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흥행에서 중요한 숫자는 1000만이다. 관객 수 1000만명이 넘어야 진정한 흥행 영화로 인정받는다. 1000만 영화가 되면 2차 판권이나 해외 판권료가 달라지고,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영화를 만든 감독, 출연 배우 모두 몸값이 올라가게 된다. ‘관객 1000만’은 영화를 제작하는 모든 사람의 꿈이다.

여태까지 한국 영화 중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모두 몇 편이나 될까? 영화진흥위원회가 통합전산망을 구축하기 전에 나온 영화인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가장 최근의 1000만 영화 〈변호인〉까지 포함해 모두 10편이다. 이 중에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13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 역대 영화 흥행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 시장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영화 흥행 순위에서 자국 영화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은 자국 영화가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시장인데도 1위 자리는 할리우드 영화에 내주었다.

[엘리트 스쿼드 2]의 한 장면.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 영화 시장은 어떨까? 브라질은 축구 강국이기는 하지만 영화 강국은 아니다. 그럼에도 브라질 역대 영화 흥행 순위에서 제일 높은 자리는 브라질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2008년 개봉한 〈다크 나이트〉와 2009년 개봉한 〈아바타〉를 멀찍이 뒤로하고 6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호세 파딜라 감독의 〈엘리트 스쿼드 2〉가 그 주인공이다(외국의 흥행은 관객 수가 아니라 수익 기준이다).

교황의 브라질 방문을 앞두고 ‘파벨라’라고 불리는 브라질 빈민가에서 벌어지는 브라질 특수경찰대 ‘보피’와 마약상 간의 전쟁을 그린 〈엘리트 스쿼드〉는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조제 파딜랴 감독은 전편에 대한 높은 평가에 힘입어 스케일이 부쩍 커진 속편을 제작해 성공을 거두었다.

어딘가 모르게 허술한 B급 영화 〈터미네이터〉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2〉를 매끈하게 뽑아낸 제임스 캐머런 감독처럼, 조제 파딜랴 감독도 1편을 능가하는 속편을 만들어냈다. 브라질 관객들은 자국의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엘리트 스쿼드 2〉를 역대 최고 흥행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이 영화는 브라질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자신의 결핍을 채운다. 웃음이 필요할 때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 사랑에 굶주렸을 때는 로맨스 영화를 본다. 크게 흥행한 영화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결핍을 읽을 수 있다. 〈변호인〉이 11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트 스쿼드 2〉의 흥행도 이런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EPA영화처럼 브라질 경찰들이 리우데자네이루 시 빈민가에서 마약 조직원 소탕을 위해 순찰을 돌고 있다.

전편 〈엘리트 스쿼드〉에서 다뤘던 보피와 마약상의 전투는 마약상으로 대표되는 ‘시스템’을 적대자로 삼고 있다. 제작비와 스케일이 커진 속편에서는 악역인 ‘시스템’의 스케일도 커진다.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문제 삼던 전편과는 달리 속편에서 조제 감독은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사회와 국가 구조에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왜 빈민가와 마약상이 생기는가? 왜 경찰과 경찰 조직은 부패하는가? 왜 정의는 외롭고 연약한가? 왜 부패한 정치가들이 집권하는가? 어째서 이런 부당한 일이 계속되는가? 따위 브라질 사회가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조제 감독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 나시멘투 대령을 통해 바라본 조제 감독의 시선은 마치 꼴통 파시스트처럼 보인다. 범죄자들의 인권 같은 시시하고 사소한 문제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다른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감독의 시선은 극적으로 바뀐다. 나시멘투 대령이 하찮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오히려 중요한 일이며, 나시멘투 대령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나시멘투 대령이 없애려 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조제 감독은 말한다. 아마 이것이 조제 감독이 〈엘리트 스쿼드〉 1, 2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대상이 사실은 우리가 없애려고 하는 바로 그 대상 아닐까?

조직력을 중시하는 유럽 축구와 달리 브라질 축구는 유달리 개인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브라질 축구 선수들의 개인기는 남다르다. 축구를 사회문화 현상의 하나라고 본다면 이것은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엘리트 스쿼드〉를 통해 바라본 브라질은 개개인 간의 신뢰가 무너진 사회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며, 각자도생만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동료를 믿고 신뢰하기보다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를 통해 바라본 브라질의 문화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와 국가가 유지되는 유럽과, 각자가 자신의 삶을 모색해야 하는 브라질의 차이가 아마 조직력 위주의 유럽과 개인기를 중시하는 브라질 축구의 특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 사실이 점점 경쟁만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티 오브 갓>(위)은 브라질 ‘뒷골목’의 이야기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보라

일본 만화잡지 〈점프〉의 편집장은 “사회현상을 일으키는 작품은 바란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풍부한 재능을 지닌 창작자가 시대의 요청을 읽고 그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들었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라고 말한다. 조제 파딜랴 감독의 풍부한 재능이 브라질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읽고 그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 흥행 순위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를 통해 브라질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역대 최고의 액션 스릴러로 꼽히는 〈시티 오브 갓〉도 추천한다. 신에게도 버림받은 무법천지 도시에서는 어린아이도 갱단이 되어 총을 잡아야만 한다. 브라질 유명 작가인 파울루 린스는 자신이 성장한 브라질 뒷골목의 이야기인 소설 〈시티 오브 갓〉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영화는 소설만큼이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도 챙겨 보시라. 배경이 브라질이다. 브라질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면 축구만큼이나 색다른 맛이 있다.

기자명 이승훈 (SBS 프로듀서·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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