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풀고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꿈이 있는 공부
①김진애-‘공부 생태계’를 꿈꾸는 공부 이야기
②황선준-스칸디 부모가 말하는 북유럽 학생들의 공부 이야기
③강영안-철학자가 말하는 공부 이야기
④황농문-공부하는 힘, ‘몰입’에서 찾다! 
⑤정기원-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초등편 
⑥강영희-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중등편  
⑦송인수-꿈이 있는 공부와 진로:오해와 진실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 연속 강좌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전의 세 강좌가 공부의 목적과 의미, 본질에 대해 물었다면 앞으로 중계할 세 강좌는 구체적인 공부 방법론을 다룬다. ‘공부의 가치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잘 공부하는 법은 무엇일까’가 궁금한 이라면 귀가 솔깃할 주제이다. 4월17일 강단에 선 주인공은 〈공부하는 힘〉 저자인 황농문 교수. 일명 ‘몰입 전문가’로 불리는 그의 강좌를 지상중계한다. 


내 경험부터 얘기하겠다. 고등학생 즈음부터 고민이 많았다. 밤마다 후회하면서 잤다. 내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싶어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감정이 후회인 것 같다. 왜?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오늘은 망쳤어도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잘못된 하루를 살면 내일이 있고, 잘못된 한 해를 살면 내년이 있지만, 잘못된 인생을 살면 아무것도 없겠구나.’ 소름이 끼쳤다. 이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IN 윤무영
황농문 교수(오른쪽)는 몰입을 알게 된 후 이전에 노력해도 안 되던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은 물론 인생관 자체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인생의 화두로 삼았다. 그러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전까지 나는 공부가 너무 싫었다. ‘4당5락(4시간 자면 입시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의 속어)’이란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던지라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공부하려니 늘 잠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러다 애 잡겠다’고 어머니가 만류하는 바람에 수면 시간을 6~7시간으로 늘리고 나니 공부가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대학원 시절까지는 밤 11시까지 내 페이스대로 공부하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계속했는데, 나름 만족스러웠다. ‘난 놀지 않고 최선을 다했어. 이보다 잘할 순 없어’ 하면서 스스로 흡족해했다.

그런데 박사후 연구원(Post Doctor)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에 가보니 뭔가 다른 거다. 그때 라스라는 미국인 동료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말 그대로 밥 먹고 연구하는 것밖에 몰랐다. 아침에 “굿모닝” 인사를 건네면 “아, 그런데 어제 네가 준 데이터 말이야”라는 말부터 꺼내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이 친구를 속으로 비웃었다.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지’ 하면서. 그런데 1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 친구 얼굴이 한결같이 밝은 거다. 지겹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진짜 프로페셔널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프로 바둑기사는 바둑 이외 다른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프로 골퍼는 골프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렇다면 ‘연구원 또한 밥 먹고 연구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구나, 알고 보니 라스가 프로이고 나는 아마추어였던 거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결심했다. 앞으로 라스처럼 연구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문제는 방법이었다. 밤 11시까지 연구실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지적인 잠재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잠재력의 5%도 발휘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두뇌를 풀가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걸어가고 밥 먹고 운전하고 하는 모든 순간,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생각이 전혀 없이 오직 한 가지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꽉 채워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스님들이 말하는 화두선(話頭禪)의 경지가 이런 건가 보다 싶었다.

이런 몰입 상태가 되면 내 머리가 마치 슈퍼뇌가 된 것 같다. 기적 같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기분도 무척 좋아진다. 가치관도 바뀐다. 나는 몰입을 경험하면서 삶의 방정식이랄까, 행복의 방정식을 푼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헛살았구나,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터 팬〉을 쓴 제임스 배리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의 비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공부든 일이든 마찬가지다. 즐겁게 하다 보면 누릴 수 있는 행복 또한 무한대로 커진다.

재미있으면 몰입하게 된다. 스포츠나 전자오락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한다. 곧 몰입하면 재미를 느끼기 쉬워지는 것이다. 이건 뇌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뇌는 잘 속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게임을 하고 있으면 뇌는 이를 목숨 걸고 전투할 때와 같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짜릿한 흥분과 재미를 느낀다. 목숨 건 전투에서 어떻게 재미를 느끼느냐고?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분이 이런 얘길 하더라. 죽지만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 전쟁이라고. 강렬한 자극을 계속해서 받다 보면 다른 삶은 시시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해야 할 일에 ‘의도적 몰입’을 해보라. 의도적 몰입을 위해서는 과도한 노력 내지 비정상적 노력이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한 번씩 나가 바람을 쐬고 온다? 이런 식이어서는 뇌가 속지 않는다. 의도적 몰입을 하는 동안은 화장실 갈 때나 버스 탈 때나 끊임없이 한 가지 생각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시사IN 윤무영
사람은 게임처럼 재미있는 것에 쉽게 몰입하는데, 뇌과학에 따르면 그 역도 성립한다. 몰입하면 재미를 느끼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의도적 몰입 방법 열 가지

몰입의 어마어마한 힘을 알게 된 뒤 이걸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도 냈다. 무엇보다 몰입이 창의성을 깜짝 놀랄 수준으로 높여준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게 입시나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이더라(웃음). 먼저 이런 학생들을 위해 그간 터득한 의도적 몰입 방법 열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째,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하루 6~7시간은 자야 뇌가 지치지 않는다. 둘째, 깨어 있는 시간에는 1초도 쉬지 않고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수험생의 경우 한 과목에 몰입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 시간 여유를 둬야 한다. 넷째, 집중하되 ‘이완된 집중’이 필요하다. 사람은 긴장할 때만 집중하는 게 아니다. 기도할 때나 명상할 때도 집중한다. 이것이 바로 이완된 집중인데, 이런 식의 집중은 시간이 흘러도 지치지 않는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다섯째, 진도를 천천히 나가더라도 내용은 완벽히 소화해야 한다. 여섯째, 잘 모르는 문제는 일단 주관식화해서 끝까지 답을 찾으려 노력하라. 객관식은 머리를 발달시키지 않는다. 일곱째,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라. 결과에 집착하면 몰입이 안 된다. 여덟째, 선택과 집중을 해라. 잘 아는 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실력을 올리려면 내가 부족한 지점을 빨리,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가지와 이파리에 집착하기보다 줄기를 먼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홉째,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체력이 뒷받침되면 몰입 강도 또한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열 번째, 구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시험을 앞두고 A학생은 ‘난 이번 시험에 최선을 다할 거야’ 생각하고, B학생은 ‘난 시험 때문이 아니라도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치자. 당연히 후자의 구동력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구동력은 정신적 성숙에서 비롯된다. 정신적 성숙이란 게 뭘까. 한마디로 철이 든다는 거다. 이것이 나중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고통이다. 고통을 느끼면 뇌가 활발히 돌아가면서 강해진다. 이것이 고통의 순기능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일이다.

정신적 성숙을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괴로움이다. 너무 괴로우니 잊고 지내려 든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의식하는 삶을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가진 돈으로 해변에서 편히 놀다 죽는 대신 절치부심해 다시금 도전하는 삶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잡스는 열일곱 살 때부터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죽음에 대한 이런 통찰이 쾌락 대신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만든 것이다.

가치관이 변하면 삶이 변한다. 게임 중독에 빠진 변리사가 있었다. 변리사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를 통해 몰입을 알게 된 그는 몰입에 익숙해지니 실적 같은 데 연연하지 않고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이 매우 즐거워지더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연봉은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지금도 그의 동료들은 회식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그는 이런 데 전혀 관심이 없다. 삶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도전을 몰입을 통해 유익한 경험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몰입의 진짜 용도, 창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말 앞에 절절맨다. 창의성 덕분에 지금의 문명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렇다. 그런데 몰입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 나 또한 몰입을 통해 과거에는 평생을 노력해도 안 되던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경험을 했다. 세라믹에서 비정상 성장 입자를 찾아내고, 저압 환경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일 등이 그것이다. 1년 반 몰입한 끝에 이런 기적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데, 그때는 정말이지 〈벤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겠더라.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웃음)

몰입은 산업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한 제조업체는 완제품의 불량률이 너무 높아 걱정하다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들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니까. 그렇지만 몰입해서 문제를 들여다보니 사흘쯤 만에 해결책이 보였다. 내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렇다. 첫째, 문제의 핵심을 찾는다. 둘째, 핵심을 찾으면 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나쁜 머리로 복잡한 문제를 풀려면 문제의 핵심을 찾고 이를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돋보기를 통과한 햇빛이 검은 종이를 태우듯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인류 역사상 위대한 창의적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오직 그 생각만 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아흔아홉 번은 틀리고, 백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루이스 이그내로도 상을 받게 된 비결을 묻자 “과학은 9시 출근, 4시 퇴근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매일 24시간 ‘왜, 어떻게’가 머리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몰입을 하게 되면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 능력(Problem Solving by Thinking)이 키워진다. 학습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과 달리 사고에 의한 문제해결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게끔 해준다. 낯선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끔 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몰입을 훈련할 것인가. 적절한 지적 도전이 필요하다. 지적 재능은 후천적인 것이다. 그런 만큼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으로 학습해야 한다. 10~20분이면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부터 도전해 몰입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면 된다. 미지의 문제에 도전하는 일을 계속할 때 우리 머리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온 힘을 다해 몰입하는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생존과 행복, 자아실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라(Work hard)’ ‘열심히 공부하라(Study hard)’에서 ‘열심히 생각하라(Think hard)’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기자명 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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