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삼성이 드리운 어둠은 빛이 있으면 으레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인지 불법 로비·불법 승계 의혹도 검찰-특검-법원을 거치면 대부분 면죄부를 받았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어둠도 70여 년간 짙게 드리우고 있다. 노조가 필요 없을 만큼 복지에 충실하다는 이면에는, 노조 설립을 막으려는 해고와 감시가 뒤따랐다. 지난해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내부 문건은 무노조 경영 뒤에 감춰진 삼성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건희 체제 이후에도 무노조 경영은 지속될 것인가? 노동·시민사회계에서 ‘대(對)삼성 최전방 공격수’로 통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돈문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는 2008년 이병천(강원대)·송원근(경남과학기술대) 교수와 함께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를 펴냈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사회·문화·경제 분야를 아우르며 진보적인 학자들과 여섯 차례에 걸쳐 삼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발표 주제만 밝히고, 발표자들끼리도 토론회 직전까지 발표 내용을 서로 모르게 진행했다. 이 결과물을 모아 조만간 〈한국 사회, 다시 삼성을 묻는다〉로 묶어낼 예정이다. 조 교수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반올림 소속 이종란 노무사는, 지난 7년간 삼성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문제를 공론화해 삼성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주인공이다.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은 삼성그룹 순환출자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조 설립 이후 곧바로 해고되었지만, 지난 1월 행정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조건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국장은, 현재 파업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지원하며 삼성과 물밑 협상을 벌이는 당사자다.
사회:단도직입으로 묻겠다. 이건희 체제 이후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이 변할 것으로 보는가?
조돈문
:변할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 체제와는 다른 CEO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남겨놓은 반도체나 휴대전화 시장 석권만으로 ‘이재용 시대’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의료바이오 같은 신수종 사업을 추진 중인데, 삼성생명이 의료보험을 끼고 있는 데다 병원을 가지고 있고 IT 기술로 원격진료도 가능해서 장기적으로는 욕심을 내볼 만한 아이템이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사업 한편에 백혈병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킬링필드’ 공장의 이미지가 있고,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업처럼 노동인권을 유린하면서 노동자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이미지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의료바이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가 없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경영권을 승계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본다.
사회:3세 경영 때 70여 년간 유지한 무노조 경영을 철회한다?
조돈문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면, 나는 ‘3세 경영’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본다. 소유권은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세를 내고 이전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분을 이전받는 것이 지배 경영권의 상속까지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분리하자. 3세 경영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한다. ‘3대 세습’이라는 표현이 지금은 더 적절한 것 같다. 지배경영권의 독점 세습과 무노조 경영 방침, 두 가지의 악습이 폐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넘어가는 것은 3대 세습이라고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