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는 뭐가 그리 두려워, 유가족 막아서나
  • 고제규·장일호·송지혜·전혜원 기자
  • 호수 348
  • 승인 2014.05.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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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다시 광화문으로.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맞닥뜨린 것은 겹겹의 경찰과 차벽이었다. 하필, 어버이날이었다.
5월9일 오후 3시28분 청와대 앞 

노란 리본을 옷깃에 단 길환영 KBS 사장이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세월호 침몰 참사 유족과 생존자 가족 180여 명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길 사장은 “KBS 보도국장(김시곤)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인해 여러분 마음에 깊은 상처 드리게 된 것에 대해 지휘 감독을 책임진 사장 입장에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김시곤 보도국장이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보도국 책임자(김시곤)라는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진행을 한 앵커를 나무라며 뉴스 진행자들은 검은 옷을 입지 말 것을 지시했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길 사장은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돌아가면 바로 보도국장 사표를 수리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거리로 나선 지 20시간 만에야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길 사장의 공개 사과와 김 국장의 사퇴를 관철시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해 물의를 빚었다. 항의 방문한 유족들이 영정사진을 높이 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해 물의를 빚었다. 항의 방문한 유족들이 영정사진을 높이 들고 있다.

5월8일 오후 3시50분 안산합동분향소 

임창건 KBS 보도본부장, 이준안 취재주간부 부국장 등 간부진이 분향소를 찾았다. 일행 가운데 김시곤 보도국장이 있는 줄 알았던 유족들이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이준안 부국장을 둘러싸고 승강이를 벌였다. 김시곤 국장이 직접 분향소에 찾아와 유족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김 국장의 발언 외에도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의 정부 편향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김 국장은 이날 분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족 130여 명은 안산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자식들의 영정 사진을 뗐다.

5월8일 저녁 8시30분, 부모들은 자식들의 영정 사진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 5대에 올라탔다. 어버이날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엔 카네이션이 하나도 없었다. 노란 리본을 달거나 검은 넥타이만 맸다. 영정을 안고 버스에 타며 어머니, 아버지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눈물의 거리 행진이 시작되었다.

5월8일 밤 10시50분 KBS 앞 

유족이 맞닥뜨린 건 경찰이었다. 경찰 800여 명이 KBS 앞에 배치되었고 경찰 차벽으로 KBS 출입구도 봉쇄했다. 한 아버지는 영정 사진을 안고 차벽을 넘었다. 또 다른 아버지는 “이런다고 내 아들 살아 돌아오는 거 아니다. (왜 그랬는지) 말이라도 들어보게”라며 한 손에 영정 사진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젊은 경찰을 안고 흐느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5월8일 분향소를 찾은 이준안 KBS 보도국 취재부국장(가운데)이 유족에게 쫓겨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5월8일 분향소를 찾은 이준안 KBS 보도국 취재부국장(가운데)이 유족에게 쫓겨나고 있다.

아스팔트에 앉은 유족들은 길환영 사장의 공식 사과와 김시곤 보도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대표단을 뽑아 KBS 로비로 들여보냈다. 최민희·김기식·진선미·부좌현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나서 길 사장과 접촉을 시도했다. 권영국·황필규 변호사 등 민주화를 위한변호사모임의 ‘세월호 진상규명 법률지원 특별위원회’ 소속 변호사들도 합류했다.

하지만 유족 대표단과 변호사들은 KBS 1층 로비에 설치된 자동문에 막혔다. 보안직원들이 출입증을 달아야 들어갈 수 있다며 제지했다. 유족들은 “우리가 견학 왔느냐”라며 항의했다. 그 시각 길환영 사장 등 임원진은 대책을 숙의했다. KBS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김 국장은 문제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내부에 해명했다”라고 귀띔했다.

유족 대표단이 로비에 앉아서 사장 면담을 요청한 지 30여 분, 임창건 보도본부장 등 회사 쪽 인사 3명이 나왔다. 유족 대표단은 이들에게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임 본부장은 “내가 책임자이니 내게 말해달라”며 사장 면담 요구를 거부했다. 대표단은 “그렇다면 본부장이 보도국장을 문책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고, 임 본부장은 “김 국장이 정말 그 발언을 했는지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에…”라며 얼버무렸다. 이 같은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KBS 직원은 유족 대표단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일종의 채증이었다. 유족 대표단도 맞대응 차원에서 JTBC 카메라 기자에게 취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KBS 직원들은 JTBC 기자의 출입을 막았다.

유족 대표단은 마지막으로 김시곤 보도국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국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유족 대표단은 “사과를 구걸하지 않겠다”라며 로비를 빠져나와 유족들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유족들은 “우리들이 국민입니까?”라는 구호를 외쳤다.

5월9일 새벽 2시50분, 유족들은 모두 청와대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유족들의 청와대행이 알려지자, 경찰이 중재에 나서는 척했다. 한 경찰 간부가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이 ‘가시적인 거리’에서 사과할 뜻이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임 본부장은 중재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에게 “내려간다는 말 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 4시간에 걸친 KBS 항의 방문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5월9일 새벽 청와대 앞에서 행진을 저지당한 한 유족이 경찰 앞에 무릎 꿇은 채 하소연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5월9일 새벽 청와대 앞에서 행진을 저지당한 한 유족이 경찰 앞에 무릎 꿇은 채 하소연하고 있다.

5월9일 새벽 3시10분 광화문광장 

유족들이 탄 버스가 경복궁역 근처에 이르자, 경찰차가 에스코트에 나섰다. 경찰차가 너무 느린 속도로 에스코트를 하자, 유족들은 “에스코트가 아니라 청와대 주변 경찰 병력을 증가시키려고 시간을 끌고 있다”라며 반발했다. 유족들은 차에서 내려 광화문광장에 모인 뒤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날 새벽 기온은 11℃, 유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꼭 껴안은 채 거리를 걸었다. 중간에 대열이 도로로 내려가자, 몇몇 유족이 인도로 걸어가자고 제안해 다시 인도로 올라가기도 했다.

새벽 3시53분, 유족들은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막혔다.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섰다. 유족들은 영정을 안고 차디찬 아스팔트에 그대로 앉았다. 엄마들이 경찰 앞으로 나섰다. “엄마들 눈 좀 봐달라”며 경찰에게 영정을 보여주면서 울며 사정했다. “우리 딸 죽은 거 말하고 싶어요. 너무 억울해요. 당신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또 다른 엄마는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까. 왜 우리 마음 몰라줍니까. 살려달라는 거 아닙니다.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길 좀 열어주세요 제발”이라며 울었다. “우린 무릎 꿇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자식 먼저 보낸 엄마들이에요”라며 영정을 품에 안고 엄마들은 경찰 앞에서 차례대로 무릎을 꿇었다. 마스크를 낀 경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

경찰 차벽에 막힌 유족들은 아이들이 남긴 스마트폰 동영상을 간이 스크린에 띄워 함께 보았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영상도 상영했다. 동영상 속 아이들은 “수직으로 기울었다” “롤러코스트 타는 것 같다” “진짜로 이만큼 기운 거야”라고 말했다. 죽음을 예감 못한 채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은 아스팔트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흐느꼈다. 가수가 꿈이었던 단원고 이보미 학생이 부른 노래 ‘거위의 꿈’도 틀었다. ‘스마트폰 좀 그만하라’며 다그쳤던 부모들이, 아이들이 남긴 그 스마트폰 속 사진과 동영상, 노래를 보고 들으며 아이들을 떠올렸다.

5월9일 오전 9시 청와대 앞

아스팔트에서 밤을 지새운 유족들은 대표단 3명을 뽑았다.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같은 시각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한 유가족의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 누군가 나가서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입장이 정리됐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순수한 유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민 대변인은 “유가족이 아닌 분들은 면담 대상이 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박준우 정무수석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을 만난 유족 대표는 남은 구조작업을 철저히 할 것과 늑장 구조에 대한 수사에 집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대표들은 거리 행진의 발단이 된 KBS 항의 방문 과정도 설명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박 수석 등은 ‘(김 국장 발언이) 사실이면 책임질 사안이지만 청와대가 사과나 인사 조치를 직접 지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의사 전달은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길환영 KBS 사장이 유족을 만날 뜻이 있다고 전했다. 유족 대표들은 “우린 직접 들은 적이 없으니 그런 의사가 있는지 길 사장에게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족들의 대통령 면담 요청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면담을 신청하겠다. 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시간을 주면 답변을 주겠다”라고 밝혔다.

KBS는 ‘조문 갔던 보도본부 간부들이 폭행·억류당했습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KBS는 보도자료에서 “일부 언론들은 거듭된 해명에도 보도국장이 실제로 그런 말을 한 것처럼 허위 기사를 유포하고 있어 법적 대응을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KBS 보도국은 “세월호 보도나 김 국장 발언에 문제가 없다”라는 강경 대응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2시 예정된 기자회견도 이 같은 내용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유족들은 청와대 앞 아스팔트 위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5월9일 아침을 맞았다.
ⓒ시사IN 조남진 유족들은 청와대 앞 아스팔트 위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5월9일 아침을 맞았다.

이날 오전 10시40분, 단원고 생존자 가족 30여 명이 안산에서 올라와 합류했다. 생존자 가족 대표를 맡은 장동원씨는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하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고 나서 처음 뵌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대통령 진심 사과 있어야 한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박수로 생존자 가족을 환영한 유족들은 “아이들이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존자 가족과 희생자 유족은 청와대 앞 아스팔트에서 손을 맞잡았다.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KBS 관계자는 “원래 김 국장은 유족 주장을 반박하려 했는데 기류가 갑자기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김 국장은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라며 내부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5월9일 오후 3시45분 청와대 앞, 길환영 사장의 공개 사과를 받은 유족들은 영정을 안고 안산행 버스에 올랐다. 유족 대책위 김병권 대표는 “진상 규명이나 실종자 수색이 부실하면 다시 청와대로 오겠다. 와서 대통령에게 잘못됐다고 분명히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영정 사진을 안고 버스에 오르는 부모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그렇게 20시간이 흘렀다. 안산에서 서울로 이어진, 눈물의 거리 행진은 잠시 ‘쉼표’를 찍었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시사IN> 페이스북 페이지 ‘속보 1~37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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