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던 비행기가 우리 집 정원에 추락하지 않을까? 커다란 버스가 눈밭에 미끄러져 구르지나 않을까? 그 승객들을 모두 치료하고 먹일 재료들은 충분할까?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아 캄캄해지면 박하와 잡초를 어떻게 구별하지?

마이어 부인은 이런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다. 남편이 차를 끓여주고 안아줘도 소용이 없다. 그런 마이어 부인이 어느 날 눈도 못 뜬 새끼 지빠귀를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온다. 비행기, 눈, 어둠 걱정은 모두 순식간에 잊힌다. 둥지를 만들어주고 파리며 애벌레며 모기를 잡아 먹이는 등 정성을 다하는 마이어 부인. 새가 어느 정도 자라자 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지은이 볼프 에를브루흐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처럼 서너 살 아이들도 깔깔거리게 만드는 똥 이야기에서부터 〈내가 함께 있을게〉처럼 통렬하면서도 뭉클한 죽음 이야기까지를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다. 인간의 밑바닥 욕망이나 공포를 실감나게 터뜨려놓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삶의 지평을 뜻밖의 국면으로 넓혀서 보여주는 책도 있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는 후자의 경우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볼프 에를브루흐 지음,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 시범을 보이면 된다. 벚나무 가지를 헉헉대며 오른 마이어 부인이 팔을 휘저어 보이지만 새는 꼼짝하지 않는다. 녀석이 지빠귀가 아니라 펭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석양에 잠긴 푸른 초원, 저 멀리 반대편 숲, 구름 두 조각이 나란히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앉아 있던 중 ‘문득 기이한 느낌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고, 나뭇가지에서 살짝 미끄러져 내려간 그녀는 하늘을 난다!

쓸데없는 비현실적 걱정이 많은 아줌마가 어미 잃은 새를 살려내는 일로 그런 걱정을 잊는다는 전반부 이야기는, 공허해 보이는 거대담론 대신 눈앞의 작은 현실에 충실하기를 권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복선도, 그럴 법한 장치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목에서 이 상식적인 해석은 와장창 깨진다. 뭐지? 새끼 새의 엄마 노릇을 하다 보면 어미 새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해방감과 기쁨 안겨준 마이어 부인의 비행

안 될 것 있겠는가. 이 책의 즐거움은 그렇게 현실적 유용성과 개연성을 순간적으로 가뿐하게 넘어서는 자유분방함에 있다. 울퉁불퉁 덩치 큰 아줌마가 어리벙벙한 얼굴로 어설프게 공중에 떠 있다가 능숙하게 하늘을 날게 되기까지의 세 장면은, 굳이 근거를 따지고 싶지 않은 해방감과 기쁨을 안겨준다. 비밀스러운 미소, 빛나는 얼굴, 잠깐 아침비행 다녀오겠다며 노래하듯 하는 말. 걱정쟁이 마이어 부인이 이렇게 변한다. 그 변화로의 어려운 걸음을 처음 내딛고 난 그녀의 말은 이것이다.

“아주 쉽단다! 자, 우리 함께 해보자!”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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