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지 못했던 보물상자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357
  • 승인 2014.07.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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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열리고 있을 때 브라질에 관한 책을 모아 읽었다. 브라질 사회·문화를 소개하는 책에서부터 우리에게 생소한, 하지만 보물상자 같은 브라질 문학까지. 낯선 독서 체험은 창의적이고 즉흥적인 드리블을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월드컵이 열리고 있을 때 브라질에 관한 책을 모아 읽었다. 제일 먼저 손에 든 것은 만만하고 친근해 보였던 이승용의 <브라질 광고와 문화>(산지니, 2014)였다. 지은이에 따르면 브라질 광고의 특징은 낙천적 성격, 유머러스함, 즐거움을 추구하는 브라질의 원형 문화에 걸맞게 유머와 반전 코드를 이용한 재미의 추구라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 돌발 퀴즈. 총구 끝이 90° 아래로 꺾인 실물 크기의 콜트 권총 한 자루가 덩그렇게 나오는, 이 책 151쪽의 광고는 무슨 광고일까요?

도상학에서나 은유적으로 총이나 칼 같은 무기류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그게 맞다면 방금 예시한 광고는 비아그라 광고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틀렸다. “얼핏 보면 남성 발기부전과 관련된 광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동차 회사 벤츠의 방탄 차량 선전이다. 도로상에서 승용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도가 빈번히 발생하는 브라질 사회의 치안 문제를 배경으로 부유층에게 자사의 방탄 차량을 타라고 홍보하는 광고다. 여기서 권총의 구부러진 총신은 고개 숙인 남성의 모습이 아니라 방탄 차량의 안전성을 이야기하는 소재다.”

광고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상대로 하며, 개인의 창조성이나 표현보다 한 사회의 가치나 세태를 더 잘 반영한다. 우리는 저 광고를 통해 브라질의 표층과 심층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알 수 있다. 표층은 여느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그렇듯이 브라질 역시 널리 퍼진 총기 범죄에 포위당한 상태이고, 심층은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와 안드레 보텔류가 함께 엮은 <브라질 어젠다>(세창미디어, 2014)의 한 필자는 화기가 사용된 대부분의 범죄는 대도시 빈민가 출신의 15~29세 남자에 의해 저질러지며, 높은 범죄율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불평등’을 들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지영 그림</font></div>
브라질은 축구·카니발·아마존같이 세속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뛰어난 문학의 보물상자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작가가 마샤두 지 아시스다. 흔한 세계 문학사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권 작가들만 모더니즘 소설의 발명자요 대가로 취급하지만, 1880년에 나온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창비, 2013)은 모더니즘이 탄생한 장소를 대서양 저편으로 확장한다.

첫손에 꼽히는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

이 소설의 화자는 1869년 8월 어느 금요일, 64세로 죽은 브라스 꾸바스다.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평생 독신이자 한량으로 살았던 그의 생애를 요약하면, 지금은 남의 아내가 된 20대 시절의 첫사랑을 30대에 다시 만나 죽기까지 사랑하는 이야기다. 주위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남편을 바보로 만드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회고록의 주인공이 나서서 냉담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하게 쓰인 이 작품을 ‘철학 작품’이라고 강변하는 데다, 여타의 모든 철학 체계를 무너뜨릴 세상사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낑까스 보르바라는 친구마저 등장해서 장광설을 쏟는다.

보르비즘의 요체는 인간이 생식을 하고 재생산을 하는 데 기여하는 모든 불평등은 합리화될 수 있다는 것. 브라스 꾸바스는 물론이고 독자까지 슬슬 그의 논리가 그럴듯해지려는 순간, 그가 정신병자라는 것이 밝혀진다. 어느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모조리 자기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을 우리는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똑같은 항구에서 최소한 두어 척의 배는 내 것이기를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작품은 이성을 빙자한 인간의 광기와 환상을 오간다.

<브라질 어젠다>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엮음세창미디어 펴냄
네우송 호드리게스의 <결혼식 전날 생긴 일>(문학과지성사, 2010)은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운전사에게 일렀다”라는 첫 구절로 시작한다. 1966년에 발표한 작품이라서 아직 일반인에게 시판되는 방탄 벤츠는 등장하지 않는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부유한 사업가인 사비노는 똥을 쉴 새 없이 싼 끝에 똥냄새를 풍기며 죽은 아버지가 “바른 사람이 되라”고 했던 유언을 강박처럼 받들고 살지만, 그가 실천한 것이라고는 고작 아무에게도 자신의 발을 보이지 않으려고 평생 양말을 신고 잠을 잔 것 말고는 없다. 산업화가 한창인 현대 브라질을 배경으로 인간의 가장 추하고 암울하고 황폐한 성 욕망을 집요하게 파헤친 이 작품은 금기를 사이에 놓고 성과 죽음이 윤무를 춘다.

48가지 소주제를 엮은 <브라질 어젠다>에서 작곡가이자 가수이면서 소설가인 시쿠 부아르키는 대중음악과 소설 양쪽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소설 항목을 쓴 필자는 “언제 브라질 문학이 국민적인 것의 은유가 되기를 그만두게 될까?”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제껏 브라질 문학은 개인의 운명조차 자동적으로 민족주의의 인질이 되고 사회와 국민국가 사이의 특혜받은 중개자로 읽혀왔다고 말한다. 브라질 문학의 새 단계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그가 보기로 든 작품이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푸른숲, 2013)이다. 이 작품은 루시드 폴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나, 내가 읽은 것은 <엎지른 모유>(열린책들, 2013)이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한 이 작품은, 우선 첫딸을 낳고 종적을 감춘 부인을 70년 넘게 찾고 기다리는 남편의 망처가(亡妻歌)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나온 도전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을 건국한 포르투갈 귀족 가문 출신의 백인 남편이 물라토(백인과 흑인 혼혈) 아내를 오매불망하는 이 작품의 설정은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향한 브라질의 국가적 열망과 속죄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가 사라진 이유를 알려면 작품을 두 번은 읽어야 하는데, 그나마도 화자가 신빙할 수 없는 100세 노인이라서 어떤 추측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도움말을 주자면, 독자가 찾아낸 가정은 반드시 소설 제목과 합치해야 답이 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무색하게 4강전에서 독일에 7-1로 대패했다. <브라질 어젠다>에 축구에 대한 글을 기고한 필자는 창의성·즉흥성·민첩성을 바탕으로 하는 브라질 축구 스타일이 남미의 다른 나라와도 다르고 유럽과는 더욱 멀다고 한다. 브라질 축구의 민첩성을 대표하는 기술은 드리블인데, 그것은 선생도 규칙도 없는 어린 시절의 놀이와 몸동작을 통한 속임수 그리고 춤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기술 축구와 조직 축구가 서로의 차이를 점차 줄여간 끝에, “브라질인은 유럽의 실용주의 축구를 모방하였으며 유럽인은 브라질의 판타지와 창의성을 배웠다. 그리고 유럽인이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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