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계관’ 아닌 ‘세계감’
  • 고재열 기자
  • 호수 352
  • 승인 2014.06.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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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펴냄
기자 초년생 시절, 이문재 시인이 문화부장(취재3부장)이었고 소설가 김훈 선생이 편집국장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이 모양인 것이 늘 죄송하다). 이문재 시인은 카푸치노처럼 향이 풍부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기사를 썼고, 김훈 선생은 에스프레소처럼 짧고 강렬한 칼럼을 썼다. 기자를 하면서도 둘은 시인다웠고 소설가다웠다. 김훈 선생은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행동했다. 개성이 강해서 그를 캐릭터로 소설을 쓰면 흥미로운 소설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사적 자아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는 말을 남긴 채 소설의 주인공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반면 이문재 시인은 시처럼 말했다.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모호해서 마치 선문답 같았다.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었다. 느림을 좋아하던 그는 사색적이었다. 그러다 술이 들어가면 비로소 말문이 터졌다. 사색이 사변이 되어 흘러나왔다. 술이 더해질수록 말수가 늘었고 술과 술 사이에는 침묵이었다. 술과 술 사이를 참지 못할 때는 낮술을 마시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술은 ‘마취제’였지만 그에게는 술이 ‘각성제’였다. 사람들이 사물의 표면을 해석하려 할 때 그는 이면에 공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이문재 시인이 10년 만에 엮어낸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사연의 여백을 읽어주는 시집이다.
ⓒ시사IN 자료 이문재 시인이 10년 만에 엮어낸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사연의 여백을 읽어주는 시집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일종의 ‘중년물’이다. ‘사건’을 보았을 때 ‘사연’이 읽히는 것이 바로 중년이다. 단순히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의 여백을 읽어주는 것이다. 중년이 세상을 읽는 법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시집이다. 늘 세상사에 ‘감각의 돋보기’를 들이대고 두리번거리는 시인이 온몸으로 읽어낸 세상을 접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불편한 진실의 목격자’

이문재 시인은 기자 후배들을 만나면 늘 “미안하다, 미안하게도 나는 잘살고 있다”라고 말한다. 취재 현장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낸 말인데 그의 시를 읽어보면 그는 아직도 ‘불편한 진실의 목격자’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원조교제 여학생과 동남아 새색시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아빠랑 싸우고 싶은데 아빠를 만날 수가 없다. 엄마를 두들겨패주고 싶은데 엄마와 마주칠 시간이 없다…. (중략)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집 밖이었다. 그렇다고 어딘가 이 할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중에서)

“마을 사람들이 새색시한테 암송아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네요. 왜 하필 송아지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그럴듯했습니다. 송아지 잘 키워서 소 판 돈으로 친정에 다녀오도록 한다는 거예요.”(‘소 판 돈이 이쯤은 되어야’ 중에서)

이문재 시인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참여시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그런 현실에 부대끼며 고뇌한다. 현장에 없다고 함께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뒤에 있다고 나서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라 세계감(世界感)이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만변하는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한번 읽어볼 만하다. 거리로 나가지는 않지만 마음이 계속 거리에 머물고 시선이 자꾸 거리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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