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갈아먹다 속도 갈리지
  • 정재훈 (약사·〈생각하는 식탁〉 저자)
  • 호수 372
  • 승인 2014.11.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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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세계적 열풍이라 할 정도로 해독이 화두가 되더니 요새는 우리나라 언론 매체에서도 ‘해독주스’가 자주 오르내린다. 양배추·브로콜리·당근·토마토는 삶고, 사과와 바나나는 생으로 갈아 마시면 우리 몸에 해로운 노폐물과 독소를 배설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건강에 좋다는 식품이 뜨고 지는 일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왔다.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초 대한민국을 주름잡았던 식품은 녹즙이었다. 케일, 신선초(명일엽), 셀러리에 집 앞 풀밭에서 뜯어온 민들레까지 함께 넣고 녹즙을 짜냈다. 매일 아침이면 녹즙기의 날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맛은 고약할 정도로 쓰지만 건강에는 좋다는 생각에 녹즙을 마시면서 다들 힘겨워했다. 다시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에는 컴프리가 인기 절정이었다. 컴프리는 이전까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던 목초에 불과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건강식품으로 탈바꿈했다. 비타민 B12를 비롯해 여러 가지 유익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컴프리에는 ‘기적의 풀’이라는 명칭까지 붙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컴프리를 차로, 즙으로, 분말로 먹으면서 효과를 기대했다. 이보다 앞서, 1950년대에는 메추리알의 위세가 대단했다. 건강에 좋다는 메추리알의 수요 급증으로 수입 통관업무의 부담이 커진 나머지, 농림부와 상공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싸울 정도였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메추리알의 인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식어버렸고 시세는 폭락했다. 메추리 사육에 뛰어든 일부 업자들은 파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한편 컴프리에는 피롤리지딘(pyrrolizidine)이라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컴프리가 간 기능 손상과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식품 원료로서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우리나라 식약청(현 식약처) 또한 컴프리를 식품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녹즙 역시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녹즙기 쇳가루 파동이 터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녹즙 열풍이 가라앉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의 식품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떴다가 지는 과정에는 공통으로 발견되는 공식이 있다. 어떤 식품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한두 건의 연구 결과 또는 전문가의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면, 마치 종교가 전파되듯 이야기가 퍼진다. 여기에 실제로 효과를 보았다는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이 더해지고, 미디어를 통한 뉴스의 재생산으로 그 식품의 우수성과 효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하지만 영원한 유행이란 없는 법. 시간이 지나며 그 식품에 생각만큼 효과가 없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해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추종하던 사람들의 열정은 차갑게 식는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차세대 스타가 될 다른 식품을 찾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해독주스는 건강에 좋다는 수많은 다른 식품이 뜨고 지게 만든 공식으로부터 자유로울까? 해독주스는 과연 믿을 만한 효과가 있으며 누구에게나 안전한 식품일까?

인터넷에는 해독주스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많다. 해독주스를 마시고 나서 피부가 좋아졌다, 체중이 감량되었다, 변비가 사라졌다는 식이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유익하며 변비를 비롯한 소화 장애를 앓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영국·미국·독일·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루에 400g 이상의 과일과 채소를 먹자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독주스에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 이상의 ‘해독’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우리 몸에서 해독은 간과 신장에서 하는 일이지 음식에 맡겨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에서 흡수된 음식 성분이 제일 먼저 간을 통과하는 이유도 간에서 독성 물질을 걸러내기 위해서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고선경〈/font〉〈/div〉건강에 좋은 채소와 과일이라 할지라도 한 번에 많은 양을 갈아서 먹는 것은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들어간 해독주스가 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간을 자극해서 대사효소를 더 많이 만들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근과 셀러리는 동일한 효소를 억제한다. 해독주스 속 양배추의 효과는 당근에 의해 상쇄되는 셈이다. 실제 음식 속에는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성분들이 들어 있어서 서로 작용을 방해하기도 하고 돕기도 하므로,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매우 복잡하다.

녹즙, 컴프리, 메추리알, 해독주스…다음은?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는 건강한 지원자 10명을 대상으로 해독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해독주스나 해독 식단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어서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참가자들 수가 적기는 했지만,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실험에서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일주일 동안 한 그룹에게는 해독주스와 채식 중심의 엄격한 식단에 따르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평상시처럼 적색 육류와 술·커피·빵·과자 등의 다양한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않도록 했다. 일주일 뒤에 검사한 결과, 두 그룹의 간 기능과 신장 기능에는 어떠한 차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혈중 알루미늄 농도와 항산화제 수치에도 차이가 없었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독성학 교수 앨런 부비스는 실험 결과를 요약하며, 해독주스나 해독 식단에는 독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전무하다고 말했다.

해독주스를 마셔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는 흡수율 문제는 어떨까? 생채소의 흡수율은 10%에 불과하지만 삶으면 60%, 그것을 다시 갈아 먹으면 90%까지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는 해독주스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식물세포에는 동물과는 달리 겉을 둘러싸는 단단한 세포벽이 있다. 과일과 채소 속의 당분은 그래서 서서히 흡수된다. 과일과 삶은 채소를 갈면 흡수 속도는 빨라진다. 혈당치가 급격히 상승하면 우리 몸에서는 과도한 양의 인슐린이 분비되고, 이로 인해 도리어 허기지게 되기 쉽다. 당분 섭취를 조심해야 하는 당뇨 환자들이 해독주스를 피해야 하는 이유다. 과일과 채소를 그대로 먹는 것과 주스로 갈아서 마시는 것은 다르다. 앞서 언급한 여러 국가들에서는 과일과 채소의 섭취를 장려하면서도, 주스로 마시는 경우는 하루 한 컵 정도로 제한하거나 아예 제외하고 있다. 과도한 당분 흡수 문제 때문이다.

건강에 좋다는 채소와 과일이라 할지라도 한 번에 많은 양을, 그것도 갈아서 먹는 것은 우리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간에서 해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피부에 독성이 나타난다. 음식 그대로 먹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던 사람이 해독주스를 마시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부작용은 해독주스의 성분이 도리어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몸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신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녹색 채소에는 칼륨이 많이 들어 있는데, 주스로 한 번에 많은 양의 칼륨을 섭취하면 신장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와파린과 같은 항응고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의 경우는 약효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녹즙, 컴프리, 메추리알이 그랬듯, 해독주스 열풍이 식고 나면 또다시 건강에 좋다는 다른 식품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어떤 식품이 되든지 관계없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 좋은 음식은 없으며, 과식은 독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골고루 먹되 가급적 소식하라’는 원칙 하나만 지키면 충분하다. 그 밖의 잘못된 건강 지식에 휘둘리면 당신의 지갑을 비우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몸을 정화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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