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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발견한 최저임금의 기준

전후 독일 최대 사회개혁으로 평가받는 최저임금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내년부터 노동자들은 시간당 8.5유로(약 1만2000원)를 보장받는다. 대연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타협정치가 최저임금제의 열쇠가 된 셈이다.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4년 07월 23일 수요일 제3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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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경제대국 독일이 드디어 모든 직종에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웃 나라 프랑스가 64년 동안 실시해온 최저임금제를 독일이 늦게나마 시행하기로 한 것은 대연정 덕분에 가능했다.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은 최저임금제를 조건으로 지난 12월에 연정을 구성, 새로운 제도의 전면 시행과 단계적 시행 등 구체 방안을 놓고 반년 동안 줄다리기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7월3일 정부가 입안한 ‘임금자율화 강화법’이라는 이름의 최저임금제 법안을 연방 하원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노동계가 ‘전후 독일 최대 사회개혁’으로 평가하는 이번 최저임금제 법안이 오는 9월 중에 연방 상원에서 통과되면 내년 1월1일부터는 모든 직종에서 시간당 8.5유로(약 1만2000원)가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시행 초기 단계에서 몇 가지 예외 규정을 두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안은 1년 이상 장기 실업자가 재취업을 할 경우 6개월 동안 최저임금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하고, 시행 초기 18세 이하 청소년 노동자와 직업 수련생은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또한 딸기나 포도 따위를 수확하는 농업 분야 계절노동자와 택시기사, 신문배달원 등도 2017년까지 최저임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는 농업계와 재계의 강한 요구를 기민·기사당 연합이 받아들여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앙겔라 메르켈 총리(가운데 오른쪽)가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장관(가운데 안경 쓴 이)과 함께 연방의회에서 최저임금제 법안 표결 중인 하원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AFP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운데 오른쪽)가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장관(가운데 안경 쓴 이)과 함께 연방의회에서 최저임금제 법안 표결 중인 하원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반발은 거세다. 회원 약 600만명을 거느린 독일 노동조합총연맹(DGB)의 라이너 호프만 위원장과 라스즐로 안도르 유럽연합(EU) 사회노동 담당 집행위원은 이 같은 독일 정부의 예외 규정을 비난하면서 “모든 업종 종사자들에게 동등한 혜택을 동시에 주라”고 주장한다. 독일 야당인 녹색당과 좌파당은 물론 연정 안에서조차도 예외 규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좌파당은 “최저임금이 10유로는 되어야 한다”라면서 법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그러나 대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당대표 겸 부총리와 최저임금제 추진의 산파역을 맡은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장관은 “노동시장 및 사회보장 정책의 이정표”라며 최저임금제 법안 통과를 높이 평가한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제가 실시되면, 독일은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가운데 22번째로 법정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된다. 약 500만명에 달하는 독일의 저임금 소득자 가운데 370만명가량이 혜택을 받게 된다. 시급 8.5유로는 22개 국가 가운데 6위다. 가장 높은 룩셈부르크의 11.10유로(약 1만5000원)와 2위인 프랑스의 9.58유로(약 1만3200원)에 비해선 낮은 액수이지만, 7.43유로(약 1만200원)인 영국과 3.91유로(약 5400원)의 스페인 등 나머지 국가들보다는 훨씬 높은 액수다. 여기에 2017년 1월1일 이후 최저임금위원회는 시급액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게 돼 독일의 최저임금은 조만간 프랑스를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핀란드·스웨덴·덴마크·오스트리아·이탈리아 5개국뿐이다. 이들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전통적으로 노사의 임금 자율 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져, 힘들게 일하고도 낮은 보수를 받으면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임금 덤핑’ 피해자가 적은 나라들이다.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독일 경제에는 긍정·부정 효과가 동시에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권위 있는 뮌헨의 IFO 경제연구소는 최저임금 실시로 독일에서 일자리 약 90만 개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택시·자동차임대협회도 당장 일자리 5만 개가 없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미용실의 경우 문을 닫는 업소가 줄을 이으리라고 예상했다. 옌스 바이드만 독일 연방은행 총재는 “최저임금 도입과 정년 63세 인하 정책으로 고용 감소와 교육이 충분치 못한 근로자들의 취업 기회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이 노동시장에 나타날 것이다”라며 우려했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바이로이트 대학의 다비드 스타델만 교수는 “높은 최저임금은 불법 이주자를 끌어당기는 자석 노릇을 한다”라면서 최저임금이 실시된 후의 독일 노동시장에 불법 취업이 늘 것으로 전망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농업 분야 계절노동자 등은 2017년까지 최저임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EPA
농업 분야 계절노동자 등은 2017년까지 최저임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호프만 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잡 킬러(Job-killer)’가 아니며 대량 실업자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유르겐 비머즈 독일 노동시장직업조사연구소장도 “최저임금제 시행으로 우려하는 것처럼 실업자가 크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 실업률이 매우 높고 임금이 옛 서독 지역보다 현저히 낮은 옛 동독 지역에서는 적잖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이 실시되면 시급 8.5유로를 감당할 수 없는 이 지역의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거나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폴란드나 체코 등 동구권에서 넘어오는 불법 노동자들을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은 이 지역의 노동시장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표결에 참가한 의원 601명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5명이 모두 옛 동독 지역 출신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적 위상 높아진 날레스 노동장관


그런데도 최저임금제 도입이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독일의 노동·사회 정책의 일대 개혁이자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마프가 최저임금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인 7월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8%가 최저임금 도입에 찬성한다고 나타났다. 또한 설문 응답자의 68%는 최저임금 시행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지는 않으리라고 낙관했다.

이번에 저임금 근로자들의 오랜 숙원이던 최저임금제를 성사시킨 주역으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투쟁해온 미하엘 솜머 전 노총연맹 위원장과 사민당의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장관이 꼽힌다. 특히 날레스 장관의 노력이 없었다면 최저임금제라는 옥동자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날레스 장관은 그런 평가에 힘입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어 제2의 여성 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등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민당이 그동안 최저임금 시행을 반대해온 기민·기사당 연합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최저임금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창조적인 타협 정치가 결국 최저임금제 도입의 열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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