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스타 경제학자’, 소득 불평등을 분석하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367
  • 승인 2014.09.30 08: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근본 속성이라지만 격차를 줄일 순 없을까. 피케티는 글로벌 차원에서 높은 세율의 누진세를 부과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제안한다. 세제 강화에 과도한 의의를 부과했다는 비판도 인다.
이미 ‘존재’하는 것이 있다. ‘생성(生成)’하는 것도 있다. 다만 닭이 있어야 달걀이 있듯이, 존재가 있어야 생성도 있다. 지금 생성한 것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존재로 확립되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시킨다. 이렇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진다. 다만 그리스 신들 이전 시대의 거인족처럼, ‘아비(사투르누스)’가 자식을, 존재가 생성을, 과거가 현재를 집어삼키는 사태도 벌어진다.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록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묘사한 현대 자본주의가 그렇다.

피케티에게 ‘생성하는 것’은, ‘지금 여기’ 인간들의 근육과 두뇌로부터 나오는 ‘살아 있는 노동(산 노동)’이다. 산 노동은 수익으로 응결되고 다양한 형태 변화를 거쳐 공장·토지·기계·원자재·화폐 등 자본으로 굳어진다. 자본은 ‘죽은 노동’이다. 죽은 노동(자본)은 산 노동(예컨대 공장에 고용되어 기계를 작동시키는 노동자)과 함께 ‘부(富)’를 창출하고 나눈다. 이렇게 분배된 것 중 자본의 몫을 자본소득, 노동의 몫을 노동소득이라고 부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의 모습(위)은 상징적이다. 피케티는 세계 자본주의가 19세기 말 수준의 불평등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 자본가와 노동자(임금소득자)만으로 구성된 ‘가상의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는 공장·토지·기계·원자재·화폐 등 600억원에 이르는 자본이 있다. 자본은 모두 자본가의 소유다. 그는 자신의 자본을 노동자들(피케티 개념에서는 경영자도 포함)이 생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한 해 동안 100억원(국민소득)에 상당하는 재화가 생산된다. 자본가는 국민소득 중 30억원을 챙겼다. ‘자본’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돈이다. 노동자들은 나머지 70억원을 받았다.

문제는, 자본이 국민소득 중 어느 정도를 챙기느냐다. 그 몫이 지나치게 많으면 세상은 그만큼 불평등해진다. 이를 측정하는 지표로 피케티는 ‘자본소득률(α:국민소득 중 자본의 몫)’을 제시한다. 자본소득률이 클수록 불평등한 사회다. ‘가상의 나라’의 경우, 국민소득(100억원) 중 30억원이 자본의 몫이니 30%다. 그런데 이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본소득은 30억원이 아니라 10억~20억원이나 70억원이 될 수도 있었다. 왜 하필 30억원인가?

피케티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자본수익률(r)’을 지목한다. 문자 그대로, 자기 소유의 자본(돈이든 공장이든 기계든)을 남에게 사용하도록 허용한 대가로 연간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다. 이 나라의 연간 자본수익률은 5%(자본소득 30억원÷소유자본 600억원×100)다.

그런데 같은 수익률이라 하더라도 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자본소득 역시 늘어날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연간 국민소득에 대비하여 나타낸다. 이른바 ‘자본소득배율(β)’이다. 해당 사회의 자본 규모가 ‘연간 국민소득의 몇 배인가’라는 의미다. 이 나라의 경우, 자본소득배율(β)은 6(자본 규모 600억원÷국민소득 100억원)이다. 피케티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시한다. α(자본소득률)=r(자본수익률)×β(자본소득배율)

즉, 국민소득 중 자본의 몫(자본소득률)은, 자본수익률과 자본소득배율(이하 ‘배율’)이 높을수록 커지고, 그만큼 불평등은 심화된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자본주의

피케티가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 동안 불평등 정도의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배율’이다. 변동 폭이 매우 컸다. 배율이 높아지는 경우, 이른바 ‘자본집적도가 상승했다’라고도 표현된다. 예컨대, 노동자 10명이 1억원짜리 기계로 텔레비전을 10대 만들었는데, 같은 양의 제품을 노동자 5명과 2억원짜리 기계로 생산하게 되는 경우다. 기계는 당연히 자본가의 소유다.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기계(자본)로 대체되면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임금(노동소득) 수준 역시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배율의 상승은, 지금 일하고 있는 ‘살아 있는 노동’보다 ‘죽은 노동’인 자본에 점점 더 많은 소득이 배분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불로소득자가 많아진다. 더욱이 자본은 상속되므로, 자본주의는 점점 더 부유층의 상속자들만 떵떵거리고 대다수의 ‘산 노동’들은 위축되는 ‘상속 사회’로 전락한다. 과거의 ‘죽은 노동’이 현재의 ‘산 노동’을 집어삼킨다.

한국의 진보·개혁 성향 학자들 역시 〈21세기 자본〉 (위)의 분석과 결론에 동감하는 편이다.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서구 선진국의 배율은 소득격차가 격심했던 19세기 말에 6~7(자본소득률은 30~35%) 수준이었다. 고성장과 비교적 평등한 소득분배가 이뤄졌던 1970년대 중반에는 2~3(자본소득률 15~ 25%)까지 떨어진다. 이후 다시 치솟아 2010년에는 6(자본소득률 25~32%)에 접근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배율이 이렇게 급상승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전체보다 자본이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좀 무리하지만, 200억원의 자본으로 어느 해에 100억원의 국민소득을 올린 나라를 가정하자. 이 나라의 배율은 2(자본 200억원÷국민소득 100억원)다. 한편 이 나라의 성장률(g)은 10%, 저축률(s)은 60%로 가정한다. 자본가들이 매년 국민소득 중 60%(이 해에는 60억원)를 분배받아서 모두 저축하는 상황이다(노동자들은 소득이 작아서 저축할 여력이 없다.) 이 60억원은 결국 자본으로 편입되어 그 규모를 확대한다.

이에 따라 다음 해, 자본 규모는 260억원(전년도의 자본금 200억원+저축된 60억원)이 된다. 국민소득은 100억원에서 10% 성장해 110억원으로 증가한다. 배율은 전해의 2에서 2.36으로 상승한다. 자본가들은 국민소득 110억원의 60%인 66억원을 저축해 다시 자본으로 편입시킨다. 그다음 해의 자본 규모는 326억원으로 늘어나지만 국민소득은 121억원으로 늘어날 뿐이다. 배율은 2.69로 증가한다. 국민 전체의 소득은 천천히 늘어나지만 자본 규모는 비교적 급속히 올라간다. 자본가들이 저축을 덜 했다면(자본 규모를 덜 늘렸다면) 혹은 성장률이 더 높아서 국민소득 중 자본으로 편입되는 몫이 작아졌다면 배율 역시 낮아졌을 것이다. 배율은 저축률에 비례하고 성장률에는 반비례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케티가 도출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β(자본소득배율)=s(저축률)÷g(성장률)

이 공식에 따르면, ‘성장률 10%-저축률 60%’인 사회의 배율은 장기적으로 6까지 올라간다. 만약 성장률이 20%로 상승하고, 저축률이 40%로 낮아진다면, 이 나라의 배율은 2까지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배율이 작아지는 만큼 자본소득률도 낮아져 불평등이 개선될 것이다.

〈21세기 자본〉의 결론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배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세계 자본주의가 19세기 말 수준의 불평등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피케티의 견해다. 이는 자본주의를 잘못 운영했기 때문이 아니다.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이다. 비교적 평등하게 번영했던 황금기(1940~1970년대)가 오히려 예외적 시대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배율을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다. 다만 피케티에 따르면, 세계경제 역사상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적은 없다(위의 그림 참조). 자본을 가진 계급은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으로 강력하다. 다만 두 수치 간의 격차(수익률-성장률)를 줄일 수는 있다. 실제로 황금기는 경제성장률이 치솟은 시기였다. 그러나 기대할 수 없는 대안이다. 피케티는 경제성장률이 기술혁신의 지체, 인구증가율 하락 등으로 이후에도 계속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밖에 없다. 이자, 배당금, 로열티 등 자본의 소유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상속에 높은 세율의 누진세를 글로벌 차원에서 부과하는 것이다. 세계가 주목한 〈21세기 자본〉의 결론이다.

한국의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들 역시 피케티의 분석과 결론에 동감하는 편이다. 그의 분석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류동민 교수(충남대)와 주상영 교수(건국대)는 지난 8월 한국사회경제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의 ‘배율’이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6 정도에서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급격히 상승해 현재는 7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라고 주장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정태인 원장은 지난 5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배율’이 2000년의 4.81에서 2012년 현재 6.06으로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대안은 자산(자본)과 소득의 재분배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연구소인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김공회 연구위원은 “피케티가 불평등의 원인을 자본주의 자체로 보면서도 세제 강화에만 과도한 의의를 부과했다”라고 비판했다. 피케티가 생산 영역을 도외시하고 분배에만 집착하면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생산 영역 내부에서 이뤄지는 노동자본 간 계급투쟁, 이로 인한 기술혁신 및 경제 시스템 변동 등을 포착하는 데는 소홀한 편이다.

“불평등이 완화된 시대는 세율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높았지만 노동운동이 융성한 시기이기도 했다. 자본수익률을 낮추는 데 세금과 노동자의 저항 중 어느 쪽이 더 결정적일까? 자본수익률(과 자본소득률)을 낮춘 고율의 소득세제도 강력한 노동자 계급 덕분에 가능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