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에 의혹·비판 거세… “해경도 수사하겠다”
  • 정희상 전문기자
  • 호수 346
  • 승인 2014.05.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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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이 최악의 참사로 치닫게 된 과정에 해경의 부실 대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갈수록 거세다. 구조 과정에서도 사고 여객선 업체인 청해진해운과 계약한 민간 구난업체만 투입해 논란이다.
“해경은 인명 구조에 전념하고, 사고 전반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담당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부)에서 1차 수사를 해경이 맡은 것을 두고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때 수사 검사였던 김희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승객 총 362명 중 사망자 292명을 낸 군산 위도 앞바다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 때 해경은 초반부터 민간 어선들과 유기적으로 협조해 신속한 인명구조와 시신 인양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번처럼 해경의 직무유기나 늑장 대응 시비는 없었고, 민간 잠수부와의 마찰 따위 잡음도 생기지 않았다.

이와 달리 이번 세월호 참사가 최악으로 치닫는 과정에는, 해경의 부실 대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책임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해경은 일찌감치 이번 사고의 수사팀에 합류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목포 서해 해경청에 꾸려진 합수부 수사팀의 면면을 보면, 검찰 측 인원은 18명인데 해경 수사관은 무려 50여 명이 참여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진도 VTS(위)는 참사 초기 탈출 명령을 내릴지 세월호와 서로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허비했다.

해경 수사관이 대거 포함된 합수부의 사고 원인 조사 대상에는 해경이 책임져야 할, 출항 전 세월호의 안전관리 문제도 해당된다. 현재 국내 선박 운항 과정에서 안전관리는 해경이 여객선을, 해수부가 화물선을 각각 나눠 맡고 있다. 특히 선박 운항 과정의 안전관리와 출항 전 점검 보고 등은 ‘해운법’에 따라 해경 소관이다. 세월호의 화물 과적과 승객 수 관리 업무가 핵심 조사대상이다.

침몰한 세월호는 인천항을 떠나기 전 허용 화물 용량 1070t의 갑절 이상인 최소 2000t의 화물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월호에 실린 차량은 당초 신고 대수보다 30여 대가 많은 것으로 CCTV에 찍혔다. 시신 인양 과정에서는 당초 탑승자 명단에 없던 사망자가 나와서 최종 승선자가 몇 명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등 출항 전 점검 보고서 작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해경은 조직과 인력 문제로 이런 관리업무를 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위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서 세월호 출항 전에 정확한 승객 수와 화물 적재량, 차량 대수, 선박 평형수 상태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데 대한 최종 책임은 해경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해경이 되레 수탁 기관인 해운조합 운항관리실을 조사하겠다고 하니 수사는 기초 단계부터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전점검 부실과 함께,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해경의 가장 큰 잘못은 ‘안일한 상황 인식과 부실한 초동 대응’으로 압축된다. 세월호가 사고 구역인 해경 산하 진도연안교통관제센터(VTS) 구역으로 접어든 시각은 4월16일 오전 7시7분이었다. 진도 VTS는 이 시각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오전 9시7분까지 120분 동안 세월호와 단 한 차례도 교신하지 않았다. 대신 해경은 “오전 8시58분 세월호에서 ‘침수가 시작됐다’며 목포 해경에 첫 구조 요청을 해왔다”라고 발표했다.

신고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 물으며 6분 허비

그러나 목포 해경과 세월호가 최초로 통신한 시각은 해경이 밝힌 시각보다 6분 앞선 오전 8시52분으로 드러났다. 당시 승선한 단원고 2학년 남학생이 119에 “배가 침몰한다”라고 신고했고, 긴급 상황을 파악한 119 상황실은 해경에 연결해 3자 통화가 시작됐다. 해경은 학생에게 “정확한 위도와 경도가 어디냐”라고 물었다. 이를 답답해한 119 측이 “신고자는 선원이 아니라 탑승객”이라고 지적했지만 해경은 계속 배 이름과 상선인지 어선인지 여부 등을 묻느라 6분을 더 허비했다. 해경상황실에서는 관제센터에 배 이름만 대면 위치를 금방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해경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4월16일 해경의 구조 장면. 선박 내부로 진입하는 대신 배 외부에 있는 승객 구조에 매달렸다.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지역은 해경 VTS가 관할하는데 이곳에서는 해역 안에 들어온 선박을 실시간 추적해 다른 배와의 충돌이나 좌초 등을 방지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전국 17개 VTS 중 15개는 해수부가 맡고 있지만 진도와 여수 등 2개는 해경 관할이다. 해난 사고가 자주 발생할 수 있는 다도해 지역의 특성상 두 곳은 수사권을 가진 해경의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해난 사고가 나면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장 등 선박 운항 책임자들에 대해 해경이 강제력을 발동할 권한도 크게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전 9시7분 세월호에서 진도 VTS에도 침몰 소식을 알린 후 양쪽에는 31분간 11차례 교신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교신 내용을 보면 세월호와 진도 VTS는 위급 상황에서 승객에게 탈출 명령을 내릴지에 대해 서로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허비한 것이 고작이었다. 오전 9시24분 세월호에서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라고 묻자 해경은 “우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이 최종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떠넘겼다.

현장에 도착한 해경의 대응도 혼돈과 오판의 연속이었다. 해경에 따르면 사고가 난 4월16일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정은 목포해경 소속 123정(100t급)이다. 사고 해역에서 30㎞ 떨어진 해상에 있던 해경 123정은 이날 오전 8시58분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30여 분 만인 오전 9시30분에 좌측으로 50° 기울며 전복되던 세월호에 도착했다. 해경정을 조타실 밑에 대자 선원들은 전용 통로를 이용해 탈출하기 시작했다. “선실이 안전하니 그대로 있으라”고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내보낸 지 10분 뒤, 선원 10명은 물에 뛰어들지 않고 해경정에 구조됐다.

뒤이어 현장에 속속 도착한 민간 어선들은 구명복을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을 구조했다. 이때 해경 123정은 선박 내부로 진입하는 대신 어선과 함께 바다에 뛰어든 승객을 끌어올리는 데 매달렸다. 이 시각이 오전 9시50분, 승객들은 여전히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며 배 안에 갇혀 있었다. 일부 승객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절박하게 외쳐대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대해 진도군 조도면 어촌계의 한 관계자는 “해경이 세월호에 들어가 적극 구조하는 게 아니라 어선 수준의 구조를 했다”라고 말했다. 초동에 제 발로 바다에 뛰어든 생존자의 구조는 민간 어선들에 맡기고 해경은 수면 위에 있던 조타실 인근을 적극 수색하거나 수면 가까이 기운 객실 유리창을 깼더라면 훨씬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검·경 합수부에는 해경 수사관 5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4월18일 기자회견에 나선 이성윤 수사본부장(왼쪽)과 이평연 부본부장.

이런 지적에 대해 해경은 “123정에는 특공대원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이 타서 유리를 깰 도구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서해 해경청 소속 특공대는 목포항에서 대기하다 10시10분쯤 출발해 11시20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배가 완전히 전복된 뒤 도착해 조류가 너무 거세다는 이유로 철수하고 말았다. 

게다가 사고 초반 해경은 선박 내부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선원들을 선내에 갇힌 승객 구조에 적극 활용하지 않고 육지 병원으로 이송하는 오판을 저질렀다. 특히 이준석 선장은 사고 당일 오전 구조된 뒤 신분을 숨기고 진도한국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5시40분쯤에야 해경의 호출을 받고 사고 현장에 해경선을 타고 나갔으나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뒤였다.

민·관·군 협력해 잠수사 수백명 투입한다더니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뒤 300여 명에 이르는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도 해경의 대응은 부실투성이였다. 사고 초반부터 해경은 함정 수백 척과 헬기 수십 대, 500~750명에 이르는 민·관·군 잠수사들이 협력해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기간 투입된 민간 잠수사는 20여 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물때에 따라 2~3명씩 교대로 수중 수색에 나선 것이 전부였다. 그 결과 해경은 사고 초기 제 발로 걸어나온 승객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다. 또 사고 초반 거센 조류를 이유로 선내 진입을 차일피일 미루며 선수가 가라앉아도 팔짱만 끼고 있다가, 민간 잠수부가 가라앉은 세월호에 가이드라인 5개를 설치한 뒤에야 선내 수색을 시작했다.

수색 과정에서는 가족의 요청으로 현장에 접근한 민간 잠수부에 대한 지나친 통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해경이 사고 초기부터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인양 계약을 맺은 민간 구난업체 ‘언딘 인더스트리’ 소속 잠수사들만 투입시키고도 ‘민·관·군 협력’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청해진해운은 수사 대상인데도 말이다.

결국 사상 최악의 해난 참사라 할 세월호 사고 뒤에는 해경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해경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세월호 수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4월25일에야 “해경도 수사하겠다”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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