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 PD (54)는 시대를 주름잡았던 예능 PD다. 1990년대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고정 코너인 ‘몰래카메라’와 ‘양심 냉장고’를 성공시키며 일찍이 스타 PD로 떠올랐다. 이어 〈칭찬합시다〉와 〈느낌표〉에서 ‘눈을 떠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같은 인기 코너를 만들면서 ‘오락 프로그램의 개념을 바꾸게 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개그맨들의 반복적인 실수를 ‘웃음’의 재료로 삼았던 시대, 그는 ‘공익적 예능’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첫 번째 ‘플라잉(Flying) PD’(연출 지도와 자문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로서 중국을 오가며 예능 한류를 이끌고 있다. 또다시 새로운 문 하나를 열고 있는 그를 경기도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만났다. 별명이었던 ‘쌀집 아저씨’보다는 운동선수 같다. 몸이 탄탄해 보인다. ‘쌀집 아저씨’는 〈웃으면 복이 와요〉 ‘도루묵 여사’를 제작할 때 이경실씨가 붙여준 것이다(웃음). PD는 체력관리를 잘 해야 한다. 주말에 거의 매주 등산 가고 일주일에 이틀은 헬스장에 간다. 가서 역기를 한 시간 이상 든다. ‘양심 냉장고’ 첫 편의 감동이 아직 생생하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이 ‘양심 냉장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도 있다 프로그램 타이틀은 〈이경규가 간다-정지선을 지키자〉였다. 정지선을 지키는 사람에게 선물로 양심 냉장고를 준 거다. 큰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이지만 처음에는 다들 반대했다.

ⓒ시사IN 조남진김영희 PD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국경을 넘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창조적이다. 중국 시장에서 한번 승부를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왜 반대했나? ‘시커먼 밤에 자동차만 지나가고 연예인도 안 나오는데 뭐가 재미있겠느냐’는 거였다. 10명의 작가 모두 한사코 반대했다. 나중에는 이경규씨까지 반대했다. 밀어붙였다. 첫 촬영이 밤 10시에 시작됐다.

건널목의 정지선을 지키는 차가 나타날 때까지 밤새도록 기다리는 거였다. 밤 12시가 지나니 다 집에 가자고 난리가 났다. 패널인 민용태 교수도 그만하자고 하고 치어리더들은 춥다고 하고…. 내가 새벽 4시까지는 가보자고 버티었다.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새벽 4시쯤 이경규씨가 클로징을 했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정지선을 지키는 사람을 이렇게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4시13분에 티코 한 대가 멀리서 오더라. 그 차가 정지선에 섰나? 정지선에 설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 이경규씨도 멘트로 ‘어 어… 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섰다. 감동이었다. 차 한 대가 정지선에 섰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이 일었다. 인터뷰하러 차 안을 들여다보니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내가 50년 넘게 살면서 가장 감동적인 한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그 장면이다.

이전의 예능 프로그램과 획을 달리했다. ‘관찰 예능’ ‘공익 예능’의 시작을 알렸다. 나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차가 한 대 정지선에 서는데 눈물이 나더라. 이게 뭐지? 60분 프로그램 중 10분 정도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이 감동을 만들어낸다면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느낌표〉를 끝으로 한동안 안 보이다가 재작년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후배 PD, 작가, 카메라맨들까지 3개월 동안 거의 동고동락하면서 밤잠을 안 자고 준비했다. 첫 녹화 때 가슴이 조마조마하더라. 이게 과연 성공할까?

ⓒ황용호 제공김영희 PD는 <나는 가수다> 중국판 제작에 자문 역할을 했다. 위는 중국 측 스태프와 찍은 사진.
첫 가수가 누구였나? 이소라였다.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 첫 소절을 부르는데 관객 500여 명이 정말 얼음이 되어 있더라. 숨소리조차 안 들렸다. 성공이다, 싶었다. 성공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진짜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다 가짜라는 느낌이 들더라. 그리고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하지만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들 뿐이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아빠가 육아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실제로 아빠와 자녀의 생활을 그린 것이니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아빠들이 화도 내고 짜증도 낸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그런 장면은 안 나온다. 그런 것이 가짜라는 말이다. 진짜를 보여주는 건 매우 힘들지만 보여주면 성공한다. 진짜 노래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이 〈나는 가수다〉를 만들게 된 것이다.

중국을 자주 오가는데 최근에는 언제 갔나? 3주 전에 갔다 왔다. 플라잉 PD로서 두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아빠! 어디 가?〉 시즌2와 〈나는 가수다〉 시즌3 제작 회의를 중국에서 했다. 플라잉 PD 제안은 어떻게 받게 되었나? MBC 상하이 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가수다〉의 포맷이 중국 후난TV에 팔렸는데 연출자가 중국에 직접 와서 조언해주는 것이 계약의 중요 내용이라고 하더라. 그때까지 플라잉 PD의 존재도 개념도 몰랐다. 당시 〈나는 가수다〉 시즌2를 방송하던 중이라 너무 바빴지만 회사의 새로운 수익 사업이라고 하니 안 갈 수 없었다.

첫 회의를 중국에서 했나?

중국 스태프가 MBC에 왔다. PD·작가·FD·카메라·음향·편집자·조명 등 열댓 명이 왔다. 〈나는 가수다〉 녹화하는 거 보여주고, 편집·회의 장면도 보여주고, 제작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디렉팅뿐 아니라 조명·음향 등 A부터 Z까지 모든 걸 다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후에는 내가 중국에 여러 차례 가서 지도했다. 첫 방송을 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는 한국판과 다른 점이 있나? 거의 똑같다. 출연진만 중국 사람이다.

중국 측 제작팀과 의견 차이는 없었나? 내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니 의견 차이는 없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이 있더라.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출연자 옷이나 조명 색으로 빨갛고 노란 원색은 촌스러워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그런 색상을 좋아하는 거다. 내가 뒤늦게 알고 ‘아, 그렇다면 그렇게 합시다’ 했다. 초창기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첫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은? 후난성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반응이 대단했다. 전국 방송은 CCTV가 13개, 그리고 위성방송이 20개 정도다. 전국 방송이 30개가 넘으니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이라 한다. 그런데 중국판 〈나는 가수다〉 첫 방송이 1.9%가 나왔다. 끝날 때는 4% 정도였다. 후난 위성TV는 중국 전체 위성방송 중 경쟁력 1위의 방송사였다가 2위로 떨어졌는데 〈나는 가수다〉 때문에 다시 1위를 찾았다. 그리고 그해 하반기에 〈아빠! 어디 가?〉도 후난 위성TV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첫 방송이 2%가 넘었고 끝날 때는 5.8%가 나왔다. 굉장한 반응이었다. 〈나는 가수다〉 포맷을 수출하고 받은 수익은 얼마나 되나? 〈나는 가수다〉 시즌1은 회당 2000만원으로 국제시장 가격 수준이다. 근데 반응이 엄청나니 시즌2와 시즌3는 10배를 받고 계약했다. 회당 2억원이다. 20편 방송하면 우리에게 40억원이 들어오는 것이다. 생각보다 수익이 상당하다. 방송 포맷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네덜란드 엔데몰(Endemol) 등 포맷 비즈니스 회사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포맷을 수출하고 있는데 몇 조원이 넘는 시장이다. 후난성만 해도 인구가 9000만명이다. 후난 위성TV는 중국 전역 15억명을 대상으로 방송한다. 한번 히트하면 수억명이 본다.

중국이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유독 관심이 많은 까닭은? 중국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포맷을 사왔다. 그러다 매우 독창적인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국인의 정서가 자신들과 흡사하다는 점도 참고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 이후 중국에 대한 방송 포맷 수출이 많이 증가했을 것 같다. MBC만 해도 〈진짜 사나이〉가 계약을 마쳤고 〈우리 결혼했어요〉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SBS 〈런닝맨〉도 저장 위성TV에서 〈뛰어라 형제들〉이라는 제목으로 준비 중이고, tvN의 〈꽃보다 할배〉도 〈화양예예〉란 타이틀로 현재 방영 중이라고 들었다.

SBS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PD는 중국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더라. 이 모두의 첫 단추를 끼운 사람이 김영희 PD다.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 진출하던 시기를 한류 1세대로 볼 수 있다. 그때는 테이프를 팔았다. 이후 〈나는 가수다〉처럼 포맷, 즉 아이디어를 파는 것을 한류 2세대라 할 수 있다. 플라잉 PD로 중국에 다니면서 보니까 향후에 3세대는 공동제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가가치도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다. 요즘 후배들이 3세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뿌듯하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방송 포맷 수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던데?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 가?〉가 큰 성공을 거두니 중국의 방송사들이 한국 포맷을 사려고 난리가 났다. 너무 많은 것을 계약하기 시작하니 중국 정부에서 ‘1년에 1편 이상 포맷을 수입하지 못한다’라고 규제했다. 포맷 수출에 타격이 클 것 같은데? 이제 포맷 수출보다 ‘공동제작’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공동제작’은 편수 제한이 없고 부가가치도 훨씬 높다. 현재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나?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나는 가수다〉처럼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장르를 찾고 있다. 중국과 공동제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분명한 것은 우리 예능 프로그램이 국경을 넘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창조적이라는 사실이다. 세계에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중국 시장에서 한번 승부를 해보고 싶다.

기자명 황용호 (KBS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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