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프로 축구팀은 등록된 것만 해도 800개가 넘고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4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눈만 뜨면 축구를 하는 그들은 프라야(해변)에 가도 수영이나 일광욕보다는 모래밭에서 축구를 즐긴다. 브라질에 이사를 간 한국인 주재원 자녀가 학교에서 축구를 못해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FIFA 랭킹 50위권인 한국의 아이가 세계 축구 1위의 수준을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브라질 아이들에게는 축구가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축구에는 브라질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브라질 사람들이 언제부터 축구를 좋아하고 잘했는가? 대략 80년 전통을 갖고 있다. 혼혈과 이민의 역사로 이루어진 브라질이지만, 처음에는 축구장에 흑인이나 혼혈 유색인종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30년대 브라질에 프로 축구가 탄생하면서 이들도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없이는 팀이 구성되지 않았고, 수준 있는 경기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흑백 혼혈인(브라질에서는 모레노라고 한다)들의 선천적 유연성과 ‘징가’라고 불리는 리듬감은 백인 선수들을 압도했다.
이때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대통령 시절로, 1930년에 집권한 그는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통해 브라질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등 부국강병을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자신의 민족주의 이념과 사회 통합을 위해 축구와 카니발을 이용했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리우 카니발도 이때에 본격화되었다. 특히 축구와 관련해서 그는 축구협회와 지역별 연합회를 만들고 1938년 월드컵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에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위정자들이 축구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국민 통합의 매개체로 삼으니, 축구를 잘하지 않으려야 잘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축구를 통해 인종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 통합을 도모했다. 소외되었던 하층민이나 혼혈인들은 축구장에서 해방감과 성취감을 얻었다. 펠레와 가린샤,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면서 브라질의 영광을 이루었다.
이번 월드컵이 축구를 달리 보는 전환점 될 수도
여기까지가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 전의 상황이다. 지금은 브라질 전역에 안티 월드컵 시위가 만연해 있다. 브라질 사람들이 그야말로 축구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시사IN〉 제352호 ‘축구가 밥 먹여줍니까?’ 참조). 그들도 축구 경기가 끝나면 마지막 휘슬과 함께 자신들의 열악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또 축구가 정치가들에 의해 우민화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도 같다.
브라질의 축구 열기는 이번 2014 월드컵이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민생과 복지를 유보한 채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부은 이번 월드컵에서 만약 브라질이 우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브라질의 전 국민은 ‘안티 월드컵’에서 ‘안티 푸테보우(futebol·축구)’로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브라질 공무원도, 월드컵 조직위원회 관계자도 아닌 주제에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보다 한국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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