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000억원대 은행권 대출 사기 사건의 주범(중앙티앤씨 서정기 대표)과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전 수석 사이에 수상한 돈거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이 〈시사IN〉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 경제범죄특별수사대(대장 강승관)는 대출 사기 가담자 8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 짓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이 사건의 경찰 수사 책임자인 강승관 대장은 지난해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곽상도 수석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어서 사건 배후에 대한 축소 수사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지난 3월20일 경찰은 ‘사상 최대 1조8000억원대 대출 사기 조직 적발’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KT 자회사인 KT ENS 협력업체들이 낀 대출 사기 조직 16명을 적발해 그중 8명을 구속했다는 내용이었다. 범인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주변기기 제조 유통업자들이었다. 핵심 주범은 ㈔한국스마트산업협회장이자 휴대전화 액세서리 부품 유통업자인 ㈜중앙티앤씨(TNC) 대표 서정기씨로 밝혀졌다. “서씨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5년여 동안 KT ENS 시스템영업개발부 부장 김 아무개씨와 공모해 허위 매출채권 양도승낙서, 사용인감계 등을 위조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하나은행·농협·KB국민은행·우리은행 등 16개의 금융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총 463회에 걸쳐 1조8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받았다”라는 것이 경찰의 발표 내용이다. 1조8000억원에 이르는 사기 대출 금액 가운데 행방을 알 수 없는 돈은 3100억원. 금융권과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경찰은 사기범 일당이 호화 생활을 하는 등 주로 개인적으로 탕진했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연합뉴스2013년 3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곽상도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경찰은 주범 서정기씨 배후에 금감원 김 아무개 팀장이 있었다고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서씨는 2008년 5월 대출받은 자금으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소재 임야 116만㎡(약 35만여 평, 구입가 230억원)를 구입하고 그 부지에 ㈜신천지농장을 조성했는데, 금감원 김 아무개 대이 땅 구입 과정에서 사채업자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농장 지분 30%를 갖기로 했는가 하면, 수차례에 걸쳐 억대 호화 골프여행 접대를 받는 등 사기범 일당과 유착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거액 사기 대출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한 금감원 김 팀장은 현재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금감원에 근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승관 대장은 “김 팀장을 상대로 계좌추적을 하고 금감원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특별한 게 나오지 않아 검찰에 품신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5년 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의 금융 시스템을 유린한 거액의 대출 사기 사건이 금감원 팀장 한 명의 비호로 가능했다는 경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시사IN〉은 경찰이 언론 브리핑에서 사기로 대출받은 자금이 흘러들어간 곳이라고 지목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과 산현동 경계에 자리한 ㈜신천지농장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서해안고속도로 바로 옆에 자리한 ㈜신천지농장 부지는 아담한 임야였는데, 그 한켠에서는 LH공사 아파트 건설을 위한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택공사에서 일부 택지지구로 수용한 땅을 포함해 기존 대한전선이 소유하고 있던 인송농장을 땅 구입자들이 230억원에 사서 신천지농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주택공사 수용보상금 160억원에, 매입자들이 70억원 정도를 대 매입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신천지농장 법인 등기에는 2008년 5월23일 기존에 인송농장으로 돼 있던 이 땅을 중앙티앤씨 대표 서정기, 신보전선 대표 이원수 등이 매입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서정기씨가 이 땅을 구입한 시점은 은행 대출 사기가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시사IN 신선영KT ENS는 대출 사기 사건에 연루되면서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청와대 입성하는 순간 근저당 모두 해지

〈시사IN〉은 ㈜신천지농장 소유 임야의 전체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사기 대출 주범이 매입한 광범위한 땅에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곽 전 수석은 임야 전체에 대해 공동담보 형식으로 다른 채권자들과 근저당을 설정해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과 서울고검 검사를 끝으로 2009년 2월 ‘곽상도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곽 전 수석이 ㈜신천지농장 전체 부지에 공동담보 형식으로 근저당을 설정한 때는 2011년 3월25일이었다. 채권 최고액은 1억6700만원이었다. 등기부상 그가 이 땅 전체에 대한 근저당을 해지한 때는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2013년 2월12일이었다.

왜 곽상도 전 수석은 대출 사기단이 개입한 문제의 땅에 근저당을 설정해두었다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순간 이를 모두 해지했을까. 이에 대해 당시 이 사건의 내막을 아는 한 관계자는 “시골에 있는 신천지농장 구입자금으로 거액이 흘러 들어오니까 관할인 안산지청이 자금의 흐름을 내사했다. 그러자 땅 구입자들이 서울에 있던 곽상도 변호사를 움직여서 내사를 무마했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인천지검 안산지청 근무자들을 수소문한 끝에 당시 ㈜신천지농장 내사에 나섰다가 중지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를 확인해 연락했다. 현재 한 지방지청 부장검사로 재직 중인 그는 신천지농장 구입자금 내사를 중지한 경위에 대해 “오래된 일이고 본격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건에 대해 내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곽상도 전 수석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라고 부인하다가 기자가 근거를 대며 거듭 묻자 “2008년 곽상도 검사님이 서울고검에 재직할 때 안산지청에 기획 감사를 하러 내려와서 아는 사이가 됐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신천지농장이 소유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소재의 땅 한 귀퉁이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렇다면 곽 전 수석은 어떻게 거액의 사기 대출범으로 구속된 서정기씨와 인연을 맺었을까. 둘 사이의 관계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렇게 전했다. “대구 계성고 출신인 신보전선 이원수 대표가 같은 대구 출신(대건고 졸업)인 곽상도 수석과 ‘TK(대구·경북)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다가 신천지농장 공동 구입을 매개로 서정기씨를 소개하면서 친해졌다. 곽 전 수석이 신천지농장 자금 흐름에 대한 안산지청의 내사를 막아준 데 대해 서정기씨가 섭섭지 않게 대접한 것으로 안다.”

사기 대출 자금의 일부로 구입한 신천지농장 부지 35만여 평은 서정기씨 주도로 공매 절차 등을 거쳐 분할 매각된 후 현재는 약 12만 평만 이원수씨 명의로 남아 있다. 공시지가로 계산하면 약 100억원대다. 이원수씨는 지인을 통해 “남은 땅은 내가 지분만 갖고 있을 뿐 빈 깡통이나 마찬가지다. 사채업자와 서정기씨가 분할 매각해서 판 땅의 양도세를 내지 않아 국세와 지방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전해왔다. 시흥시청 측은 현재 신천지농장의 체납세액이 22억원이라고 밝혔다.

체납세액 22억원이면 땅을 사고판 금액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내막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서정기씨가 230억원에 산 신천지농장을 쪼개 팔아서 500억원 이상을 받았으니 수익이 300억원대에 이른다. 이번 은행권 사기 대출 조사 과정에서 금감원이 서정기씨의 자금거래 내역을 추적하다가 거액이 곽상도 전 수석 계좌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전했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자금 흐름은 금감원이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금감원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곽 전 수석과 관련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법조인인 곽상도 전 수석이 서정기씨의 사기 대출 범죄를 알면서도 그와 수상한 거래 관계를 맺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근저당권자로 이름을 올린 ㈜신천지농장의 구입자금 출처에 대한 검찰 내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5년에 걸친 대규모 대출 사기 사건은 초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윤무영사기 대출 자금이 흘러간 곳으로 지목된 ㈜신천지농장의 등기부등본. 곽 전 수석은 공동담보 형식으로 다른 채권자들과 근저당을 설정해뒀다.

‘저축왕’ 곽상도? 청와대 예금 순위 1위

지난해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은 공직자 재산등록 과정에서 30억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인사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특이한 점은 신고한 재산 가운데 예금액만 20억원이 넘어 전체 재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예금 규모로는 청와대 내 1위였다. 본인 명의 예금이 9억6300만원, 배우자 명의가 9억6200만원, 장녀 6700만원, 장남 5400만원 등 예금액으로 모두 20억4700만원을 신고했다.

곽 전 수석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영업정지당한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변론을 맡으면서 받은 수임료와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예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당사자 해명과 사실 확인을 위해 곽 전 수석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동안 곽 전 수석 것으로 알려졌던 전화번호는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5월28일 그의 이메일 주소를 통해 서정기씨와의 돈거래 및 비호 의혹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지만 마감 시간까지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이 기사가 지면으로 보도되고 10여일이 흐른 6월10일 곽 전 수석이 기자에게 이메일 답신을 보내왔다. 곽 전 수석은  당시 (주)신천지농장 구입자들(신보전선 이원수 대표와 구속중인 서정기씨)이 안산지청으로부터 신천지농장 구입자금의 출처와 관련해 내사를 받게 되자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와 변론을 맡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의뢰인들로부터 제3자로부터 차용한 돈이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안산지청에 해명해준 바 있다"라고 밝혔다. 

2011년 신천지농장에 근저당을 설정했다가 2003년 2월12일 청와대 민정수석 내정 무렵에 근저당을 말소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안산지청 내사) 사건이 종결되고서도 1년 이상 의뢰인들로부터 약정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중, 근저당이라도 설정해주겠다고 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근저당을 설정했지만, 이미 자산관리공사 공매가 진행중인데다 공매를 해봤자 선순위로 설정된 조세 채권 및 여타 채권 등이 너무 많아 아무런 배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근저당을 말소했다." 근저당 말소 시기가 공교롭게 청와대 민정수석 인선 무렵과 겹쳤을 뿐 다른 의도나 배경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사기대출범 서정기씨와의 유착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곽 전 수석의 해명을 통해 그가 신천지농장에 대한 안산지청의 내사 무마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확인되었다. 따라서 그의 주장대로 신천지농장에 대한 근저당 설정은 수임료 때문인지, 신천지농장 구입과 분할 매각 과정에서 자금 흐름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흐름에 대한 검찰 내사는 왜 중단되었고 그 과정에 외압은 없었는지에 대해 총체적인 조사와 진상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