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제적인 내부고발자 사이트 ‘더휘슬블로어스’(www.thewhistle blowers.org)에 한국인의 이름이 등장했다.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였던 김경택씨다.

고발 내용은 김경택씨가 제주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는 미국의 투자회사 ‘딜런 카이주카’(Dillon-Kaijuka Associates)의 비리에 관한 것이다. 제보자는 ‘딜런 카이주카는 탈세, 자금 세탁, 테러자금 지원 등을 하는 회사다. 게다가 회사 대표 레오나르드 딜런 카이주카는 범죄자다’라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네덜란드 ABN암로 은행이 딜런 카이주카에게 발급했다는 잔고증명서도 허위라며 해당 문서의 실물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게시물에 따르면, 제보자는 네덜란드 ABN암로 은행 본사로부터도 딜런 카이주카의 잔고증명서가 위조임을 확인받았다. 은행 담당자는 제보자에게 “해당 문서(잔고증명서)는 ABN암로 은행이 발행한 문서가 아니다. 우리는 카이주카를 2009년부터 예의주시하고 있다”라며 문서가 위조임을 확인해줬다. 제보자는 은행과 주고받은 이메일 캡처본도 함께 올렸다.

ⓒ연합뉴스4월8일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자 합동연설회에 김경택 예비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참석했다. 그는 현재 새 도정준비위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제주 신공항은 선거 때마다 현지 지역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제주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이행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항공 수요 급증으로 인해 제주공항 활주로 용량의 포화 시기가 몇 년 남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신공항 건설이 확정되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겠느냐는 주민들의 기대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22일 당시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였던 김경택씨는 제주 라마다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의 투자회사 딜런 카이주카 및 GK홀딩(GK Holding Group)과 제주 신공항 건설 투자 MOU를 체결했다. 당시 제주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경택씨는 “신공항 건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 사업이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민자 유치를 통해 공항을 더 빨리 건설할 수 있다”라며 투자 MOU 체결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MOU 체결 이틀 전인 2월20일에는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신공항 건설과 월드트레이드센터 조성에 50억 달러(약 5조원)의 미국 자본 유치를 이끌어냈다”라며 구체적 투자 액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씨가 언급한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컨벤션·쇼핑몰·국제 금융기관이 들어서는 복합단지다.

당시 제주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제주미래사회연구원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제주공항 문제를 연구해왔다. 그 결과 현재의 제주국제공항은 국내선 전용으로 사용하고, 국제선 전용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대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신공항 건설에 대한 타당성 용역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시기상 이르지 않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김씨는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 용역 결과에 따라 사업 부지를 선정하면 상당 기간이 걸리지만, 민자 유치를 하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6·4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로는 새누리당 원희룡 후보가 당선되었고, 김씨는 지난 6월 중순 새 도정준비위원회 기획조정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렇다면 김씨가 MOU까지 체결한 이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그리고 딜런 카이주카는 대체 어떤 투자회사일까.

김경택씨는 6월16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4월 말까지 돈이 들어오기로 했는데 뭐가 잘 안 됐는지 안 들어왔다. 그래서 이달 말(6월 말)까지 기다려보려고 한다. 제주 신공항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실무자인 송 아무개씨에게 물어보길 바란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그가 실무자로 지목한 송씨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유선상으로는 이야기해줄 수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5조원? MOU에서 구체적 액수 말한 적 없다”

ⓒ휘슬블로어스 홈페이지 캡처내부고발자 사이트 ‘더휘슬블로어스’에 김경택씨가 딜런 카이주카(가운데)와 제주 신공항 건설 투자 MOU를 체결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딜런 카이주카의 CEO 레오나르드 딜런 카이주카와의 통화는 지난 5월 말 이뤄졌다. 그는 5조원이라는 투자 규모에 대해 “MOU에서 구체적인 액수는 말한 적이 없다. 한국 언론에서 보도된 그 액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관심사는 제주 신공항보다는 오히려 월드트레이드센터다”라고 말했다.

더휘슬블로어스에 올라온 게시물 내용에 대해서는 김경택씨와 레오나르드 딜런 카이주카 양쪽 모두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레오나르드 딜런 카이주카는 “내 밑에서 일했던 옛 직원들이 내게 앙심을 품고 허위 제보를 한 거다”라고 말했다. 김경택씨가 제주 신공항 업무의 실무자로 소개했던 송 아무개씨는 “인터넷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고 해서 우리도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카이주카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6월24일 김경택씨는 딜런 카이주카와 처음 접촉하게 된 경위에 대해 추가로 질문하자 아무런 답변 없이 전화를 끊었다. 집권 여당의 도지사 예비후보가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공개적으로 MOU까지 체결한 제주 신공항 투자유치 사업이 몇 달 사이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않은 상태임이 드러난 셈이다.

그렇다면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제주공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원 당선자의 강홍균 대변인은 “제주 신공항은 국토교통부에서 제주공항 수요조사 용역이 진행 중인 건으로,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신공항 건설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김경택씨가 제주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딜런 카이주카로부터 자금 50억 달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씨와 이 미국 투자회사의 접촉 경위에 대해 알고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원희룡 당선자에게는 질문 내용이 금시초문이며 이 사안과 아무런 연계성이나 관련도 없음을 밝힌다. 질문에 언급된 은행이나 펀드와 관련해서도 원 당선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김경택씨가 새 도정준비위원회 기획조정위원장으로 내정된 배경에 대해서는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경선 상대였으며, 이를 존중해서 선임했을 뿐 당선자와 개인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사이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존 파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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