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9일 오전 10시30분, 대구의 한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되었다. ‘기자가 아동보호센터 안에까지 들어와 숨진 아이의 언니에게 인터뷰를 시도한다. 보호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8월 경북 칠곡에서 새엄마가 여덟 살 딸을 학대해 숨지게 했다. 그간 동생의 죽음이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자백했던 언니 영주(가명·12)가 재판 과정에서 ‘새엄마가 강제로 거짓 진술을 시켰다’고 털어놓으면서 사건은 재조명되었다. 공분이 일었고, 언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신고가 접수된 4월9일, 〈중앙일보〉는 경북의 한 대학병원에서 영주가 상담받은 기록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언론사 간 취재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서울에서 파견된 〈조선일보〉 기자는 영주를 따라 아동보호센터 화장실에 들어갔고 문을 닫은 후 인터뷰를 시도했다. 다른 한 기자는 ‘고모가 보냈다’며 영주와 접촉하기도 했다. 채널A와 MBN 등 종편 방송사는 학교와 아동보호센터를 카메라에 담았다. 결국 아동보호시설에 머물던 영주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기자들은 영주와 자매인, 새엄마가 낳은 딸(10)의 학교에도 찾아갔다. 사건 초기부터 영주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새엄마와 두 달여 격리되어 안정을 찾은 끝에 본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선생님과 고모 외에는 그 누구도 접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생면부지의 기자들이 나타나 들쑤시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영주를 낳은 생모는 4월9일 JT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관심은 감사하지만 딸이 많이 힘들어하니 취재를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여성변호사회 이명숙 회장은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 찾아가 “기자들의 과잉 취재로 2차 피해가 발생되면 아동복지법상 형사고소를 검토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4월11일, 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엽)는 새엄마 임 아무개씨(36)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숨진 아이를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친아버지(38)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같은 날 울산에서도 비슷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울산지법 제3형사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새엄마 박 아무개씨(41)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2012년 9월1일 전남 나주 ‘아동 납치 성폭행 사건’의 범인 고종석이 현장검증을 위해 차에서 내리자 많은 시민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이 자리에도 수십 명의취재진이 몰렸다.

언론사는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한다. 숙명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특히 아동과 관련한 범죄 보도는 취재에 따른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선’을 넘은 과잉 취재는 2년 전에도 있었다. 바로 ‘고종석 사건’ 때다. 언론의 과잉 취재로 2차 피해가 일어났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기자들이) 얼마나 벌떼같이 달려들까.” ‘칠곡 사건’ 뉴스를 본 조 아무개씨는 혀를 찼다. 조씨는 2012년 8월30일 새벽 1시30분, 집에서 잠을 자다 고종석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나주 초등생 피해 아동’의 엄마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피해 아동인 은진이(가명·9)는 “꿈에서 거미와 벌레가 온몸에 기어다닌다”라며 잠을 거부한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한 아이가 여전히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다.

가해자인 고종석은 지난 2월7일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5년,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명령도 함께 받았다. 하지만 조씨를 비롯한 식구들은 또 다른 가해자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바로 언론사들이다.

눈·코·입만 모자이크해 얼굴 사진 내보낸 언론

사건이 일어나자, 좁은 시골 지역을 무대로 서울에서 내려온 100명에 가까운 기자가 취재 경쟁을 벌였다. 나주경찰서 주차장은 취재차량으로 가득 찼다. JTBC는 사건 다음 날, 놀이터에서 노는 피해 아동의 언니를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SBS는 피해 아동이 다니던 지역아동센터를 화면에 노출시켰다. 채널A는 피해 아동이 성폭행을 당하고 12시간 만에 구조된 후 병원에서 촬영한 배·옆구리·허벅지 부위와 눈·코·입만 모자이크된 얼굴 사진을 그대로 내보냈다. 〈경향신문〉은 집안을 훤히 드러낸 내부 사진과 은진이의 그림일기장을 입수해 1면에 실었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시골인데, 기자들이 다 헤집고 다녔다. 경찰은 개인정보 보호 의식이 없어서 피해자의 집주소와 전화번호뿐 아니라 증언을 해줄 만한 사람들도 다 알려줬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기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바닥을 훑으며 긴박한 취재 경쟁을 일주일간 지속했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당시 조씨 등 식구들은 기사를 보지 않았다. 경찰도, 구청·구호단체·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관계자들도 모두 ‘뉴스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사실 뉴스까지 볼 틈이 없었다. 은진이 곁에서 간병을 하면서 보호센터에 맡겨져 있는 아이들도 돌봐야 했다.

당시 은진이가 입원한 대학병원에는 기자가 진을 쳤다. 병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맞은편 휴게실은 기자들이 차지했다. 은진이와 가족이 불안에 떨자, 병원에서 경호원을 붙였다. 조씨는 병실을 나갈 때마다 경호원에게 노크를 해서 신호를 보냈다. 그때 경호원은 하얀색 침대시트를 주면서 얼굴에 뒤집어쓰라고 했다. 기자들이 워낙 많아서, 다 찍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라고 되물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은진이가 수술을 받은 다음 날, 한 기자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심경이 어떠신지”라고 물었다. “구경났나요, 나가주세요.” 조씨의 말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방송이 싫으면 녹음만 하겠다”라며 한마디만 담아달라고 하는 기자도 있었다. “싫어요”라는 조씨 목소리 역시 그대로 전파를 탔다. 기자들에게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조씨는 전화번호를 바꿨다.

그사이 은진이의 집은 언론 보도를 통해 위성사진과 그래픽, 약도로 공개됐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밝혀야 할 의문점들’이라는 제목으로 식구들이 거주하던 집 주변을 그래픽 지도로 보도했다. 식구들은 더 이상 나주에서 살 수 없었다. 평생 이곳을 떠나서 살아본 적 없던 아빠 안 아무개씨는 대도시로 이사한 후에도 일을 하기 위해 나주에 올 때마다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는 전화기를 아예 없앴다.

대도시로 이사한 직후인 지난해 1월,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자를 소개해주겠다”라고 했다. 그 자리에는 SBS 기자가 나와 있었다. 은진이의 자필 편지를 담은 ‘나쁜 아저씨 혼내주세요’라는 방송이 1월10일자 8시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때부터 또다시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아이는 괜찮은지” “지금 심경은 어떤지” 따위를 물었다.
 

ⓒ연합뉴스4월11일 ‘칠곡 의붓딸 학대 치사 사건’ 피해 어린이의 친아버지 김 아무개씨가 대구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그제야 식구들은 도대체 뉴스가 어떻게 나갔는지 확인해보았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나주’라고 쳐보았다. ‘나주 성폭행’ ‘나주 성폭행 어린이’ ‘나주 PC방 어머니’가 연관 검색어로 떴다. 그동안 “경제적 상황을 돕겠다” “치료를 돕겠다”라고 말하며 접근했던 기자들이 딸 은진이의 그림일기장을 들추고, 무단으로 집에 침입해 사진을 찍고, 범인이 애초에 은진이의 언니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는 것을 알았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엄마 조씨는 게임 중독자였고, 아빠 안씨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조씨가 범인 고종석과 내연녀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씨네 식구들은 시간이 흘렀지만 딸 은진이의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바로 채널A가 보도한, 성폭행을 당하고 12시간 만에 구조되자마자 찍힌 사진이었다. 지난해 6월 조씨는 기자들의 취재에 응했던 이들을 직접 만나 따지기도 했다. 한 구청 직원은 “저희도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고, 인터뷰를 ‘당한’ 한 식당 주인은 “기자들이 들들 볶아서 그렇게 말했다”라고 해명했다. 은진이를 진료했던 담당 의사도 “나도 피해자다. 내가 성범죄 피해자인 줄 모르고 진료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억울해도 딱히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중이다”라고 조씨에게 말했다.

부모가 ‘게임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로 낙인찍히면서 인터넷에는 억측이 난무했다. 아이를 볼모로 병원비를 흥정한다느니, 돈 때문에 수술을 미룬다느니, 부모가 국민이 모아준 성금을 갖고 도망갔다느니 하는 내용이 올라왔다. 우연히 이런 글을 본 은진이의 언니는 “우리 엄마 나랑 같이 살고 있는데…”라며 조씨 앞에서 울먹이기도 했다.

조씨는 2013년 7월,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채널A, SBS, 〈경향신문〉,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 3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배호근)가 첫 판결을 했다. SBS, 채널A, 〈경향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SBS는 3000만원, 채널A는 2300만원, 〈경향신문〉은 2500만원을 배상하고, 각 돈에 대해 2012년 9월5일부터 2014년 3월19일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재판부는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각 5∼11건의 기사를 삭제하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언론사의 과잉 취재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사건 당시 은진이의 배·허벅지·얼굴 사진을 보도한 채널A에 대해 재판부는 “부모 동의 없이 아동의 사진을 공개해 인격권을 침해했다. 특히 얼굴 사진을 눈·코·입 부위만 모자이크 처리한 채 공개해 아동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아동의 여러 상해 신체 부위를 촬영한 사진을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공익적 범죄 보도의 허용 범위를 벗어났다. 가족의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보도 과정에서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의 원인 일부가 마치 피해자 측에 있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라고 지적했다. 위성사진으로 조씨의 집을 보도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의) 사생활에 속하는 집 위치를 위성사진 영상으로 공개하고 집안 내부 모습이 훤히 보이는 영상을 내보낸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인격권을 침해했다”라고 판단했다.

은진이의 집 내부, 은진이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독서록, 노트 등을 보도한 SBS에 대해 재판부는 “범죄의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불법 행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라며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재판부는 SBS가 주거침입까지 했다고 인정했다.

피해 아동의 언니가 재판장에게 보낸 편지

아빠를 알코올 중독자로, 엄마를 게임 중독자로 묘사하며 은진이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한 〈경향신문〉에 대해 재판부는 “보도에 진실성이 인정되거나 피고가 진실하다고 믿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위법성이 배제되지 않는다”라며 엄마·아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언론 보도로 발생하는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원인이나 경위와 무관한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인적 사항에 관한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신선영4월10일 국회에서는 ‘나주 아동 납치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이름의 토론회가 열렸다.

SBS와 〈경향신문〉은 1심 판결 뒤 항소하지 않았지만 채널A는 항소를 했다(〈조선일보〉와 〈연합뉴스〉에 대한 1심 판결은 4월30일 나온다). 소송 과정에서 은진이의 언니는 재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그대로 인용한다). “재판장님, 저는 중학생이라 인터넷을 합니다. 그 나쁜 놈이 나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답니다. 인터넷, 티비에서 우리 가족을 모르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사건이 보입니다. 왕따를 시킬까, 놀릴까 무섭다. 흔적도 없이 지워지게 해주세요. 저를 찾아와 인터뷰를 한 아저씨도 혼내주세요.”

나주 사건 보도 이후 〈경향신문〉은 긴급 편집제작평의회를 열어 ‘경향신문 성범죄 보도준칙’을 제정하고, ‘신상 정보와 사적 기록물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 역시 ‘인권보도준칙’의 세부 기준을 가다듬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파견된 취재기자들은 여전히 대구와 칠곡을 훑고 다니며 피해자의 신상을 털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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