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요동치고 있다.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의 절대 우위가 계속되던 판세가 크게 흔들리는 추세다. 5월11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김진표 전 의원이 선출되면서 두 자릿수 이상 벌어졌던 두 후보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졌다. 오차범위 안쪽으로 접전 중인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남경필 후보 측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일찌감치 남경필 후보의 우위로 굳어진 여당과 달리 야당은 경기도지사 후보를 놓고 김상곤·김진표·원혜영 후보가 막판까지 각축전을 벌였다. 후보 확정 이후 야당 주자의 지지율이 반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남 후보 측은 적극 투표층에서 여전히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진표 후보 측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계산한다. 두 후보 간 박빙 양상으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가 캠프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나왔다는 점에서 고무돼 있다. 후보 단일화 효과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권심판론, ‘두 가지 바람’을 탔다는 게 김 후보 측의 분석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남경필 후보(왼쪽)와 김진표 후보(오른쪽)의 당내 입지는 묘한 구석이 있다. 남 후보는 여당의 쇄신파, 김 후보는 야당의 온건파 구실을 했다. 선거 결과는 중도층의 표심에 달렸다.
ⓒ연합뉴스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남경필 후보(왼쪽)와 김진표 후보(오른쪽)의 당내 입지는 묘한 구석이 있다. 남 후보는 여당의 쇄신파, 김 후보는 야당의 온건파 구실을 했다. 선거 결과는 중도층의 표심에 달렸다.

근거는 또 있다. 보수(김문수) 대 진보(유시민)로 확연히 갈려 맞붙었던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 후보는 47.79%의 득표율을 얻어 김문수 후보에게 4.4%포인트 차이로 졌다. 경기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야권이 얻은 54.45%에 한참 못 미치는 득표였다. 야권 지지 성향을 지녔지만 강성 진보는 부담스러워하는 ‘중도층 표심’을 유시민 후보가 잡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교육 부총리와 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는 등 굵직한 이력을 자랑하는 김 후보가 ‘산토끼(중도층)’를 잡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집토끼에게 공격당하는 김진표 후보

복병은 따로 있었다. 갑자기 ‘집토끼(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들이 김진표 후보의 발목을 잡고 나섰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SNS 공간에서는 ‘투표 의욕을 잃었다’ ‘김진표는 새누리당 2중대’ 같은 비판이 쏟아진다. 비판론자들은 몇 가지 사례를 든다.

첫째,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를 추진한 장본인이다. 둘째, 법인세 인하를 주장한 친재벌 인사다. 셋째, 재경부 관료 출신의 ‘모피아’(재무부 관료 출신 인사를 마피아에 빗대 부르는 말)다. 이런 이력을 지닌 김진표 후보가 ‘야권에 적합하지 않은 반개혁적 후보’라는 것이다. 2012년 총선 당시에도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 등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은 김진표 후보의 총선 출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진표 후보 측에 물었다. 뜻밖에 김진표 후보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는 본인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북한 체제는 실패했고 3대 세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둘째, 재벌은 개혁 대상이지 해체 대상이 아니다. 셋째, FTA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FTA의 경우 한국과 같은 ‘소규모 경제 국가’가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무역협정이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참여정부 때 ‘괜찮게’ 만들어놓은 내용을 이명박 정부 때 미국에 대폭 양보하면서 개악한 것이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주장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더욱이 당시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범정부 정책이었음에도 이를 김진표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 옳으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미 FTA를 꾸준히 비판해온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이었다고 봐야 한다. 김진표 후보가 한·미 FTA의 장본인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가혹하다”라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 전쟁·북한 핵문제·유가 오름세 등 대외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기업의 설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법인세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는 게 김진표 후보의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법인세율(과세표준 1억원 초과 기업에 27%)이 과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다만 재벌 대기업의 세금을 더 이상 깎아주거나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지금 그의 생각이다.

김진표 후보는 본인의 개혁성을 정작 진보개혁 진영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불만을 표한다. 이를테면 그는 금융실명제를 추진한 ‘4인방’ 중 한 명이었다.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는 개혁 정책이다. 이 밖에도 부동산실명세, 상속·증여세 과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굵직한 개혁 조치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시절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고,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 매각한 일 등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된다. 경제 분야에서 그의 행적을 평가하는 데 좀 더 엄밀한 잣대가 필요한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로 나섰던 김진표 후보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상대 측의 경선 방식 제안을 파격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선 패배 후에도 유시민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빛나는 패배’였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4년 만에 ‘권토중래’에 나선 김진표 후보는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문에서 ‘김대중의 영혼과 노무현의 심장’을 지닌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만큼 두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를 이어받겠다는 뜻이다. 그의 ‘정체성’에 진보개혁 진영의 집토끼들이 얼마나 호응하느냐가 경기도지사 선거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여당의 쇄신파 vs 야당의 온건파

남경필 후보는 ‘운 좋은’ 정치인이다. 1998년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 남평우씨가 임기 도중 작고하자 지역구(수원 팔달구)를 물려받아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이후 내리 5선을 지냈다. 수원에서 굴지의 버스회사(경남여객)를 운영하는 집안 내력 때문에 그를 ‘오렌지족’이라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벌인 설전에서 비롯됐다. 당시 남경필 후보는 인권 탄압 의혹이 있는 5·6공 출신 인사들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안기부(현 국정원) 출신인 정형근 의원이 “내가 조국을 위해 일할 때 남 의원은 미국 유학 생활하면서 오렌지족으로 떵떵거리지 않았느냐”라고 공격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남 후보로서는 개혁 행보의 와중에 얻은 불명예인 셈이다.

 

 

 

인천의 유정복 후보(왼쪽)와 송영길 후보. 세월호 이후 인천은 정권심판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정치권에 뛰어든 뒤 남경필 후보는 미래연대·새정치수요모임·경제민주화실천모임 등 당내 개혁 모임을 이끌었다. 원희룡·정병국과 함께 ‘남원정’으로 불리며 당내 쇄신파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오렌지족과 쇄신파는 남경필 후보의 두 가지 이미지다. 이런 상반된 이미지에 대해 남경필 후보 측은 “오렌지족인 건 맞는데 개념 있는 오렌지족이다. 국회의원이 된 후 17년 동안 비주류로 개혁과 상생의 목소리를 내온 것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것 중 눈에 띄는 것이 경기도 부지사, 특보 등 주요 직책에 야당 인사를 등용한다는 내용이다. 야당 도의원과 정례적인 정책협의체를 운영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경기도에서 ‘작은 연정’을 통해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집권 플랜이자 동시에 중도층을 겨냥한 공약이다.

결국 경기도지사 선거는 중도층이 누구를 택하느냐에 달렸다. 거칠게 정리하면 ‘여당의 쇄신파 대 야당의 온건파 간 한판 승부’라고 할 수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든 흥미로운 선거 구도이기도 하다.

정권심판론의 상징으로 떠오른 인천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은 박근혜 정권심판론의 상징적인 지역이 되었다. 인천시장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기 때문이다. 유정복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행정안전부에서 이름을 바꾼 안전행정부의 초대 장관이다. 2월1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그가 ‘이전 정권과 달리 지난해에는 50년 만에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자화자찬한 사실이 세월호 참사 직후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정치권에서는 유정복 후보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유정복 후보는 현직 인천시장인 송영길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벌여왔다. 정가에서는 인천 지역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세월호 참사 이전에 70%를 웃도는 등 전국 평균보다 크게 높았던 점에 주목한다.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마치고 1995년 인천 서구청장(재임 시 전국 최연소 구청장)을 지낸 이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5월 중순 들어 쏟아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송영길 후보가 앞서가는 추세다.

송영길 후보는 전남 고흥 출신이지만 인천에서 노동운동가로 뼈가 굵었다. 1985년 인천 대우자동차 건설 현장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1991년 전국택시노련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인천지역 운수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주력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인천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2000년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했다. 이후 18대 총선까지 386 운동권 출신으로는 드물게 내리 3선을 지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출마해 야당 후보 중 유일하게 수도권 광역단체장이 되었다.

유정복 후보는 송영길 후보를 겨냥해 인천시의 부채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유 후보는 5월15일 후보 등록 직후 기자회견에서 “인천시 부채가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3조원인데, 송 시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송영길 후보는 “인천시 부채의 90% 이상이 전임 안상수 시장이 남긴 것이다. 지난해부터 흑자 재정으로 돌아서 부채 규모가 줄기 시작했다”라고 맞받았다.

송영길 후보 측은 특히 유정복 후보가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있던 지난해 인천시가 광역자치단체 평가에서 1등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 전 장관이 몸담았던 부처에서 1위로 평가한 지자체를 빚더미라고 공격한다면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부채를 갚아나가는 와중에도 서울시보다 먼저 인천시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지하철 해고자를 복직시킨 것 등도 그가 내세우는 업적 중 하나다.

유정복 후보의 공약은 온통 ‘교통’ 문제에 맞춰져 있다. 인천과 강릉을 고속형 철도로 연결하고, 경인전철 지하화를 통해 인천-서울 간 통행 시간을 20분대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KTX 인천발 노선 신설 공약도 발표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위한 소요 예산과 재원 마련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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