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 금수원을 빠져나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진)은 측근 신 아무개씨 집에서 하루 묵었다. 그리고 5월25일까지 순천 송치재 별장에 머물렀다. 전남 순천은 유 전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검찰도 이를 잘 알았다. 하지만 순천에서 검찰 포위망을 빠져나간 유 전 회장은 자취를 감췄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21일 유병언 추정 시신 확인).

〈시사IN〉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주하면서 쓴 메모 형식의 자필 문서를 입수했다. A4 용지 총 31쪽인 이 기록에는 도망자가 된 유 전 회장의 심경과 유년 시절의 회고 등이 적혀 있다. 자신이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과 언론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유 전 회장이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몇 대목을 소개한다.


글은 특이하게도 거울을 보고 읽어야 해석이 가능하도록 거꾸로 쓰여 있다. 이는 유 전 회장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에 연루돼 4년간 옥살이를 한 뒤로 유 전 회장은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복역 당시의 심경을 담은 〈꿈같은 사랑〉(이두출판사, 1995년)은 이런 스타일로 쓴 원문 뒤에 위치를 바로잡은 해석을 붙여 출간됐다. 유 전 회장의 글 가운데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구원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아해(유 전 회장)의 화법이나 스타일을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문건은 유 전 회장과 함께 도피하던 개인 비서 신 아무개씨가 보관하던 것으로 유 전 회장이 전남 순천 등지를 떠돌던 5월 말에서 6월 초에 작성한 듯하다. 5월 말 안성 금수원을 빠져나와 경기도에 있는 측근 신 아무개씨 집에 기거한 흔적도 보인다. “첫날은 신 선생 댁에서 지내다가 짧지만 곤한 잠에 휴식을 취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앞과 앞이 보이는 첫날이/ 끝과 끝이 맞닿아/ 긴 세월 역사 속에 프랑스 빠리의 예술혼이 서려 있고….”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망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한 구원파 신자는 “이야기를 시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유 회장의 전형적인 기록법이다”라고 말했다.

글 중간에는 유년기의 기억도 자리하고 있다. “유년 시절에는 농약 묻은 사과 말린 것 먹고 위를 크게 상했던 고통을 겪었었다. 소년 시절에는 6·25전쟁 4일 되던 날에 시작된 늑막염으로 인해 결핵성 늑막염이 도져서 사경을 헤맸었다. 초등 4학년 때는 몸이 너무 많이 아파서 한 해 늦은 늦깎이 생이 되었다. 이 시절에는 하도 많은 의문들이 내 생각을 호기심으로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어떤 정밀한 물체를 열려고 하다가 폭발해서 또 한 번 죽을 뻔했었다. 요행히 몇 군데에만 큰 고통을 안게 되고 얼굴과 몸 전면은 별 흠이 없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나의 큰 고통을 아는 이들은 훗날 아이를 못 낳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래서 나는 더 큰 호기심을 안고 커온 사람이다. 그래도 그 호기심들을 망각하지 않고 키워서 답을 얻고 싶었었다.”

유병언 전 회장은 오대양 사건으로 복역한 이후부터 거꾸로 쓰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왼쪽). 위치를 바로잡아야 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오른쪽).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은 김기춘 실장?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사건으로 자신이 음모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가녀리고 가냘픈 大(대)가 太(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과잉 충성스런 보필 방식일 거야.” “아무리 생각을 좋게 가지려 해도 뭔가 미심쩍은 크고 작은 의문들이 긴 꼬리 작은 꼬리에 여운이….” 유 전 회장은 대통령을 ‘大(대)’로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이라고 신도들은 설명했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곳곳에 토로했다. “하도 하도 많은 거짓말들이 국영방속국을 위시해서 미쳐 날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설쳐대는 거짓소리들을 내 고요를 원하는 세피에 시달리는 정신에 오염이라도 될까봐 사나이와 여성 중간자쯤 되어 보이는 방송 진행자의 의도적인 행태에 거짓소리 증인의 작태를 보고 시선과 청신경을 닫아버렸다. 모든 방송에서 이별을 해버렸다. 넓은 세계의 밝은 소리들이 그립네.”

유 전 회장이 쓴 메모에는 유년기의 기억,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 주로 적혀 있었다. 또한 ‘눈 감고 팔 벌려’ 따위로 검찰 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연일 터져대는 방송들은 마녀사냥의 도를 넘어 구시대 인민재판의 영상매체로 진화되어 떠들어대는 민족 전체와 동포들 머문 세상의 큰 이간질을 해대는 악의적인 소리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내 수난의 날들을 복습해온 시간이었다. 이간된 어느 시민의 말 속에도 한 하늘 아래서 저런 자와 같이 숨 쉬는 것조차도 싫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그렇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훗날 그 사람 꼭 만나서 정신오염 좀 씻겨주고 싶었다.”

“권력 휘하에서 기식하는 언론인들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있어온 듯하다는 걸 실감해본다. 근간에 방송을 청취하다 보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마구 지어내기가 일쑤인 것을 듣고 보는 이들은 속고 있으면서도 판단력이나 비판력 마저 상실한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시기임을 둔한 정치 하수인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만심만 키운 마취 증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마치 이십세기 괴물의 나치스당의 광란 때에 히틀러의 하수인들처럼 말이다.”

유 전 회장은 “눈 감기고 팔 벌려” “마음 없는 잡기 놀이” 따위 표현으로 검찰이 자신을 잡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에둘러 적고 있다.

“눈 감기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정말 마음에 없는 잡기 놀이에 내가 나를 숨기는 비겁자같이 되었네. 이 순전 무궁할 아해의 자존심 억눌러 세계들의 시간 안에 분침 되어 큰 바늘을 대신해 내는 소리. 생존 마디마디 초초초 분 시 숨 쉬고 있음을 이 늙어진 몸에 넋은 결코 비겁자 아님을….”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와 회복되는 건강을 경험하며….” 글은 이렇게 끝이 났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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