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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15시간이 지난 4월16일 밤 12시. 해경과 해군 등이 실종자 구조를 위해 세월호에 접근하고 있다.

4월16일 아침, 승객 476명을 태운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4월18일 밤 10시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구조자는 174명. 사망 및 실종자가 302명이다. 이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이날까지 확인된 학생 구조자는 7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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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 오전 9시께. 한 잠수사가 세월호 진입로 개척을 위해 잠수했다가 복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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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새벽, 실종자 가족들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밤새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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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인양할 크레인이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리더의 오판

1. 4월16일 오전 8시56분. 세월호
오전 8시56분, 세월호 이준석 선장으로부터 배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를 받은 해경은 승객을 대피시키고 구명보트를 내리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선장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당시 선내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현재 위치에서 이동하지 마라” 하는 안내방송이 적어도 9시28분까지 계속된다. 탈출 안내방송은 10시15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침수 상태가 심각해 배가 기울어질 기미가 보이면 승객을 갑판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 선실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고, 갑판에는 구명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 긴급 상황에서 세월호 선장은 배를 장악하지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승객을 선내에 대기하도록 한 안내방송은 피해 규모를 키운 결정적 오판으로 꼽힌다.

2. 4월16일 오전 10시. 청와대
청와대는 오전 9시31분에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최초로 보고받았다. 정부와 청와대의 긴장감은 크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가 발표하는 구조자 숫자는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대책본부 발표만 보면 큰 피해 없이 수습될 기세였다.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다. 잘못된 보고를 근거로 내놓은 잘못된 메시지였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청와대가 상황을 전혀 장악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엉뚱한 자신감까지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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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단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기도를 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시스템 붕괴

1. 4월16일 오전 9~10시. 세월호

국제관례로 보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순서는 여성·노약자 승객, 남성 승객, 선원, 선장 순이다. ‘선장의 재선 의무’를 규정한 선원법 제10조는 모든 승객이 내릴 때까지 선장은 배를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배 위에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선원과 선장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오랜 기간 굳어진 시스템이다.

세월호에서는 이 오래된 시스템이 한번에 무너졌다.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은 “선실 대기” 안내방송이 나오는 동안 탈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심각해진 오전 10시께에는 승무원 일부가 이미 해경 보트를 타고 탈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단원고 학생들이 배가 기우는 와중에도 안내방송을 따라 선내에서 대기하던 그때,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핵심 승무원들은 이미 배를 떠난 뒤였다.
4월18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승무원은 29명 중 20명이 생존자로 확인됐다. 반면 단원고 학생은 탑승자 325명 중 75명만이 생존자로 확인됐다.

2. 4월16~18일. 대책본부
세월호가 가라앉는 동안,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16일 오전 11시께부터 경기도교육청은 출입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문자를 돌렸다. 해경이 확인해준 사안이라고도 했다.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낙관론이 감돌았다.
오후 2시, 대책본부는 현재 구조 인원이 368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전원구조’설에서 한발 후퇴한 내용이었다. 이 시점까지 실종자는 107명. 하지만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여전히 전반적인 기류는 낙관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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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저녁 단원고 실종 학생들의 학부모를 포함한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분위기는 곧 반전된다. 오후 3시30분, 대책본부는 중복 집계 때문에 구조자 숫자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오후 4시30분에 대책본부가 작성한 발표문을 보면, 구조자는 164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300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숫자는 저녁 동안 몇 차례 더 흔들리더니 179명 구조로 발표되었다. 이마저도 완벽한 명단은 아니었다. 구조자 명단에 있는 문 아무개양의 아버지는 “아이를 찾으러 진도의 하수구까지 뒤졌는데 없었다”라며 딸을 다시 실종자로 분류해 찾아달라고 요구했다(4월18일 밤, 해경은 승선자 476명, 구조자 174명이라고 정정 발표했다).

오후 5시, 뜻밖의 상황 전개를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책본부를 직접 찾는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어떻게 이렇게 구조 인원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나”라고 질책했다. 대통령은 또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실종자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혔다는 기본 정보를 대통령이 놓치고 있었다. 위기관리 시스템 붕괴는 그렇게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밤 10시20분, 정홍원 국무총리는 관계기관 장관회의를 연다. 주제는 부처별 역할 분담이었다.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정확한 역할 분담이 이때 정리됐다. 신고 접수 13시간도 더 지난 시간이었다.
혼선은 반복됐다. 4월18일, 대책본부와 해경은 “선체 진입에 성공했다” “사실무근이다”를 교대로 언론에 알리며 때 아닌 진실 공방을 벌였다. 결국 대책본부는 오후 3시께 ‘선체 진입 성공’ 발표를 ‘실패’로 정정했다. 거듭 노출된 무능에 실종자 가족과 여론은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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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뒤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체육관을 나서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으로 치달았다. 4월18일, 실종자 가족들은 대국민 호소문을 냈다. “책임을 가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상황실도 없었습니다. …어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인원은 200명도 안 됐고, 헬기는 단 2대. 배는 군함 2척. 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작업을 했습니다. 재난본부에서는 인원 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으로 우리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현장의 헌신

시스템이 사라진 곳에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선장과 기관사 등 핵심 책임자들이 탈출한 세월호에는, 정작 최종 책임자와는 거리가 있는 안내 담당 승무원과 사무 담당 승무원이 마지막까지 배를 지켰다.
승객 안내 담당 승무원 박지영씨는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구조활동을 했다. 선장의 지시 없이 독단으로 탈출 안내방송을 한 것도 그녀였다. 박지영씨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 학생들은 급박한 순간 그녀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이 다 나가고 나면 따라 나가겠다.”

박씨는 이번 참사에서 첫 번째로 확인된 사망자였다. 사무장 양대홍씨는 오전 10시쯤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부인에게 “통장에 있는 돈을 아이 등록금으로 사용해라. 길게 통화하지 못한다.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양씨는 실종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참사 이후에도 현장에서 몸을 던진 희생은 이어졌다. 참사 현장으로 긴급히 모여든 민간 잠수부 3명이 빠른 물살에 휩쓸려 한때 실종되었다가 20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리더의 탈출

ⓒ연합뉴스
4월17일 오전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목포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1. 4월16일 오전 9시50분. 세월호
시스템이 무너지고 헌신적인 이들이 온몸으로 현장을 떠받치는 동안, 리더는 탈출했다. 관련 증언을 종합하면, 이준석 선장은 가장 먼저 세월호를 빠져나온 최초 구조자 중 한 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뉴스 전문 채널 〈뉴스와이〉는 참사 현장에서 출발해 팽목항에 도착한 첫 구조선에서 이준석 선장과 선원 세 명이 내리는 영상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2. 4월17일 오후 4시20분. 진도 실내체육관
사고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 많은 언론은 이 발언을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이 결정적 발언으로 대통령은,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에서 ‘구름 위의 심판자’로 자신을 옮겨놓았다. 시스템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최종 책임자는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대신 ‘책임질 사람에 대한 색출 의지’를 과시하는 단죄자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그렇게 가장 먼저 ‘탈출’했다.

 

오래 남을 상처

참사 이후, 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안내방송을 잘 따른 아이들만 희생당했다”라는 한탄이 퍼져나갔다. 시스템을 신뢰하고 따랐던 이들은 배에 갇혔고, 믿지 않았던 이들은 빠져나왔다. 최종 책임자는 가장 먼저 탈출했다. 사고 대응 과정에서, 마치 재방송을 보듯 똑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위기관리 시스템은 내내 삐걱거렸고, 최종 책임자는 구름 위로 올라가버렸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냉소적인 교훈을 얻었다. “한국은 비보호 좌회전 같은 나라야. 위에서 뭘 해주길 기대하면 안 돼.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이것은 간단한 위기가 아니다. 국가의 시스템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신호다. 시스템의 붕괴를 라이브로 지켜보던 많은 관찰자의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나라인가?” 실종자 가족들의 성명서는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까?”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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