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풀고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꿈이 있는 공부
①김진애-‘공부 생태계’를 꿈꾸는 공부 이야기
②황선준-스칸디 부모가 말하는 북유럽 학생들의 공부 이야기
③강영안-철학자가 말하는 공부 이야기
④황농문-공부하는 힘, ‘몰입’에서 찾다! 
⑤정기원-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초등편 
⑥강영희-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중등편  
⑦송인수-꿈이 있는 공부와 진로:오해와 진실 


몰입에 이어 이번에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법이다. 공부의 목적과 의미, 본질을 묻기 위해 기획된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 강좌는 중반 들어 구체적인 공부 방법론을 차례로 제시하는 중이다. 4월24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실에서 열린 다섯 번째 강좌의 주인공은 홈스쿨링으로 세 자녀를 키운 전직 수학 교사 강영희씨. 공부에 앞서 부모와 아이가 마음을 나눌 것을 강조한 이날의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시사IN 이명익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강영희씨(위)는 6년 전, 세 딸을 홈스쿨링으로 교육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 속에 이 자리에 섰다. 지금 고통을 겪고 있을 피해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자기 자식 예뻐하기도 죄스럽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온 국민이 힘든 시기에 공부 얘길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에는 미국에 사는 페이스북 친구가 자기 체험을 글로 올렸다. 알고 보니 삼풍백화점 사고 때 그분이 지하 슈퍼마켓에 있었다 한다. 건물이 무너진다는 소리에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아기를 안고 피신하던 한 엄마가 혼절할 듯 몸을 휘청대기에 뺨을 때려가면서 끌고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그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을 뚫고 나오면서 그분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혼자 저 길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는 6년 전부터 홈스쿨링으로 세 딸을 키우고 있다. 평일 낮,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혀를 차곤 했다. “저 엄마는 왜 애들을 학교도 안 보내고 난리야” 하면서. 학교만 보내면 아이들이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고들 있는 거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완전하게 책임져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줄 곳은 없다. 학교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무도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는 이 현실에서 우리가 방향을 정해 다음 세대에 전해 줘야 한다"라는 친구의 글이 오늘 강의할 힘을 얻게 해주었다. 지난 6년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같은 단체를 지켜보며 나는 될 것 같지 않은 일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시는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 오늘 강의도 부모인 우리가 방향을 정하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부모인 우리가 이렇게 모인 흐름을 통해 내 자녀만이 아니라 '공부 감옥'에 갇힌 모든 아이들을 품고 함께 방향을 찾아가도록 하자.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기억하실 것이다. 여기서 애벌레들은 거대한 기둥을 타고 위로, 위로 기어 올라간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 올라가면 맨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앞서가던 애벌레들을 짓밟아가면서 위로 향하는 것이다. 여기에 의문을 품고 행렬을 벗어난 애벌레만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지금 우리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이런 얘기도 하시더라. ‘배 안의 아이들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을 공부 감옥에 가둬놓은 나머지 이렇게 벌을 받게 된 건 아닐까.’ 오늘은 이렇게 가두고 억압하는 공부 말고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는 공부, 아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돕는 공부 얘기를 해보려 한다.

먼저 내가 왜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리겠다. 나는 21년간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중간에 교육대학원을 다니며 상담을 공부하기도 했다. 좋은교사운동이라는 단체에서 교사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내 아이’보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바깥으로 돌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 기초 학습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여기저기 구멍투성이였다. ‘이를 어쩌나’ 아찔했다.

며칠 밤 고심한 결과 일을 접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마 여러분도 비슷할 것이다. 사교육의 폐해나 사회적 해결책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면 ‘다 맞는 얘기구나’ 싶다가도 막상 내 아이 공부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갑갑해지는 경험, 누구나 해보셨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내 경험으로 미뤄보자면, 아이가 당장 필요로 할 때는 부모가 함께 달려줘야 한다. 나는 한때 교사였지만, 학교에 자녀를 전적으로 믿고 맡겨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 학교는 양육에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기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 양육을 100%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교육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그런 세상이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당장 내 아이의 공부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아이의 공부는 아이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에 아이의 삶을 다루기 위해 부모인 우리가 아이의 공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혹시 “우리 아이는 다 컸어요. 너무 늦었어요”라고 얘기하고 싶으신가? 안심하시라.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적기다. 나의 경우 큰딸이 열네 살이 되어서야 영어 기초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유아들이 쓰는 오디오북을 사다 아이한테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에 비하면 여러분은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시사IN 자료
자녀를 학교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 학교는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기관 중 하나일 뿐이다.

공부가 아닌 아이의 특성을 살펴야

다만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의 마음을 잘 다뤄야 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교사를 그만둔 뒤 평범한 엄마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이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존재로 대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엄마들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 본래 완벽주의적인 부모나 교사일수록 아이를 보면 고쳐주고 싶은 부분이 많다. 잘 고쳐지지 않으면 화도 난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화를 냈던 아이의 특성이 바로 아이의 강점이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큰딸과 함께 독서지도사 강의를 들은 일이 있다. 그때 주어진 숙제가 독후감을 써오라는 거였는데, 나는 30분 만에 써내려간 독후감을 아이는 사흘 내내 들고 낑낑거렸다. 큰딸은 매사가 그렇게 느렸고, 난 그게 불만이었다. 그런데 다음 시간 독서지도사가 어른·아이 통틀어 가장 잘 쓴 독후감으로 큰딸 것을 꼽았다. 느리게 사고하는 대신 아이에게는 풍부한 독창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특성을 보지 않고 공부만 보려 들 때 그 입에서 독이 묻어나온다. 몇 년 전 엄마를 살해한 채 반년을 함께 산 고교생을 다들 기억하실 거다. 그 엄마가 아이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대신 침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씩 생각한다. 엄마가 자기 기준을 강요하는 대신 아이를 내버려두면 아이는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간다.

한 가지 더. 부모라면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상담교사를 할 때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테스트를 한 일이 있는데,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외향적인 아이들은 오히려 문제가 없는 편이다. 그때그때 분노를 표출하니까. 그런데 겉보기에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 중 우울증 수치가 높게 나온 경우가 많았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관심 있게 지켜보고 속마음을 읽어줄 필요가 있다. 평소 얌전하던 아이가 ‘나 좀 내버려두라’며 반항을 시작하면 부모들은 ‘드디어 사춘기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이 오히려 ‘제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좀 더 가까이 다가와주세요’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아이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는 부모만이 알아챌 수 있다. 제3자는 알 수 없다. 정말 혼자 있기를 원하는 건지, 다가와 달라는 건지 부모가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이의 속마음을 읽었다면 아이에게 더 깊이 다가가자.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공부할 때면 좋아하는 쥐포를 방에 밀어넣어 주시곤 했다. 재수하다 짜증을 심하게 낸 어느 날, 어머니가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지? 이것 먹고 힘내라” 하면서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도 잊을 수 없다. 나도 딸들이 힘들어할 때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사주며 위로를 건넨다. 그러면 아이들이 “엄마, 신기해. 애정결핍이 사라졌어”라며 행복해한다.

모든 공부의 기본은 ‘독서’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 얘기를 해보려 한다. 말씀드린 대로 홈스쿨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들도 “왜 이제야 우리한테 이렇게 중요한 걸 알려주는 거야? 우린 잘못 태어났나 봐. 강남에 사는 외숙모한테 태어날걸 그랬어”라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기본부터 다시 밟아가자고 생각했다. 영어의 경우 이남수씨의 ‘엄마표 영어’를 모델 삼아 유아용 오디오북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뜻밖에 유치하다고 하지 않고 이를 재미있어했다. 엄마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던 듯하다. 특히 열네 살이었던 큰딸의 경우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책을 좋아했는데, 이런 책들을 매일 반복해서 들려줬더니 어느 순간 버터 발린 원어민 발음으로 이를 따라 읽기 시작하더라.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발음이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수학도 기초부터 다졌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재 선택이나 문제풀이 때문에 힘들어하면 부모들이 서로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일종의 무료 학습 공동체를 체험한 셈이다. 그중 중1짜리 남자아이의 수학 공부를 도와준 일이 있다. 이 아이의 경우 수학 실력이 초등 4학년 수준이었다. 그래서 초등 과정부터 복습을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사고가 성숙한 단계이다 보니 한 달 만에 초등 4학년 과정을 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국·영·수를 떠나 모든 공부의 기본은 독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내 경우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던 기간에도 책은 열심히 사다 또는 빌려다 거실 책꽂이에 꽂아놨는데, 그게 훗날 도움이 되었다. 책이 놓여 있으면 언젠가는 아이들이 그것을 읽게 되더라. 다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만 읽게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의도적인 독서 훈련도 필요하다. 책 한 권을 한 문단으로 요약하기, 책 읽고 문제 내기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학습 단계를 다지고 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주도 학습으로 달려가게 된다. 자전거를 배울 때 그렇지 않나. “아빠가 뒤에서 잡고 있으니 페달만 열심히 밟아” 하면 아이는 어느 순간 아빠가 손을 놓아도 이를 모르고 자전거를 타게 된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가 기본을 다질 때까지 부모가 손을 꽉 잡고 함께 달려주면 아이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부모 손을 놓고 제 길을 찾아간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역할 또한 자연스럽게 관리자에서 지원자로 변모한다.

다만 공부 전략을 세울 때는 아이들의 성격 유형과 적성을 고려해야 한다. 큰딸의 경우 나와 달리 100% 문과 적성이고 성격 유형상 감정형으로 분류된다. 이런 아이들은 절대 다그치면 안 된다. 인정하고, 공감하고, 지지·격려하는 것만이 아이를 돕는 길이다. 반면 성취형인 아이들은 정확한 현실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막내딸이 그런 경우인데, 이 아이는 홈스쿨링을 4년 하다 스스로 원해 학교로 되돌아갔다. 성취형 아이들은 남들과 경쟁하면서 오히려 성취감을 느낀다. 둘째딸은 문과와 이과 적성을 고루 갖춘 평화주의자 유형이다. 이런 아이들은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아도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의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격려해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진로를 찾아간다. 올해 대학에 진학한 큰딸은 언젠가 국제홈스쿨링협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경영학을 공부 중이다. 학교로 돌아간 막내는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며 주말마다 미술 실기수업을 받는다.

강의를 마치며 무엇보다 “맘(mom)의 맘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부모가 소신을 갖고 있어야 아이가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집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지 말고 오직 내 아이만 바라볼 일이다. 아이들은 뭔가를 준비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나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임을 우리 모두 깨달았으면 좋겠다.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기자명 강영희 (전 중학교 수학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