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 2010)은 121군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모두 퇴짜를 맞고, 122번째 출판사에서 가까스로 출판이 결정되었다. 그때 출판사 사장은 계약금에 해당하는 통상적인 금액의 선(先)인세를 보내면서, 비록 이 선인세가 마지막 인세가 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1974년에 출간된 이 책은 발행인의 예상을 깨고 비평과 판매 양쪽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듬해에 나온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과 함께 미국의 하늘과 땅을 공평하게 양분한 히피의 성전(聖典)이자 현대의 미국 고전이 되었다.

첫 책이 나오고 한참 뒤인 1991년,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횡단했던 전편의 주인공 파이드로스가 요트를 몰고 등장하는 〈라일라〉(문학과지성사, 2014)를 내놓았다. 소설이든 영화든 원래 속편은 전편보다 허접스럽다. 누군가의 비유를 빌리자면, 속편이란 제대로 된 요리를 하고 남은 재료로 허드레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 저녁에 잡채를 만들고 나면 돼지고기를 비롯해 데친 당근이며 시금치 꽁다리 등이 약간씩 남기 마련인데, 속편은 다음 날 아침 그것들을 쓸어 모아 만든 잡탕찌개와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말미에 붙어 있는 작가의 육성에 따르면, 그의 책에는 관념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두 권의 책”이 뒤섞여 있다.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을 가리키고 있다면, 관념의 이야기는 철학을 암시한다. 소설과 철학이 어우러진 이런 특성 때문에 미국의 여러 서점에는 그의 책이 소설 서가가 아닌 철학 서가에 진열되기도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소설과 철학이 뒤섞인 ‘두 권’의 책을 완성한 피어시그는 밀란 쿤데라가 이상적이라고 극찬하는 궁극의 소설을 떠올려준다.
 

ⓒ이지영 그림

소설가이면서 음악학자이기도 한 쿤데라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하모니(화음) 위주였던 데 비해 베토벤을 앞세운 고전주의와 슈베르트·슈만이 꽃피운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멜로디(선율)가 부상한다고 말한다.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 음악에는 한 음악 속에 다양하고 개별적인 하모니가 다성성(多聲性)을 이루고 있지만, 멜로디가 작곡의 주된 목적이 된 고전주의 시대 이후로는 다성성이 억압되면서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즉각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멜로디가 독재를 하게 된다. 쿤데라의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을 보면 소설 역시 음악처럼 퇴보하는 모양이다. 프랑수아 라블레나 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같은 작가들이 쓴 초기 소설에는 “자유분방한 이야기들과 철학적인 성찰들”이 혼거하고 있으나, 현대 소설에서는 철학적 성찰이라고 해야 할 에세이(=하모니)는 빠져나가고 앙상한 스토리(=멜로디)만 남게 된다. 물론 쿤데라의 논의 깊은 곳에 가서는 피어시그의 소설과 결별하게 되지만, 일단 피어시그의 작품에 나오는 철학적 장광설을 현대 예술이 잃어버린 하모니라고 부르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 작품이 전날 만들고 난 요리 재료로 그럭저럭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의미의 속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대개 전편의 후일담이 되고 마는 스토리 중심의 소설과 달리 철학적 성찰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 작품의 에세이적 운명에 있다. 이런 소설에는 전편에서 헤어진 연인도,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사고의 진전 여부다. 두 작품의 주인공인 파이드로스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이렇게 호언하지 않았던가? “파이드로스는 그가 알기로는 서양사상사에서 누구도 결코 전에 취했던 적이 없는 길을 택했다. 즉, 그는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딜레마의 양 뿔 사이로 곧장 다가가서, 질(Quality)은 정신의 일부도 아니고 물질의 일부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정신과 물질 모두와 관계없는 별개의 것, 제3의 실체임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제 세계는 정신, 물질, 질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과 철학이라는 이분법에 구애되지 않는 형식
 

〈라일라〉로버트 M. 피어시그 지음장경렬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

요트를 타고 이리(Erie) 운하를 출발해 혼자서 플로리다까지 가려던 파이드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닿기 직전인 킹스턴 항구에서 라일라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를 자신의 배에 태우게 된다. 그녀는 속된 표현으로는 헤픈 여자이며, 좋게 보아 히피이고, 정신병을 앓고 있다. 전편에서부터 질(Quality)을 탐구해온 파이드로스가 라일라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여로 소설은 관념으로 버무려진 주인공의 내면 여행에 그칠 뻔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라일라를 포용함으로써 질(선·도덕·가치)이 형이상학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게 아니라 동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질은 생물적→사회적→지적 층위의 진화 단계를 모두 종합하면서 닫혀 있는 사회를 열고 문화를 비약시키는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요소다.

만들어진 미국의 신화 가운데 하나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102명의 청교도가 미국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이 신화는 미국의 기원에 한 무리의 순수한 청교도가 있었다고 강변하지만, 너대니얼 호손의 어떤 작품은 거기에 청교도가 아닌 이교도도 타고 있었다고 말한다. 피어시그는 신화를 파괴하는 대신, 신대륙에 당도한 청교도의 일부는 유럽의 고루한 사회적 관례를 모방했으나 대부분은 인디언 문화에 동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인디언의 규범이 미국 문화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청교도 정신과 반대되는 가치를 표방한 히피도 거기서 나왔다. 하지만 한때 히피 문화의 기수였던 지은이는 1950년대 이후에 생겨난 자유주의적 지식인과 히피 혁명에 비판적이다. 애초에 히피 혁명은 사회적 관례와 지적 차원 모두에 대항하였으나 곧 생물적 쾌락에 빠져들었다. 또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인권’이라는 두루뭉술한 정서를 앞세워 미국의 사회적 타락을 불러왔다. 질에 대한 고려 없이 자유주의적 다양성만 충족시키려는 자유주의 진영의 나태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는 우려는 오늘날 여러 학자들의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스토리)와 철학적 성찰(에세이)이 완벽하게 합쳐진 걸출한 소설로 단연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 1997)를 꼽을 수 있다. 〈라일라〉에 면면히 흐르는 것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라는 불교 공안(公案)이었듯이, 박상륭 소설의 근간은 혜능(慧能)이 육조(중국 불교 선종 6대조)가 될 때 읊었던 게송(偈頌: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이다. 서구의 형이상학과 과학기술적인 사고를 해체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노력은 사변을 뛰어넘어, 문학과 철학이라는 이분법에 구애되지 않는 원시적(?)인 소설 형식으로까지 나아갔다. 소설도, 돌아가야 산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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