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어린이들도 나름의 보는 눈이 있고 함께 관람하는 부모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고르기도 어렵다. 보고 나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 많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어린이 캐릭터를 겨냥해서 제작한 ‘떴다방’ 공연은 가장 실망하기 쉬운 경우다. 마치 학예회를 보는 것처럼 엉성한 경우가 많다. 유명 캐릭터에 의지한 공연은 아이들의 반응은 크지만 스토리를 너무 단순하게 구성해서 결국은 아이들도 유치하게 느끼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어떤 어린이 공연을 골라야 할까? 일단 어린이 공연은 아이 나이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이에 따라 이해의 폭이 크게 차이 난다. 어린이 공연 전문가들은 어린이 공연을 만들 때 “스토리는 관람 연령대 아이들 중 나이가 많은 아이들을 겨냥하고, 비주얼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겨냥하라”고 말한다. 반대로 스토리는 단순하고 비주얼만 화려하면 유치한 공연이 되기 쉽다.

ⓒ시사IN 윤무영을 관람하기 위해 어린이와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

또 ‘무엇을’ 공연하느냐보다 ‘누가’ 공연하느냐를 살펴보자.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가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공연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공연은 이미 저작권료를 상당히 지불하고 엄청난 광고비를 쓴 터라 공연 자체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어린이 공연 전문배우들은 인형 탈을 쓰고 공연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에 비전문가들이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도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가 있듯이, 어린이 공연도 전문 집단이 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제작한 작곡가 김민기씨의 극단 학전은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무적의 3총사〉 등 어린이극 일곱 편을 제작한 어린이극의 명가다. 학전의 어린이 공연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고급스럽다’이다. 어린이들의 섬세한 심리를 그려내는 것이나, 어쿠스틱 악기들로 구성한 밴드의 음악이나, 메시지가 담아내는 철학이나 여러 면에서 사려 깊고 전문가적인 역량이 드러난다는 평을 받는다. 아동청소년 연극인으로서 많은 활동과 업적을 남긴 이에게 수여하는 ‘아시테지상’을 수상한 학전은 이번 여름방학에는 〈슈퍼맨처럼〉을 올린다(8월24일까지,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

어린이극에서 중요한 것은 노하우다. 〈Why? 마법사와 쫓겨난 임금〉은 연출자 때문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구름빵〉 〈피터팬〉 등을 연출하거나 예술감독으로 참여해 제작한 허승민씨는 어린이극 노하우가 가장 많은 연출가다. 그는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 뮤지컬 〈씽씽욕조와 코끼리 페르난도〉로 크리에이티브상을 받았다.

〈Why? 마법사와 쫓겨난 임금〉은 전형적인 교육 뮤지컬이다. 고구려 봉상왕, 고려 의종, 조선 단종 등 역사 속에서 ‘쫓겨난 임금’을 소재로 다루는데,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무대 전환이 현란하다. 교육적인 내용이지만 스토리 자체를 교육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셰익스피어 상황소극처럼 경쾌하게 진행한다. 어린이극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의 리액션을 이끌어내는 부분인데 이 점에서 〈Why? 마법사와 쫓겨난 임금〉은 탁월하다(8월24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어극 등 ‘전문성’ 강화하는 어린이 공연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 공연) 〈난타〉를 제작한 PMC도 어린이극 명가로 떠오르는 곳이다. 2001년 〈어린이 난타〉를 시작으로 〈가루야 가루야〉 같은 어린이 체험전을 제작한 PMC는 어린이극 흥행 순위 10위 안에 3~4편을 올려놓았다. PMC에서 제작한 〈로보카 폴리-별자리 캠핑 대소동〉은 누적 관객 50만명을 돌파하며 최고 인기작으로 부상했다. PMC의 강점은 ‘대작’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를테면 〈로보카 폴리〉를 뮤지컬로 만들 때 핵심은 로봇들의 변신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인데, 이 숙제를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난타〉에서 익힌 신명을 입혀 공연에 재미를 더했다(8월17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라트어린이극장(서울 도곡동)은 영어극 전문극장으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곳이다. 상임 연출가 폴 매슈스의 손을 거치면서 작품들이 짜임새 있어진다는 평이다. 최초의 영어극 전문극장으로 출발한 라트어린이극장은 인형극이나 마임(무언극), 스토리텔링 쇼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선보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했다. 올여름에도 〈‘상상주머니’가 커지는 여름축제〉를 자체 기획해 아이들과 만난다. ‘책과 드라마 사이, 상상의 날개를 달다’라는 주제의 6개 작품은 영어극으로, ‘리틀드래곤의 모험’ ‘노래하는 열두 동물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쇼로, 동화 ‘종이봉지 공주’ ‘청소부 토끼’ 등은 인형극과 마임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교육 전문채널인 EBS에서 제작한 〈번개맨의 비밀 3〉과 〈보니하니 쇼〉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성남시립국악단이 제작한 〈풍이와 금이의 소리여행〉은 우리 전통악기를 소재로 삼아 호평을 받았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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