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들의 생일’
  • 김은지 기자
  • 호수 348
  • 승인 2014.05.14 08: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가 운다. 팽목항에서도, 빈소에서도 담담히 다른 이를 위로하던 그가 운다.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던 그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5월9일 0시 경기도 의왕시의 한 장례식장.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변성기 남학생들이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빈소에 울려 퍼졌다. 단원고 교복을 입은 임현진군의 영정 앞에 놓인 케이크에는 긴 초 하나와 짧은 초 여덟 개가 꽂혔다.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케이크 옆에는 피자와 미역국이 놓였다. 노래를 마친 임군의 친구 다섯 명은 제각각 한마디씩 했다. “현진아, 다음에 보면 축구 더 많이 하자” “나랑은 캐치볼 하자” “널 잊지 않을게, 너도 우리를 잊지 마.” 이들은 함께 준비해온 생일 선물을 영정 앞에 놓았다. 축구공, 미니 축구공, 야구공, 스포츠 양말, 수첩, 연필, 볼펜, 자동차 미니어처였다. 생전에 축구·야구 등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던 친구를 생각한 선물이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희생자 임현진군의 열여덟 번째 생일은, 얄궂게도 저승으로 떠나는 발인 날이기도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현진이는 지난 4월16일 세월호 침몰과 함께 실종되었다. <시사IN> 제345호 ‘얘들아 엄마 아빠 왔잖아. 대답 좀 해봐’라는 기사에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는 모습의 사진을 찍어 아빠에게 보냈던 수혁이(가명)가 바로 현진이다. 이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는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유족은 실명과 사진 보도를 허락했다.

아버지 임희민씨(44)는 외아들이자 장손인 현진이가 걱정이 되어 사고 전날인 4월15일부터 카카오톡(카톡)으로 대화를 자주했다. 현진이는 사고 전날 배 안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 8시20분 임씨에게 ‘야구를 보고 있다’며 선실 텔레비전 화면이 찍힌 카톡을 보냈다. 밤 11시7분에는  ‘아까 폭죽 터질 때, 사진 찍으려고 했는데 너무 바람이 세고 추워서 못 찍었어’라며 ‘낼 찍을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임씨는 ‘몇 시에 잠자? 현진아’라고 물었다. 현진이는 ‘좀 있다 잘 거 같아’라는 카톡에 이어 ‘제주도에 낼 11시 도착’이라고 보냈다. 임씨는 ‘알았어 잘 자’ ‘보고 싶다 우리 애기’를 잇달아 보냈다.

마지막 통화,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들렸다

사고 당일인 4월16일 아침 6시57분, 전날 아빠 카톡을 그제야 확인한 현진이는 보고 싶다는 문자에 ‘me too’라고 답했다. 임씨는 ‘일어났어?’라고 물었다. 오전 8시46분 임씨는 ‘아침 먹었어?’라고 카톡으로 물었고, 곧바로 현진이는 친구와 함께 갑판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임씨는 아침 8시50분 ‘사진 찍을 때 온몸이 다 나오게끔 찍어야지. 신발까지’라고 보내자, 현진이는 8시52분 친구와 찍은 사진을 다시 보냈다. 그땐 이미 배가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현진이는 출근하는 아빠가 걱정할까 봐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현진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이미숙씨(43)는 “아침 8시50분쯤에 현진이와 통화를 했다. 그때 현진이가 배가 기운다고 했다. 놀라서 구명조끼 챙겨 입고 지시를 잘 따르라고 했는데, 현진이는 차분하게 이미 구명조끼를 입었다면서 사고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다 전화가 끊겼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아버지 임희민씨가 교실에 남아 있던 아들의 책을 챙기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현진이네 반 학생 32명 중 3명만 구조되었다. 소지품 정리함이 놓인 책상이 이제 이 반의 마지막 실종자 자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오전 9시4분 아내한테 소식을 들은 아빠 임씨가 현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임씨는 “구명조끼부터 챙겨 입어라”고 똑같이 말했고, 현진이는 차분하게 “챙겨 입었다”라고 답했다. 아들과 통화하는 사이,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전화를 끊은 현진이는 9시15분 구명조끼를 입은 사진을 보내왔다. 배가 완전히 기울어 바닥에 등을 붙이고 벽에 발을 대고 선 모습이었다(왼쪽 사진).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지시에 따라 현진이는 친구들과 질서정연하게 추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시사IN> 제345호에 보도된 이 사진은 일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후지TV> 등에 ‘사고 직전 아빠에게 보낸 사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 현진이가 21일 만에 뭍으로 나왔다. 임희민·이미숙씨 부부는 4월16일부터 내내 진도 팽목항을 지켰다. 그동안 두 사람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속이 타들어갔다. 속만 아니라 얼굴과 손발도 까맣게 탔다. 임희민씨는 “처음에는 ‘제발 살아만 있어라’를 속으로 되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발 돌아와만 달라’로 주문이 바뀌었다. 추운 바다 말고 따뜻한 엄마·아빠 품으로 와달라고 말이다. 하나둘씩 주검이 수습되는데 현진이만 계속 못 찾고 있으니 이러다 시신조차 못 찾는 건 아닐까 초조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임군의 유골함에는 친구들이 선물한 야구공 등이 들어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임군의 가족과 지인들이 장례를 마치고 나서 임군의 영정을 들고 안산 합동분향소에 들러 조문하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1997년 5월9일 태어난 임현진군. 2014년 5월9일에 발인했다.

임씨는 사고 당일 오전 전원구조 소식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4월16일 오전 11시30분 ‘울! 아들 인천항에서 세월호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도중 짙은 안개 때문에 암초에 부딪혀 침몰사고!! 전원 구조됐다는데 아직 걱정이네요^^’라고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카스)에 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런 순간들이 그의 카스에 오롯이 담겨 있다. 4월25일 오전 2시15분 ‘오늘도 진도 팽목항에서 귀여운 아들을 새벽까지 기다렸는데 아들의 얼굴은 안 보입니다. 생존은 포기했고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입니다!! 토끼 같은 울새끼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애기♥♥♥’라고 남겼다. 이어 5월1일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사랑하는 현진이!! 어둠과 암흑 같은 차가운 배 속에 있지 말고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우리 새끼..♥♥♥’라고 올렸다.

5월6일 오전 8시45분에는 ‘울! 애기가 아직까지 배 속에서 안 나오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하고 헤어지는 게 싫은가 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애기 하루 빨리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가서 친구들하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애기! 엄마 아빠는 영원히 현진이를..♥♥♥’이라고 남겼다. 그날 오후 현진이가 수습되었다. 5월6일 오후 5시57분 4층 선수 중앙 오른쪽 세 번째 객실에서 발견되었다. 소지품 덕분에 신원 확인이 빨랐다. 소지품은 학생증, 도서관 회원증, 농협카드, 휴대전화, 그리고 현금 5만5350원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은 아들을 만났지만, 엄마 아빠는 아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빠 임씨는 참담한 아들의 모습에 시신안치소에 있던 의자를 집어던졌다. 온몸이 물에 퉁퉁 불을 때까지 당국은 뭘 했나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들이 보내온 마지막 사진.
용돈 모아 엄마에게 가스레인지를 선물했던 아들

현진이의 소지품 가운데 돈 5만5350원을 받아 들고, 임씨는 또다시 울음을 삼켰다. 임씨는 “수학여행 가기 전에 내가 용돈을 좀 준다고 했는데도, 현진이가 5만원만 받아간다고 했다. 많이 가져가봤자 빼앗길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다면서 딱 쓸 만큼만 받아갔는데, 한 푼도 안 쓴 그 돈이 고스란히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엄마가 기억하는 현진이도 그런 아이였다. 이미숙씨는 아들이 효자라는 말을 거듭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현진이는 용돈을 모았다. 부모가 용돈을 정기적으로 준 것도 아닌데 그걸 쓰지 않고 모았다. 엄마를 위해서 가스레인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다음번에는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전자레인지를 선물했다. 이씨는 “내성적이라 말은 별로 없었지만 살면서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아이였다”라고 말했다. 

현진이의 빈소를 찾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진이가 속한 2학년 8반은 전체 32명 중 3명만 구조되었기 때문이다. 현진이네 반은 숙소가 객실 오른편이라 배가 침몰하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피해가 컸다. 담임교사도 5월9일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5월9일 아침 7시, 현진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떠났다. 생일 케이크를 사가지고 와서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운 중학교 친구가 현진이의 영정을 들었고, 그 뒤를 임희민·이미숙 부부가 손을 부여잡고 따라갔다. 현진이를 따르던 어른들은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운구 차량은 안산의 현진이 집을 한 바퀴 돈 다음, 단원고등학교로 들어갔다.

노란 바탕에 ‘얼굴이 아름다운 만큼 행동도 아름다운 우리’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2학년 8반으로 현진이의 영정이 들어갔다. 4월15일 수학여행을 가는 당일까지 수업을 하다, 오후에 인천항으로 옮긴 터라 현진이의 책·가방 등 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칠판에는 영어 수업을 한 흔적인 듯 ‘P.18 wrong 틀린, 잘못된 profit 이익 raise 올리다’와 같은 문구가 쓰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 ‘살아서 꼭 돌아와요 기다릴게요’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 있든 난 항상 너희를 사랑한다’와 같이 사고 후 써놓은 글귀가 뒤섞여 있었다. 먼저 시신이 수습된 학생의 자리에는 흰 국화만 놓여 있었다. 현진이 자리에도 소지품이 치워지고 국화만 놓이면서, 이제 2학년 8반에 소지품이 놓인 책상은 딱 하나다.

아들의 짐을 챙겨 내려온 엄마·아빠는 학교 운동장에서 간이 제사를 지냈다. 청주 대신 음료수가 제사상에 올랐다. 현진이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번갈아가며 손자 이름을 불렀다. “현진아, 현진아.” “아이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학교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빠져나온 현진이의 운구는 수원화장장으로 향했다.

사고 당일부터 임희민씨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들. 맨 왼쪽에 있는 아들 임현진군의 사진이 현재 임희민씨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이다.

아침 9시15분쯤 도착한 수원화장장에는 이미 운구 3구가 대기하고 있었다. 현진이 차례는 네 번째였다. 두 번째 차례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여학생이었다. 현진이 다음에 연이어 들어온 운구 2구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남학생이었다. 운구 차량에 뒤따른 리무진 버스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내렸다. ‘○○야, 사랑한다. ○○와 친구들을 빨리 구조해주세요.’

10시30분쯤 화장이 시작되자, 임희민씨는 처음으로 눈가를 훔쳤다. 팽목항에서도, 빈소를 지킨 2박3일 내내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 담담히 다른 사람을 위로했던 그였다. 2시간 동안 화장을 한 다음, 유골함에 담긴 현진이는 안산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100명이 넘는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대부분 1997년생이었다. 사망 날짜는 2014년 4월16일부터 5월6일까지, 발견된 날로 적혀 있었다. ‘○○이가 엄마 아빠 아들인 게 자랑스럽다. 사랑해’ ‘누나는 내가 아는 가장 웃기고 예쁜 사람이야’와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현진이는 왼쪽 끝부분에 자리 잡았다. 친구들이 생일상에 올려두었던 축구공과 야구공 등이 현진이의 유골함에 함께 들어갔다. 한 친구는 “현진이 유골함에 넣으려고 일부러 작은 사이즈의 축구공도 사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내일이나 모레 다시 와서, 현진이 유골함에 우리 사진을 붙여놓을 거다”라고 말했다. 임희민·이미숙씨는 친구들 등만 그저 두드렸다.  

외동아들을 잃은 두 사람은 23일 만에 집에 들어갔다. 현진이는 없고, 현진이가 엄마를 위해 사준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