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JTBC를 선택한 이유는? 종편 중에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높은 곳이고 투자도 많이 한다. 제작 자율성도 지상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영돈 브랜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점이다.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현재 ‘이영돈 피디와 함께’라는 회사의 대표다. 채널A를 나오자마자 만들었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1년간 JTBC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다. ABC나 NBC 등 미국의 앵커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회사 대 회사, 개인 대 회사가 계약한다.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고 그로 인해 JTBC의 가치가 상승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지고 그만두게 될 것이다. 프로페셔널의 세계다.
JTBC에 어떤 프로그램을 공급하기로 했나? 일단 두 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지난 11월27일 첫 방송을 한 〈에브리 바디〉(목요일 밤 9시40분)는 건강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하고 가수 김종국, 셰프 강레오가 MC다. ‘금연’ ‘뱃살’ ‘탈모’ 등 매주 한 가지 주제를 다룬다. 건강 관련 정보는 검증이 어렵다. 혹세무민하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정보를 재미있게 전할 것이다. 또 하나는 내년 1월부터 방송될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다.
〈에브리 바디〉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영돈 PD가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하는 셈인데,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영돈 신동엽의 젠틀맨〉(채널A)이 실패하면서 생긴 우려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젠틀맨〉은 숨어 있는 젠틀맨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으로, 훌륭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젠틀맨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재연하는 데 주위 사람들이 개입하면서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다. 즉 조작된 젠틀맨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을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좀 더 진화시킬 수 있는 포맷이었는데 12회를 하고 접었다. 안타까웠다. 최근 들어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급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다.
〈에브리 바디〉에서는 MC만 하나? 연출자로서 제작에도 관여하나? 진행자 역할만 한다고 보는 게 맞다.
내년 초에 방송될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뭔가? 지금 밝히기는 이르다. 이영돈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니까 아마 ‘이영돈의 ’일 것이다.
기존 방송사의 탐사 보도인 〈추적 60분〉 (KBS), 〈PD 수첩〉(MBC), 〈그것이 알고 싶다〉(SBS) 등과는 어떻게 차별화하나? 지금 지상파의 탐사 보도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 영향력도 이전에 비해 훨씬 떨어졌고 스타일도 변화가 없다. 심지어 고리타분한 느낌까지 든다. 민감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문제는 창의성 결핍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영돈 캐릭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별점은 대안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KBS에서 〈소비자 고발〉을 제작하다 종편에 와서 〈먹거리 X파일〉을 제작했는데 가장 큰 변화는 착한 식당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그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기존의 탐사 보도는 대부분 문제점만 이야기한다. 우리는 착한 것, 즉 좋은 대안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지 3년이 되었는데, JTBC는 공정한 보도와 적극적인 투자를 내세우며 종편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손석희 앵커에 이어 이영돈 PD를 영입한 것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JTBC의 퍼즐 맞추기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더라. JTBC는 예능 프로그램이 매우 강하다. 지상파와 견줄 만한 수준이다. 반면에 교양 프로그램이 취약하다. 내가 와서 강화된다면 전체적인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로서는 매우 부담이 된다.
종편 3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명암이 분명히 있다.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지상파를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념적인 논란을 제외하면 낮 시간을 장악한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효율이 높은 성공한 포맷이다. 하지만 ‘종편은 입으로 말아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사 토크 포맷이 과잉이고 진지한 탐사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예능도 ‘떼톡’이라는 집단 토크가 너무 많다. 콘텐츠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종편 최고 경영자들이 방송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상파에서 오래 활동하다 종편으로 옮겼는데,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오프라 윈프리 채널처럼 이영돈 채널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필요하지만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먹거리 X파일〉은 우리 먹거리 산업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데도 기여하지 않았는가. 종편에서 탐사 보도 제작팀 구성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세팅했나? 외부의 프리랜서 PD와 JTBC PD를 합쳐 세팅했다. 총 7팀으로 운영한다. PD와 작가, AD와 리서처 4명이 한 팀이다. 내년 1월부터 방송인데 첫 번째 아이템은 무엇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요즘 촬영하는 것은 연말 특집용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를 취재하러 판교 환풍구 붕괴 추락사고 현장에 다녀왔다. 새해에 선보일 탐사 보도의 파일럿 성격도 있다. 몸풀기로 하나 해보는 것이다. 줄을 타고 지하에 내려가 봤다. PD를 한 지 33년째인데 역시 현장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