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 가요!” 도서관 문을 밀고 들어온 경택이는 벙글벙글 환한 얼굴로, 방학이라는 말을 그렇게 한다. 제 무릎 안에 그림책을 수북하게 두고는 앉았다가 눕고, 다시 몸을 뒤집었다…, 뒹굴뒹굴하며 한 권씩 빼내 읽는다. 먹고 남은 씨앗 뱉어내듯 다 읽은 책들이 경택이의 몸 밖으로 내보내졌다.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여유로운 방학 첫날이라니….

그러나 엄마들은 아이들의 방학이 무섭다고 말한다.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골치 아프다며, 학원과 각종 프로그램들을 찾아 일정표 짜기 바쁘다. “꼭 그래야 해요?” 물으면,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단다.

생명력 강한 아이는 모든 엄마의 바람이다. 부대끼는 사람들 틈에서, 요란한 소음 속에서, 몰려오는 과제들 속에서 살아남아주기를 바란다. 그것도 ‘잘’ 커주기를 주문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인천여성회 제공〈/font〉〈/div〉인천 부평구에 있는 ‘청개구리 도서관’(위)은 엄마들이 운영위원이 되어 도서관을 관리한다.
ⓒ인천여성회 제공 인천 부평구에 있는 ‘청개구리 도서관’(위)은 엄마들이 운영위원이 되어 도서관을 관리한다.

그런데 아이의 타고난 생명력까지 약하게 만드는 것 또한 엄마다. 아이가 입 벌려 말하기 전에 먹이를 주었고, 팔 한번 뻗을 찰나 없이 필요한 것을 챙겨 손에 쥐여주었다. 이젠 아이가 걸을 길조차 평탄하게,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직접 치워주려 한다. 아이가 가까스로 버텨낼 시간을, 한바탕 싸워볼 기회를, 흠뻑 땀 흘릴 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 해내는 힘을 잃은 우리 아이들. 어쩌면 그들이 어리고 여린 마음으로 싸우는 유일한 상대가 바로 ‘보이지 않는 손’ 엄마가 아닐까?

엄마의 사랑은 충분해야 한다. 잘 크라고, 건강하라고 넘치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엄마의 베풂은 아쉬워야 한다. 조심조심, 가끔가끔…. 그리고 엄마는 함께 자라야 한다. ‘잘’ 자라야 할 숙제는 아이의 것만이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엄마 역시 자라야 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크기를 기획하는 공간,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들을 소개한다.

마을과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작은 도서관들

2003년, 인천 부평구 산곡3동의 엄마들은 평소 동화 읽는 모임을 하며 동네 사랑방 같은 도서관을 꿈꿨고, 부평 여성회와 대건신협의 도움으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임차료 없이 얻은 신협 2층에 ‘청개구리 도서관’ 간판을 내걸며 엄마들 스스로 운영위원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청개구리 도서관’은 800여 명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공공 도서관으로 자리 잡았다.

“도서관이 있는 화랑북로의 골목 축제를 기획하고, 도서관을 찾아올 여유가 없는 이곳 상인들을 위해 책수레도 운영하고 있어요.” 신선희 관장이 무엇보다 자랑하는 것은 엄마들로 구성된 기획단이 만든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우리 도서관 어린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1년에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다양한 활동으로 그 주제를 경험하는 거예요.”

ⓒ내 보물 1호 도서관 제공충북 제천에 있는 ‘내 보물 1호 도서관’
올해 엄마들이 기획한 주제는 ‘우리말’이다. 도서관 가족들이 먼저 우리말로 된 가족 문패를 만들었다. 나아가 화랑북로에 있는 50~60개 상점들의 간판을 조사해 외래어 간판을 쓰는 몇몇 상점 주인들에게 우리말 간판을 제안하고, 함께 궁리해 만든 우리말 간판을 선물하는 ‘우리 동네 우리말 간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서는 아이들과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여름 음식 만들어 먹기, 샌드 아트 공연 같은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의 옛 이름은 ‘뒤뚜르’란다. 지금 그곳에 ‘뒤뚜르어린이도서관’이 있다. 6년 전인 2008년, 춘천시민연대와 동네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 후평동 동네 골목 안에 있는 주택 1층, 99㎡(30평) 남짓한 작은 도서관이지만 지역 주민 600여 명이 찾아온다. 이 아늑한 도서관에서 엄마들은 그림책을 공부하고, 인문학 강좌를 듣고, 바느질을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활동이 있어요. 발도로프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으로 인형극을 하지요.” 이순애 관장의 소개에 살짝 놀랐다.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발도로프 인형을 어설픈  아이들 손으로 완성한다니…. 원하는 아이들 누구나 인형 만들기와 연극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

‘내 보물 1호 도서관.’ 이름만큼 참 소중해 보이는 이 도서관은 충북 제천 하소동 아동복지관에 있다. 제천시에서 만들고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이 도서관은 330㎡(100평)가량 되는 ‘작지 않은’ 작은 도서관이다.

“사서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있는 도서관이에요. 아동복지관이기도 해서 주말에는 조손 가정,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도 제공한답니다.” 백영숙 관장은 초등학교 돌봄교실이나 아이들이 있는 기관에 매주 책 꾸러미를 들고 찾아가 책을 읽어주고 책놀이를 하고 있다며, 복지라는 절실함이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만나니 더 질 높은 서비스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여우별’로 불리는 자원활동가 엄마들의 모임이 맡아서 한다.

여름방학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도 푸짐하다. 외갓집으로 가는 농사 체험(7월30일), 도서관에서 1박2일(8월8~9일), 박물관 투어(8월19일), 한태희 작가와의 만남(8월23일) 등….

‘함께 크는 우리’는 오래된 도서관이다. 1995년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시작해 2006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옮아갔다. 시끌시끌한 재래시장 안에 있으면서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함께 크는 우리 제공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함께 크는 우리’

“작년에 리모델링을 했어요. 도서관 가운데에 무대를 만들었더니, 동네 엄마들이 접어두었던 소싯적 꿈을 다시 꺼내 ‘마을극단’을 만들었어요. 매주 금요일에 만나 연습한 후 얼마 전 그 무대에서 〈해님 달님〉을 공연했지요. 멋진 연극이었어요.” 박성식 운영위원은 ‘아가동동’ ‘꼬매’ 등 도서관의 품앗이 엄마 모임들과 가족합창단 ‘하모니’, 댄스와 노래 등의 다양한 소질을 자랑하는 청소년 동아리 ‘함께 크는 청소년 네트워크’ 등을 이 도서관의 자랑거리로 소개했다. 이번 방학에 ‘함께 크는 우리’ 도서관을 찾는다면, 우리 동네의 소중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보물탐험대’ 활동과 빛그림 상영, 연극놀이, 음식 만들어 먹기 따위 다양한 활동과 만나는 ‘신나는 책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마을의 이웃들은 좋은 책과 만나고, 함께 키우는 아이를 위해 품앗이를 하고, 아이와 함께 ‘자라나는’ 어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크고 작은 공동체를 경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번 여름방학에 아이 손잡고 꼭 찾아가 보자.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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