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한국의 생활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급기야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으로까지 떠올랐다. 국민도 합리적 소비를 해야겠지만, 대다수는 원인 제공자이거나 이를 개선할 책무가 있는 국가의 몫이다.
“차라리 택시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낫겠다.” 얼마 전 지인의 이런 얘기에 필자는 맞장구를 쳤다. 거의 늘 별 보고 출퇴근해야 하는 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불편해 자가운전자 대열에 끼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이제 차를 버릴까 고민 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름 값이 너무 올라서다. 몇 년 전 휘발유 값이 고공비행할 때 경유차로 바꿨으나 이마저도 헛수고였다. 최근 경유값이 휘발유 값을 추월한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택시를 타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되거나 엇비슷할 때는 자가용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차를 몰 때의 마모 비용과 운전에 따른 피로감 같은 ‘숨겨진’ 비용까지 계산하면 확실히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재화이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지만, 아직까지 석유 소비가 눈에 띄게 줄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1년 새 2배가 넘게 뛰었지만, 국내 석유 소비량은 1.6%밖에 줄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데도 소비량이 꿈쩍 않는 기현상이 빚어진 가장 큰 이유로 석유 수입량의 절반 이상이 산업용으로 쓰인다는 점을 꼽는다. 특히 석유화학·철강·비금속 광물과 같은 업종은 석유 전체 수입량의 40%를 소비하는 ‘석유 먹는 하마’이다. 이들 업종의 비중도 선진국의 2배 수준이다.

대체할 에너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기름 값이 올랐다고 공장 가동을 멈출 수는 없는 법. 그런데 일반 소비자마저 왜 이토록 고유가에 둔감한 것일까. 이에 대한 전문가 분석은 놀랍게도 기름 값이 ‘쉼없이 오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충격에는 좀처럼 바꾸지 못하는 생활의 관성 탓도 있을 터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은 나라에 사니 유가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환율 상승을 사실상 용인해 유가를 더 밀어올리는 정부가 마뜩지 않지만 넘어가자. 커피·캔맥주·화장품·과자·오렌지주스·책 같은 수입품과 골프장 그린피 등은 왜 이리 비싼가?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7개 품목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억울하게 산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들 7개 품목의 가격을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 중국 등 세계 11개국과 비교하면 거의 대부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단순 가격 비교로도 만만치 않지만, 상대적 가격 차이를 발생시키는 환율변동 요인을 제거한 구매력지수(PPP)로는 7개 품목 모두 가장 비싸다. 나라 간 물가 비교에 즐겨 쓰는 기준인 구매력지수로, 한국을 100으로 할 때 ‘선진국 클럽’인 G7 국가는 많아야 73.2(책), 적게는 43.9(골프장 그린피)에 지나지 않는다. 골프야 안 치면 된다 해도 나머지 품목은 서민이라도 소비해야 하는 생필품이다.

생활물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가득한 나라라니!

소비자원 조사보다 조금 앞서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 세계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전체 평가가 2007년 결과보다 2계단 낮아진 31위라는 사실만 크게 부각되었지만, 이보다 필자를 더 낙담케 한 것은 생활비용 지수이다. 전체 55개 나라 가운데 거꾸로 일등이다. 2007년에는 꼴등을 한끝 차이로 벗어난 54등. 1990년대에도 중하위권을 맴돌았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징후가 뚜렷하다.

부자라도 생활물가가 오르는 일을 반길 리 없지만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급기야 생활물가 수준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으로까지 맹위를 떨친다. 왜 이런 달갑지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떤 재화의 국내외 가격차가 발생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유통단계가 복잡하거나 세율이 높거나 정부 규제가 많고 시장구조가 독과점이며, 소비 행태가 비합리적일 때 빚어지는 이른바 구조적 요인이 생활물가를 끌어올린다. 경제 전체가 이른바 ‘고비용(고임금·고지가·고금리 등)·저효율(저생산성·저기술 수준)’ 구조라는 경제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  

국토 면적이 작고 자원이 부족한 이른바 자연적 요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구조 요인과 경제 요인의 개선 여부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소비자인 국민도 합리적 소비를 해야겠지만, 대다수는 원인 제공자이거나 그것을 개선할 책무가 있는 국가의 몫이다. 국가가 국민 다수를 질곡에 빠뜨린 채 방치한다면 설령 국민소득이 높아진들 무슨 소용인가. 선진국치고 생활물가가 높은 나라는 없으며, 생활물가가 높다면 국민은 행복할 수 없다. 이미 한국민은 가난한 나라 사람에 비해서도 행복하지 않은 국민 축에 낀 지 오래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