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0일 ‘응답하라 국회의원’(www.heycongress.org) 사이트가 열렸다. ‘뭐든 이제 움직이라’며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호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사이트의 목표는 2만명 참여와 국회의원 모두의 응답이었지만 개설된 지 4개월이 지난 현재, 고작 국회의원 29명의 두루뭉술한 응답을 얻는 데 그쳤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캠페인이 지속되지 못한 것이다. 영향력 있는 IT인들의 참여도 SNS상에서 반짝 일어나다 말았다.

한편 요즘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창업자 주커버그를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상징적인 IT계 인사들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얼음물을 뒤집어쓰고는 다음 캠페인을 이어받을 세 명을 지목한다. 지목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똑같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루게릭병 관련 단체에 후원금을 기부할 수 있다. 대부분은 두 가지 모두를 수행한다. 이 캠페인은 미국과 밀접하게 일하는 한국의 IT 인사들에게도 고작 며칠 만에 전파되어 8월 말 현재까지 SNS상에 확산 중이다.

물론 ‘응답하라 국회의원’의 실패와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성공을 동등한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캠페인의 뚜렷한 차이점을 보면서 국내 ICT(정보통신 기술) 분야 인사들의 현실 참여가 여전히 ‘가볍고, 정치적이지 않은’ 부분에만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빌 게이츠 페이스북 갈무리빌 게이츠가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루게릭병 단체에 기부하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다.
국내 IT 영향력자들이 따라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첨예한 논란이 있는 분야에 대한 토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페이스북은 최근 미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주커버그는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적”이라고까지 말한다. 미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감시 비판하는 주커버그와 달리…

하지만 한국의 실명제 논란과 액티브X 및 공인인증서 논란, 개인정보 취급 부실 등 뜨거운 논쟁거리에 대해서도 한국 IT업계 ‘어른’들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거의 7~8년을 실명제에 맞서서 다양한 분야 인사들이 싸워왔지만, 결국은 IT 문외한들이 만드는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 바빴다. 정부가 선거 때마다 포털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국계 업체들의 서버는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가만두었지만, 국내 업체들은 번번이 압수수색을 허용했다. 그 결과 국내 인터넷상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위축됐다. 그럴 때마다 IT 분야의 ‘어른’들은 모두 은둔만 할 뿐 제대로 된 업계의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최근 여성가족부의 게임 규제 논란이 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임계는 가상사회를 가꾸는 데에만 노력을 쏟다가 막상 현실의 규제에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응축된 힘으로 표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한국 IT 분야의 고질병은 자기 비하와 서구에 대한 자발적 사대주의다. 최근 국내 IT 창업자들이 들고 나오는 아이템은 한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독특한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모두 미국과 중국의 시장 상황을 겉핥기로 공부한 후 그들의 아이템을 베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고는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정책적 지원이 미진하면 ‘한국은 이게 문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되는데 우리나라는 왜 안 되나’라고 투덜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다음카카오가 합병 이후 직원들 호칭을 영어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는 황당한 소식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을 가상사회로만 보는 관점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인터넷과 현실 세계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IT 업계 인사들은 자신들이 받은 혜택과 사회적 영향력을 돈 버는 곳에만 쓰지 말고 현실 세계로 나와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자명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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