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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흥행의 세 가지 법칙

영화 <인터스텔라>가 관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에 버금가는 흥행세를 보인다. 이 영화는 시공간 여행이 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하고 또한 철학적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제3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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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가 블랙홀처럼 관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바타>나 <겨울왕국>처럼 외화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지가 관심을 모은다. 상영 스크린 수도 1200개가 넘고 개봉 첫 주 관객점유율이 70%에 이르는 등 역대 최고 흥행작인 <명량>에 버금가는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방학이나 연휴 특수도 아니고, 느닷없이 터진 SF 외화의 이상 흥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단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동안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배트맨 시리즈로 국내 관객에게 지명도가 있었다. 그리고 <메멘토> <인썸니아> <인셉션> 등으로 마니아 관객층도 형성하고 있었다. 그의 영화를 기다린 관객이 많았던 셈이다.

다음은 ‘가속도의 법칙’이다. 지난해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가 관객 322만명을 모으는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시각적 새로움을 준다는 걸 체험한 이가 많았다. 올여름 <명량>이 관객 1760만명을 불러 모으며 그동안 극장에 오지 않았던 관객들까지 잠재적 영화 관객층으로 확장해놓은 것도 <인터스텔라>의 흥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인터스텔라>(왼쪽)는 지구의 대안이 될 행성을 찾아 웜홀 속으로 들어간 이들이 벌이는 모험을 담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왼쪽)는 지구의 대안이 될 행성을 찾아 웜홀 속으로 들어간 이들이 벌이는 모험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볼만한 영화가 나오기를 고대하던 관객의 욕구가 응축되어 있다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최광희씨는 “여름 시즌 이후 이렇다 할 기대작이 없는 상황에서 선호도가 높은 SF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브랜드 파워가 결합되어 잠재해 있던 관객들의 수요와 만났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9월, 10월에는 관객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모처럼 볼만한 영화다 하니까 폭발력이 생긴 것이고 극장들도 스크린 몰아주기로 화답했다. 흥행 가뭄의 기간이 길어지면 반작용으로 스크린 독과점도 커진다”라고 분석했다.

<인터스텔라>는 기후변화로 인해 사람이 살기 힘들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정부 기능과 경제가 붕괴되고 식량 자급자족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해체되었는데 과거에 우주비행사였다가 지금은 농부로 지내는 주인공 쿠퍼(매슈 매커너히)가 비밀리에 존속하던 NASA를 발견해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한 탐사팀에 합류하게 된다. 파괴된 지구의 대안이 될 행성을 찾아 웜홀 속으로 들어간 이들이 벌이는 모험이 영화의 내용이다.

블랙홀·웜홀을 비교적 과학에 충실하게 시각화


영화의 흥행을 누구보다 반긴 쪽은 물리학자들이었다. <물리학 클래식>의 저자 이종필 박사는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실감 있게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상대성 이론·블랙홀·웜홀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의미다. 블랙홀이나 웜홀을 비교적 과학에 충실하게 시각화했다. 과학과 예술의 콜라보레이션 내지 융합이 중요하다는 걸 확인해주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웜홀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발표한 저명한 물리학자 킵 손 교수(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가 직접 관여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너선 놀란이 4년 동안 대학에서 직접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영화가 물리학에 대한 헌사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리학을 기초로 했지만 <인터스텔라>는 물리학적 허점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SF 영화 마니아들이나 물리학자들은 영화적 설정의 ‘구멍’을 지적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블랙홀 근처에서도 빨려 들어가지 않는 장면이나 블랙홀 안에서 외부로 정보를 보내는 장면 등에서 물리학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과학영화로서의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인지 다른 분야 과학자들로부터도 지적을 많이 받는다. 생물학자인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씨를 뿌리자는 건데 생태학적인 이해가 전혀 없어 보였다. 사람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백 종의 동식물과 수천 종의 미생물 정도는 가지고 나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디테일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저명한 물리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저명한 물리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오류가 영화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낙호씨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전제라고 설정하는 부분을 ‘아, 이게 저 세계의 전제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 안에서는 기가 막히게 앞뒤가 맞는다는 장점이 있다. 퍼즐로서 정합성이 좋은 것이다. <인터스텔라>도 그렇다”라고 평했다. 물리학적 지식이 있다면 더 재밌게 볼 수도 있지만 물리학을 몰라도 영화 감상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터스텔라>의 장점은 단순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과학영화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 SF 영화이기도 하지만 식량 위기를 다룬 재난영화이기도 하고, 우주를 탐험하는 모험영화이기도 하며, 딸과 아버지의 사랑과 증오를 다룬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여러 겹의 결이 있어서 관객은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과 느끼는 것을 취하면 된다. 정재승 교수(한국과학기술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시공간 여행이 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해주고, 가족주의적인 친숙한 스토리로 풀어서, 과학적 고증을 즐기는 재미까지 주는, 미덕이 많은 영화다”라고 평가했다.

<인터스텔라>의 전체 구성은 가족영화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지구적 재난을 만난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장이 영웅적 행동에 나선다는 설정이다. 영화적 외피는 <아마겟돈>이나 <우주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풀어가는 방향이다. 그래서 일반 관객은 익히 보던 영화의 관람 패턴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를 본 뒤의 잔상이 길다는 것.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인터스텔라>가 관객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

<인터스텔라>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물리학을 앞세운 철학영화라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했던 ‘정의의 상대성’ 따위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정의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 시점과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딸을 지구에 두고 떠난 아버지(쿠퍼)에게는 우주에서 해결책을 지구로 가져오는 것이 정의다. 하지만 딸을 우주에 보낸 아버지(브랜드)는 가망 없는 지구가 아니라 딸이 우주에서 살아남는 것이 정의다. 지구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자와 우주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자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정의는 또한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지구에서 생각했던 정의와 탐사선에서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고, 또 행성에서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다.

  <인터스텔라>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정재승 교수(오른쪽)와 SF 전문가 박상준씨(왼쪽).  
<인터스텔라>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정재승 교수(오른쪽)와 SF 전문가 박상준씨(왼쪽).
정의의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정의는 달라진다. 정의의 기준을 나의 생존(만 박사)에 두는 사람과 우리라는 인류에 두는 사람(브랜드·아멜라), 그리고 내 자녀에게 두는 사람(쿠퍼)은 판단이 달라진다. 이정모 관장은 “영화에서 논쟁 중에 ‘개인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족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상적이었다. 진화와 멸종은 개체가 아니라 종으로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감독은 정의의 상대성을 우주탐험대 팀원들의 논쟁 속에서, 즉 정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주관적 판단에 대해 객관적 데이터로 반박하는 아멜라에게 쿠퍼는 그런 아멜라의 판단에 주관이 개입했음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객관적 데이터는 조작된 것이었다. 여기서 주관을 지양하고 객관을 도모해야 한다는 일반 법칙에 의문이 제기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은 과학적 신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도 걷어낸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겪었던 우리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정의의 상대성에 대한 물음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너에게 숭고한 목적이 과연 나에게도 숭고한가? 숭고한 목적을 위한 과정은 무엇이든 숭고한가? 나의 숭고함을 위해 너의 숭고함을 희생할 수 있는가? 바로 이런 부분이 모두가 일심이 되어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기존 우주 재난영화와 <인터스텔라>가 다른 점이다.

이런 철학적 질문이 많기 때문에 <인터스텔라>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문화평론가 김성수씨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 같다. 기성세대가 할 일을 정확히 규정했다.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청년 시절 정의를 주장했으나 지금은 생존이 정의가 된 부끄러운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인터스텔라>는 가족주의 영화의 전형적인 결말로 끝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한국인 최초로 우주여행을 했던 이소연 박사는 <인터스텔라>를 보고 “우주인 교육을 받을 때 나이 지긋한 교관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식이나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인성은 가르칠 수 없다. 우주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때 평정심을 잃는 사람은 결정적 실수를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과학도 결국 인간의 문제’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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