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에게 이번 동작을 보궐선거는 총선만큼 중요했다. 당의 간판급 정치인을 내세워 건곤일척으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의 양보를 얻어냈다. 외부의 기대도 컸다. 투표율도 46.8%로 7·30 재·보선 평균(32.9%)을 상회했다. 정의당의 선거 몰입도는 대선에 가까웠다. 그러나 당선까지는 929표(1.21%포인트)가 모자랐다.

표면적으로 노회찬 후보의 석패는 의미 있는 선전(善戰)으로 볼 수 있다. 단일화 이전에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 파동을 겪는 바람에 재·보선 구도가 전체 야권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의당이 노회찬이라는 대표 브랜드를 앞세우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결과는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커졌다. 이번 선거 패배로 인해 그동안 정의당 등 진보 정당이 견지해온 생존 전략들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미가 보인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정당은 야권에서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했다. 첫째, 경쟁력 있는 후보가 수도권에서 ‘야권 연대 전략’을 구사한다. 둘째, 영호남 지역에서 제2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지역 기반 전략’이다. 그동안 지역 구도를 보면, 호남 주민들은 새누리당을, 영남 주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정치적 선택에서 꺼리는 경향이 컸다. 진보 정당이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각 지역에서 제2 맹주로서의 지위를 점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전국적인 정당 지지율을 기반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연합뉴스7월29일 노회찬 정의당 후보의 서울 동작을 유세(왼쪽). 새정치민주연합도 지원에 나섰다.


실제로 이 전략들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세 정당의 야권 연대로 인천과 울산 지역에서 진보 정당 기초단체장 4명을 배출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야권 연대를 바탕으로 통합진보당이 13석을 확보해 원내 제3당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조건은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이후 차례로 무너졌다. 통합진보당에서 떨어져 나온 정의당의 인지도는 이번 재·보선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이석기 사태 이후 더욱 하락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체 진보 정당들에 대한 전국적 지지세가 수그러들면서 올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는 ‘야권 연대’ 및 ‘지역 기반’ 전략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더욱이 동작을에서 노회찬 후보의 패배는 향후 야권 연대 전략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야권 연대를 통해 스타급 정치인이 나왔는데도 졌다’는 사례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진보 정당이 유력한 대중 정치인을 내세우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노회찬 패배 사례를 들먹이며 미온적으로 대응할 명분이 조성되었다. 정의당은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정치적 빚까지 떠안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처지에서, 단일화 양보뿐 아니라 박지원·박영선 등 당내 주요 인사까지 동작을로 보내 노회찬을 전폭 지원해서 정의당에 빚을 떠안겼다.

두 당의 합당? 현실화될 가능성 높지 않아

야권 연대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각이 덜 호의적으로 변해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야권 연대는 여권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대통령제와 양당 구도라는 제도 및 선거 지형에서 야권 연대가 일종의 보완책이지만, 연대 과정에서 잡음이 일 경우 유권자의 피로도 역시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진보 정당의 지역 기반 전략 역시 위태롭다. 호남 주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 정서를 진보 정당 지지로 돌리지 않는 징후가 나타났다. 가장 상징적으로는,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순천·곡성 재·보선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득표율 49.43%로 당선된 ‘사건’이다. 반면 통합진보당 이성수 후보의 득표율은 6%에도 미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가 득표율 40.32%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캐스팅보트 구실도 불가능했던 셈이다. 한 호남 지역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진보 정당의 지역 기반이 다 죽으면서 6·4 지방선거 이후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독점 구도가 더 심화됐다. 통합진보당이 전남도지사 선거에 나온 이성수 후보를 순천 선거에 내보낸 것도 결국 인물 부족 탓이다”라고 말했다.

진보 정당에는 차세대 리더도 없다.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은 노회찬·심상정 등 전·현직 의원들 외에는 대중적 정치인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의 경우, 2004년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통해 정계에 진출한 노회찬·심상정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점이 한계다.

한편 야권의 선거 참패 이후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의 합당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정치 지형을 양당 구도로 정립해야 한다는 일종의 ‘빅텐트’ 논리다. 강력한 여권에 맞서는 거대 야당에 현 진보 정당 인사들이 들어가 진보 블록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도 우원식·김기식 의원 등이 전부터 주장해왔던 방향이다. 그러나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선 재·보선 참패 이후 선장이 사라진 새정치민주연합이 합당에 나설 만한 상황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선거 다음 날인 7월31일 “노회찬 후보가 당선됐다면 정의당이 합당을 주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 후보가 낙선한 뒤에는 우리가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보 정당과의 야권 재편 논의 여부는 향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통합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 오히려 당 내부에서는 이번 선거에 대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가 많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세력이다. 문제는 당장 1년8개월 이후 총선에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 전체가 ‘원외정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합이냐 연대냐’라는 질문에 대해 지난 4년여간 ‘연대’를 택했던 진보 정당이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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