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원고를 끝냈다. ‘작가의 말’을 쓴 며칠 뒤 세월호가 침몰했다. 써둔 소설이 새로운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마치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 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우리는 ‘4월에는 그랬대’ 하고 밝혀두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른 맥락 아래 놓이게 되기도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라고, 7개월 뒤 두 번째 작가의 말을 썼다. 〈타워〉 〈안녕, 인공존재〉 〈은닉〉의 소설가 배명훈이 2년 만에 장편소설 〈맛집 폭격〉을 냈다. 잠시 뉴욕에 머물고 있는 작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쏟아지는 게 일상인 서울.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현장조사원 민소는 피폭으로 사라진 인도 식당을 보며 거기서 먹었던 ‘마살라 도사’를 떠올린다. 다른 피폭 현장에서는 애용하던 스페인 식당의 피해 사실을 확인한다. 무차별 공격인 줄만 알았는데 목표는 모두 그의 단골 식당이었다. ‘그’보다는 죽은 ‘그녀’가 좋아해서 갔던 곳이다.

ⓒ북하우스 제공소설가 배명훈씨는 <타워> 등 수준 높은 SF소설을 선보였다.
세월호 사건이 연상된다. 재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다루기 때문이다. 대국민 사과에 대한 언급도 있고 국가에 고용돼 국가의 기능을 대신하는 용병도 나온다. 국무총리의 사과도 나온다. 정말 세월호 이전에 쓰인 게 맞나. “달라진 맥락에 맞춰 내용을 수정해야 하나 아니면 시점을 고정시켜놓고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니라고 밝히는 게 좋은 건가 고민을 좀 했다. 결론은 그냥 원래대로 가자는 거였다. 충분히 준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임승차하는 기분이라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부 대응을 지켜보며, 정부를 실제보다 유능하게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유능한 공무원을 모아 저렇게까지 무능한 결과물을 낼 수도 있나 싶었다. 폭로하는 것으로는 소설의 결말을 낼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이 공격 패턴의 결정적인 증거를 세상에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에선 그렇게 쓰면 너무 ‘나이브’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외교학을 전공한 작가는 석사 과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공부했다. 워낙 입체적인 전쟁이라 어느 측면에서 조명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식량과 관련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영어로 ‘food’라는 단어가 어떤 때는 식량으로, 어떤 때는 음식으로 쓰였다. 전쟁에서 식량이 중요하다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산업화된 나라에서는 식량을 넘어 ‘좋은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전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는 것. 생활수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맛집과 전쟁을 연결했던 까닭

맛집과 전쟁을 연결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 상황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또 그런대로 무심하게 반복된다. 무거운 소재여도 참상의 묘사보다는 맛의 묘사가 생생해 마음의 부담이 적다. 단서를 추적하는 구조도 흥미롭다. “커피 전문점이 심심하면 욕을 먹잖나. 자판기 커피나 커피 전문점 커피나 그게 그거라고. 식량 관점으로 보면 그런데, 음식이나 기호식품의 관점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음식을 포기하고 식량 욕구만 충족시키면 국가가 유지되느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였다. 그렇지 않다는 게 그 논의의 함의다. 그래서 맛집과 전쟁을 연결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 대한 작가의 당부를 전한다. “북한이랑 전쟁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의 외국 독자를 생각해 적국을 명시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통제 불가능한 폭력에 관한 자기반성적 이야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쪼록 안전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란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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