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대통령이다. 비선 권력투쟁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 주를 거치며, 정치권의 관찰자들 사이에서는 합의에 가까운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비선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비선은 관리자의 능력에 따라 정권의 기능을 높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박근혜 청와대의 이번 위기를 단순히 “비선 때문이다”라고만 규정해서는 안 된다. 비선 투쟁이 민낯을 드러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에 기능장애가 생겼다는 유력한 신호다.

장애가 생겼다면 어디서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기기 전부터 오래도록 지적받은 고질적인 약점이 셋 있다. 이번 비선 파동에 맞춰 등장한 설명이 아니라, 길게는 그녀가 정치에 입문한 1998년 이후부터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다. 모아놓고 보면 마치 2014년의 파동을 예상이라도 한 것 같다.
 

ⓒ연합뉴스2011년 11월14일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 ‘아버지 시대’를 국민에게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 일관된 취향, 공식 라인보다 비선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자 청문회는 피 튀기는 전장이었다. ‘집안싸움’이라 서로의 목줄을 쥔 정보원도 풍부했다. 박근혜 후보를 향한 이명박 후보 측의 파상공세는 결국 하나로 모였다. 박근혜 후보는 1970년대의 유명한 스캔들인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이름도 등장했다. 이명박 후보 측 패널이 박근혜 후보에게 “정윤회씨가 최태민의 사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라고 물었지만 박 후보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조순제(최태민의 의붓아들), 최필립(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 박 후보의 비선으로 지목되는 인물들이 줄줄이 거론됐다.

최태민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박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그녀의 비선으로 지목되는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최 목사와 연결되는 사례가 신기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이번 비선 파동의 주인공 정윤회씨만 해도 최태민의 다섯째 딸 최순실의 남편이었다(두 사람은 올해 5월 이혼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시사IN〉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 쓰는 방식을 1970년대 청와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 보도한 적이 있다(〈시사IN〉 제267호 커버스토리). 당시 기사의 결론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40년 내내, 정서적으로 친밀한 극소수 비선을 공식 라인보다 우선하고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표 조직은 권한이 있는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달라진다. 책임 있는 자리의 사람이 정작 권한은 측근에게 밀려버리니, 일을 결정하는 사람과 뒷감당을 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이런 조직은 구조적으로 ‘권한 있는 사람’과 ‘책임 있는 사람’ 간 갈등이 격해진다. 또 투명한 공적 책임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 감시가 약해져서 비리 가능성이 커진다. 1970년대 청와대, 1980년대 영남대, 1990년대 육영재단, 2000년대 정수장학회, 그리고 2007년과 2012년 대선 캠프에 이르기까지 패턴은 똑같았다. 이 목록에 2014년 청와대를 무리 없이 추가할 수 있다.

박근혜가 가는 곳마다 비선 인물과 공식 라인이 갈등을 빚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비선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2년 10월에는 당 지도부급인 비상대책위원 출신 인사들이 일개 국회의원 보좌관급인 ‘문고리 4인방’을 공개 저격하는 웃지 못할 장면도 등장했다. 박 후보는 끝내 이들 4인방(대선 도중 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3인방이 된다)을 버리지 않았다.

 ‘집권 이후’가 없었다

대선 공신 출신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 뭘 하겠다가 아니라 “되는 게 목적이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대통령의 3인방 의존도 정상이 아니다” 기사). 자신의 대선 승리를 통해 ‘아버지 시대’에 대한 국민의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 아니었냐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집권 이후가 아니라 집권 자체에 목표를 두었다는 인상은 정치권의 많은 관찰자들이 공유한다. 2007년의 박근혜는 철저한 감세론자였지만 2012년의 박근혜는 복지국가의 추종자였다. 인수위 시절에는 고용 보호를 외치다가, 집권 2년차에는 “정규직 과보호가 문제다”라는 메시지가 서슴없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은 찬반이 격렬하게 나뉘었다뿐이지 국정 기조는 누구의 눈에도 선명했다. 지금은 직업 정치인조차 정권의 방향 자체를 헷갈려 한다. ‘창조경제’는 시중의 농담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2013년 예산결산위원회 야당 간사였던 최재천 의원은 예산 심사를 마치고 “임기 동안 어디에 돈과 인력과 조직을 투입하겠다는 목표 설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2014년 연초에 정부는 국정 어젠다라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는데, 정작 그해 예산안에는 흔적조차 없더란다.

목표가 사라진 대통령은 위기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선 후보 시절의 박근혜는 위기가 닥칠수록 외연 확장에 나서는 정치인이었다. 2012년 총선 패배의 위기를 맞이한 그녀는 김종인 전 장관, 이상돈 교수,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 중량감 있거나 참신한 인물을 발굴해 위기 돌파에 나섰다. 하지만 집권 이후의 박근혜는 위기를 맞을수록 안으로 움츠러든다.

 

 

 

ⓒ연합뉴스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위)은 ‘박 대통령이 국장·과장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일정 시점이 지난 이후 유가족과 비판 여론을 아예 외면하면서 뭉개는 대응을 택했다. 60%를 넘나들던 정권 지지율은 40%대에서 고착됐다. 이번 비선 파동이 터져 나온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규정을 달리하려던 최초의 시도가 실패하자 일주일째 별다른 대응이 없다. 위기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지만,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을 정리하는 돌파력을 보이리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집권 이후에 분명한 비전과 목표가 있어서 권력을 보존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면 정권의 위신을 깎아먹는 스캔들을 이리 방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박근혜식 공공성의 허상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성 관념이 투철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비선 파동 와중에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장급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이 터져 나왔다. 정윤회씨가 개입된 ‘승마협회 스캔들’에서 정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실무자를 대통령이 직접 찍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는 증언을 〈한겨레〉가 보도했다.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이 〈조선일보〉에서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직접 확인하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비선의 민원 해결에 사용한 악성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 보수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엄격한 공공의식이나 절제된 언행은 당선자의 장점이다. 그런데 이게 국가주의적이고 가산제적 태도랄까, 국가 전체를 일종의 가족 재산으로 봐서 나오는 거 아니냐,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공공성이 맞느냐. 그건 위험하다.”

‘국가 전체를 가족 재산으로 본다’는 윤 전 장관의 규정은 2014년 비선 파동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키워드다. 공적 시스템을 이용하는 통치에 박 대통령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관과 수석비서관과의 일상적인 소통과 토론은 이번 정부 들어 증발했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를 묘사하는 ‘적자생존(입 다물고 받아 적어서 살아남는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세간에 오르내린다. 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한 소수의 오래된 측근은 차별화된 권력이 된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박근혜 청와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어느 청와대든 핵심 측근은 있기 마련이다. 있어야 하고. 그래야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파해 일이 돌아간다. 문제는 이것이 공적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공적 시스템 안에서 핵심 측근들이 일을 해야지, 둘이 따로 놀면 사고가 난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 같다.” 문고리 3인방은 각각 총무비서실(이재만), 제1부속실(정호성), 제2부속실(안봉근) 소속이지만 이들의 ‘영역’은 소관 업무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평이다. 사적인 친밀성이 공적 시스템을 잡아먹는다면 근대적 공공성 개념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높은 비선 의존성, 집권 이후 비전 부재, 그리고 근대적 공공성 감각의 결핍. 예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취약점으로 지적된 이 셋은 상호작용을 하며 비선 파동을 증폭했다. 공적 시스템을 통한 통치에 취약할수록 비선 의존도는 커지기 쉽다. 집권 이후 비전이 뚜렷하지 않으니 비선이 초래한 위기 국면에서도 대선 때만큼 절박한 쇄신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공적 통치에 취약하고 위기 감수성이 낮은 대통령은, 밖에서 ‘공격’이 들어올수록 비선 의존도를 더 높일 거라는 예측도 벌써부터 공공연하다.

〈세계일보〉가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정황을 담은 청와대 문건을 보도한 11월28일 이후 불과 일주일 만에 정윤회, 문고리 3인방, 박지만, 조응천 등의 이름이 평범한 시민의 귀에도 익숙하게 들릴 정도가 되었다. 정권 말기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지만, 아직 집권 2년차도 끝나지 않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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