인데 첫 번째 아이템은 무엇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요즘 촬영하는 것은 연말 특집용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를 취재하러 판교 환풍구 붕괴 추락사고 현장에 다녀왔다. 새해에 선보일 탐사 보도의 파일럿 성격도 있다. 몸풀기로 하나 해보는 것이다. 줄을 타고 지하에 내려가 봤다. PD를 한 지 33년째인데 역시 현장이 재미있다.

기자명 황용호 (KBS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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