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을 때마다 그는 어두운 강을 바라본다. 미국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임태훈씨(29)의 집은, 임씨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부도가 났다. 부모는 삶의 끝을 생각했다. 강물에 비친 근처 교회의 십자가 불빛에 마음을 다잡았다. 임씨는 서울의 달동네와 경기도 농촌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자랐다.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사회 진출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담임교사한테 장학금을 주는 고등학교를 소개받았다. 대학도 역시 선택의 여지 없이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에 진학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부자를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에 방황했다. 어느 날 교수가, 늘 삐딱하게 앉아서 자신을 노려보는 임씨를 불렀다. ‘좋은 경영학이 좋은 기업가를 낳고, 그 기업가가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교수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부터 시작한 공부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강의 초반, 임씨가 미국 유수 대학에서 받은 합격통지서를 보여주자, “우아, 대박!”을 외치던 학생들이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시사IN 신선영 6월3일 서울 연세대학교 공학원에서 열린 공감 콘서트에 참여한 학생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공감 콘서트는 강원과 충북에서도 열렸다.


‘미국 명문 대학 한인학생회와 함께하는 리더십포럼-2014 청소년을 위한 〈시사IN〉 공감 콘서트’(공감 콘서트)가 강원(5월29일), 충북(5월30일), 서울(6월3일)에서 열렸다. 공감 콘서트는 2010년에 시작해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시사IN〉의 대표적인 사회 환원 프로그램이다. 공감 콘서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유학 설명회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감 콘서트는 ‘꿈’을 주제로 고등학생들과 함께 얘기하는 무료 강연이다. 해가 갈수록 소문이 퍼지면서 이번 콘서트에 참가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 강원은 강원도교육청, 충북은 충북인재양성재단과 함께 진행했다.

공감 콘서트는 게스트 특강, TED식 강의, 멘토·멘티 만남으로 진행되었다. 특별 게스트로는 사회적 기업 ‘모티브하우스’ 서동효 대표(강원·충북)와 개그우먼이자 시사 프로그램 MC를 지낸 김미화씨(서울)가 나섰다.

서동효 대표(31)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놀이공원 직원, 유치원 교사를 거쳐 ‘꿈 문화 기획자’라는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었다. 서 대표는 학생들에게 동그라미가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며 오른쪽에는 꿈, 왼쪽에는 꿈을 이뤘을 때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고 했다. “오른쪽을 가려보라. 여러분이 왼쪽에 적은 가치는 꼭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이룰 수 있다. 직업이 아닌 삶의 가치를 꿈꾸자.”

서울 공감 콘서트에 초청 강사로 나선 개그우먼 김미화씨(50)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자기의 장래 묘비명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코미디언을 꿈꾼 그녀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사회에 나갔다. 마흔 살에 대학에 들어가 지금은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김씨는 “나도 ‘꽁꽁 언 걸레’로 맞아가며 부모의 반대를 이겨냈다. 부모님이 아닌 여러분이 인생의 주인공이다”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잉여 시절’

이어서 진행된 공감 콘서트에서는 강사 6명이 꿈을 열쇳말로 강연을 이어갔다. 임태훈씨는 꿈을 찾아 유학길에 나서기 일주일 전까지 등록금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 일면식도 없던 평소 존경하던 세 사람에게 무작정 후원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두 명에게는 거절당했고, 마지막 한 사람은 선선히 한 학기 등록금을 건넸다. 1달러도 안 되는 햄버거로 세 끼를 해결하며 임씨는 학업을 이어갔고, 현재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꿈을 좇고 있다. 그렇게 기적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한 임씨는 “가정형편이나 외모, 장애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이정석씨(26·프린스턴 대학 물리학 박사과정)는 도깨비 방망이를 든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첫 희망이 ‘마법사’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만화 위인전에서 아인슈타인을 보고 ‘에네르기파’ ‘초능력 인간’을 떠올렸다. 아인슈타인이 공부한 프린스턴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꿨다. 꿈에 그리던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수면장애와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진학 자체가, 대학 간판이 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의과대학 암연구소 인턴도 해보고, 금융권 면접도 보면서 이씨는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물리학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 너머의 꿈’을 찾았다. 이씨는 “꿈을 정확하게 찾으려면 무엇보다 자기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강욱씨(26·UC 버클리 전자공학 박사과정)는 이력이 화려하다. ‘서울과학고 조기 졸업’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수석 졸업’ ‘대통령상 수상’.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진 위태로웠던 과정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부모는 그가 다니던 학원을 모두 끊었다. 시간이 남아돌았던 이씨는 온종일 축구와 〈스타크래프트〉, 컴퓨터만 했다. 남들은 한심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잉여’로 지낸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과학고에 ‘거의 꼴찌’로 들어갔지만 상위권으로 졸업했다. 비결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묻고 또 물으며 함께 공부한 덕이었다. ‘완벽하게 불완전한(perfectly imperfect)’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씨는 “좋아하는 걸 맘껏 하는 시간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시사IN 신선영 초청 강사로 나선 개그우먼 김미화씨(위)는 마흔에 대학에 입학한 사연을 풀어내며 “여러분이 인생의 주인공이다”라고 말했다.


적당한 성적에 맞추기보다 진짜 적성을 찾아서

김영완씨(30·컬럼비아 대학 전자공학 박사과정)는 “내 삶은 롤러코스터 같았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경북 문경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3 때 수능을 망쳐 재수를 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했다. ‘적성(적당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기보다, 그는 무턱대고 관심이 끌리던 항공우주학 관련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메일을 보내 조언을 받았다. 조언대로 자신의 진짜 적성과 맞아떨어진, 경북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텍사스 대학에서 공부를 해 공동학위를 딴 김씨는 미국 10군데 대학 박사과정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컬럼비아 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홍일점’ 강사로 나선 홍지연씨(24·UC 버클리 정치경제학 학사과정)는 ‘고3병’을 심하게 앓았다. 고등학교 3학년 홍씨는 밤 12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에 갔다가 새벽 2시에 돌아오고, 다시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 그저 멋져 보이고 싶었을 뿐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모범생이었던 홍씨는 부모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때까지 자기 삶의 100%나 다름없던 공부를 내려놓고 책을 읽으며 진로를 다시 생각했다. 이후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한 홍씨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한 뒤 UC 버클리에 편입했다. 홍씨는 “정해진 길이 아니고,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정말 하고 싶은 꿈이 생길 때 그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강사로 나선 한혜민씨(29·스탠퍼드 대학 교육학 박사과정)는 ‘가지’와 ‘뿌리’를 열쇳말로 강연했다. ‘왜 모두들 규칙을 어기고 살아가지?’라는 궁금증에 윤리교육을 전공한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해 공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는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삼았다. 자연에도 관심이 있어서 천문학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관심사를 다양하게 넓혀나간 그에게 ‘뿌리’는 하나였다. ‘내가 배운 것을 남들과 나누어서 이 세상을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겠다.’ 현재 뇌과학을 활용해 도덕 교육 방법을 연구하는 한씨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되 그것을 묶는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공감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인 멘토·멘티 만남이 이뤄졌다. 고등학생들이 직접 두 명의 멘토를 선택해 차례로 찾아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공부 방법부터 진로, 연애에 이르기까지 질문을 쏟아냈다. 멘토로 나선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메일과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주며,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 않고 SNS상에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강원도 콘서트에 학생 9명을 데리고 온 강릉여고 김이경 교사(36)는 “교사를 하다 보면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을 많이 보는데, 형이나 언니 또래가 멘토로 나서 조언을 해주니 아이들이 더 공감하고 만족스러워한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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