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되잖아요. 비리로 감옥 갔던 사람이 총장이라니….” 여름방학 기간인 8월19일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 본관 총장실 앞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 정성훈씨(23·무역학과 3학년)가 말했다. 정씨는 이틀 전인 8월17일 밤부터 이곳에서 은색 돗자리를 깔고 쪽잠을 잤다. 다른 학생 20여 명과 함께였다. 그의 옆에는 원산지관리사 자격증 수험서와 이불, 베개가 놓여 있었다.

수험생 25명의 부정 입학을 지시하고 타인 명의로 땅을 사들여 1993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상지학원 전 이사장 김문기씨(82)가 8월14일 상지대 총장에 선임됐다(아래 사진 ‧ “열심히 하면 교육부도 도와주겠지” 기사 참조). 김씨는 8월18일 같은 재단의 전문대학인 상지영서대 본관으로 출근해 임명장을 받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
ⓒ시사IN 이명익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
이날 학생 10여 명과 상지영서대 본관 앞에 항의하러 간 홍지현씨(21·한방의예과 4학년)는 끝내 새 총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홍씨는 “학생들이 지키고 있으니 뒷길로 들어갔다고 하더라. 임명장도 당당하게 못 받는 사람이 무슨 총장 자격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교육부 소속 행정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2010년 결정이 김씨 복귀의 물꼬를 텄다. 당시 사분위는 상지대 정상화 여부를 심의해 정이사 9명을 선임했는데, 이 가운데 옛 재단 쪽 추천 인사 4명이 포함됐다. 그때 이사로 들어온 김씨의 둘째 아들 김길남씨(상지문학원 이사장)가 올해 3월31일 이사장에 오르면서 옛 재단의 복귀가 현실화됐다. 이에 앞서 교육부·대학 구성원 추천이사 3명이 “옛 재단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라며 사임하고, 올해 5월 사분위가 옛 재단 쪽 인사 1명을 정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회는 완전히 옛 재단에 의해 장악됐다. 이 이사회가 김문기씨를 이사에 앉혔고, 결국 총장으로 선임했다.

‘김문기 총장’을 만든 데는 교육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상지대 교수협의회에 따르면 옛 재단 쪽 이사 4명은 2013년 한 해 15차례 열린 이사회 중 11차례에 집단 불참했다. 임원 간 분쟁으로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가 생겼을 때는 사학법에 따라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는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상화로 옛 재단 추천 이사 3명이 들어온 뒤 이사회 파행을 겪어 올해 4월28일자로 임시이사진이 다시 파견된 대구대와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정영준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장은 “총장 선임은 못했지만 예산이나 교수 임용 등 기본적인 결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상지대는 이사회 파행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대화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은 “이사회 파행으로 3년간 준예산으로 운영했고 교수는 물론 총장도 뽑지 못해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됐는데도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정상화’를 겪은 다른 대학들을 보면 옛 재단 추천이사가 들어온 뒤 재장악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세종대는 옛 재단이 복귀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공금 113억원 횡령으로 물러난 주명건 전 이사장은 2010년 정상화 당시 정이사 5명을 추천했다. 2013년에는 교육부 승인을 받아서 본인이 정이사로 복귀했다. 교육부가 비리 당사자 복귀의 선례를 남긴 셈이다. 현재 세종대 이사회는 이사 8명이 모두 주명건씨 쪽 인사다. 조선대의 경우 정상화 뒤 들어온 옛 재단 인사 3명이 법에 정해진 개방이사를 뽑으려 하지 않고, 옛 재단 사람을 이사장으로 앉히려 해 파행을 겪었다. 교수협의회장으로 3년간 활동하며 2차례 단식과 삭발을 한 윤창륙 조선대 교수는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8월19일 오전 상지대학교 본관 앞에서 ‘김문기 이사 및 총장선임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8월19일 오전 상지대학교 본관 앞에서 ‘김문기 이사 및 총장선임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분위가 뿌린 분쟁의 씨앗

애초에 옛 재단에 과반수 추천권을 부여하는 사분위가 분쟁의 씨앗을 뿌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당시 교육부는 비리 당사자인 김문기 전 이사장을 정이사에서 배제하고 임시이사도 1명 선임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4년 뒤 김씨 일가가 이사회를 장악했고 당사자는 총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김동우 세종대 교수협의회장은 “일종의 말장난이라 본다. ‘당신은 복귀하면 안 되지만 당신이 추천한 사람은 복귀해도 된다’고 하는 식이다. 비리 재단 복귀를 몇 년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1기, 2기 사분위원으로 활동했고 2010년 사분위 활동에 한계를 느껴 사임한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과)는 “종전이사는 이해관계자로서 의견 표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비리를 저지른 옛 재단에 추천권과 피추천권을 줄 사학법 및 동 시행령상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현 사분위 법률특위가 판례와 법 정신을 왜곡해 적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8월22일 김문기씨의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8월25일 김씨의 이사 취임 승인 신청을 반려 처분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김씨의 총장직 사퇴를 거듭 압박했다. 김씨는 8월29일 현재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옛 재단의 끈질긴 복귀 시도와 교육부의 방관이 상지대의 시계를 21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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