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위 연못에서 물이 솟아올라와 ‘용연동’이라고도 불렸던 경북 영천의 괴연동. 이곳에서 박도문 할아버지(88·사진) 집안은 11대째 살고 있다. 처음에 작은 연못이었던 저수지는 점점 커져서 광복이 되던 1945년 지금의 괴연저수지(저수량 6만1000㎥)로 축조되었다.

저수지도 사람처럼 늙는 법이라 내구연한 60년을 훌쩍 넘긴 괴연저수지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물이 새어나왔다. 시청에 신고도 해봤지만 감감무소식. 그러다 8월21일 결국 사달이 났다. 10m 규모의 물넘이가 붕괴되면서 할아버지의 들깨밭이 쑥대밭으로 변한 것이다.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냐며 안도했지만 추석을 앞두고 쓸려버린 밭을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한숨이 나오는 건 영천시청도 매한가지다. 시가 관리하는 저수지가 928개나 되지만 관련 예산은 19억원에 불과하다. 관리를 못했다고 탓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예산인지라 전문가들은 저수지 같은 물관리 시설은 지방재가 아닌 국가재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쌀 시장도 제 맘대로 열어젖히는 정부에게 저수지까지 맡기자고? 차라리 이렇게 쑥밭이 되어 저수지라도 한번 고치는 게 속 편하다. 농민들 마음이야 이미 쑥대밭이니.

ⓒ시사IN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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