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에 사는 파트리크 슈튀빙(38)은 독일 형법 제173조를 어긴 죄로 지금까지 세 번 처벌을 받았다. 2008년 세 번째 재판에서는 징역 3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나온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공공연히 형법 173조를 무시한다. 이 법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며 독일 헌법재판소와 유럽 인권법원에 심판 청구를 하는 등 지난 14년간 투쟁을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주홍글자가 벗겨졌다. 지난 9월24일 독일 윤리위원회(Deutschen Ethikrat)는 형법 173조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법 개정을 권고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법이기에 슈튀빙 씨가 인생을 걸고 싸워온 것일까. 그건 바로 근친상간 금지법이다. ‘친족 간의 성교행위’라는 이름을 단 이 법은 1항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성행위를, 2항에서 친족 간의 성행위를 규제하고 있으며 법을 어기면 최대 징역 3년형을 내릴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파트리크 슈튀빙의 아내 주잔 카롤레프스키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점이다. 2007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떻게 여동생과 결혼하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여동생이 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됐다. 주잔을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우린 서로의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다.”
 

파트리크 슈튀빙(왼쪽)은 여동생인 주잔 카롤레프스키(오른쪽)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

슈튀빙은 세 살 때 아동 위탁기관에 맡겨져서 자랐고 일곱 살 때 입양됐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생모가 사망하면서 슈튀빙은 원래 가족과 재회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여동생 주잔(당시 16세)을 만난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은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슈튀빙 이야기는 독일 사회를 달군 논쟁거리였다. 첫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 간호사가 이 부부가 남매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독일 사회에 알려졌다.

윤리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사회의 윤리 도덕을 가르는 기준이다. 2007년 설립된 윤리위원회는 의사·과학자·법률가 등 24명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근친상간 금지법 개정 권고안에는 14명이 찬성했고 9명이 반대했다. 1명은 기권했다.

독일에서 근친상간 문제는 희귀한 편이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 조사에서 독일인 2~4%는 친족 간에 어떤 과정으로든 성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독일 윤리위원회는 이들이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받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원회는 “성인 남녀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기본권은 가족 보호라는 모호한 개념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Deutscher Ethikrat독일 윤리위원회는 9월24일 근친상간 금지법인 형법 173조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법 개정을 권고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물론 윤리위원회 결정으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독일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형법 173조를 개정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변인은 “근친상간 금지법을 폐지할 경우 아동이 안정된 환경에서 정서를 발달시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라며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기독교사회당(CSU)의 스테판 마이어 대변인도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비도덕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유전병 확률이 근친상간 금지 근거 될 수 있나

의학계 일부도 반발하고 있다. 아헨 대학병원의 인간유전학연구소 소장 클라우스 제레스 박사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근친 부부끼리 출산한 자녀가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열성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유전병은 이를 가질 확률이 2500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일반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을 경우 유전병이 발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유전병이 발현될 확률이 4분의 1로 급증하게 된다.

제레스 박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저런 각종 유전병 인자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그 유전병 인자가 열성이기 때문에 발현되지 않을 뿐이다. 만약 근친혼을 한다면 아이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견해는 2008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형법 173조가 합헌이라고 판결하게 된 근거로 쓰였다.

실제 슈튀빙 씨의 네 자녀 가운데 두 명은 장애가 있고 셋째는 심장 수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기를 출산하면 유전병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부모의 성행위 자체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꼭 근친이 아니더라도 유전병을 앓는 사람끼리 성행위하는 것을 다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독일 윤리위원회는 “유전병을 가진 아기를 출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는 근친 간의 성행위를 법으로 막을 근거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근친끼리 결혼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족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장려했고, 현대 아랍 사회에서는 사촌끼리 결혼하는 풍경이 흔하다. 독일을 비롯한 현대 유럽 국가 대부분은 근친 간 성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근친상간과 관련한 어떤 법적 규제도 없다. 한국의 경우는 8촌 이내 친족 간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지만, 성행위에 관한 언급은 없다.

한편 파트리크 슈튀빙 이야기는 진화심리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정신심리학자 데브라 리버먼은 어렸을 때 같이 시간을 보낸 이성끼리는 성경험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비슷한 연구 결과는 많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유아 때부터 부모가 결혼 상대를 미리 정해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어릴 때부터 예비 신랑 신부가 같은 집에서 살곤 했다. 이런 전통에 따라 결혼한 사례를 추적한 결과 결혼 생활이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혼율은 일반 평균보다 높았고 출산율은 일반 평균보다 낮았다.

슈튀빙이 주잔과 사랑에 빠진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슈튀빙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연인끼리 사랑을 나누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달리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기자명 신호철 (뉴스 페퍼민트)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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