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은 야권의 오래된 숙제다. 호남보다 인구가 많은 영남의 공고한 새누리당 지지세를 흔들지 않고서는 집권하기도 어렵거니와, 집권한다 해도 지지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역대 야권의 리더들은 모두 이 오래된 숙제에 맞서 고군분투했다. 이 숙제를 풀겠다며 몸을 던졌다가 정권까지 쟁취한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정작 영남 공략만은 성공하지 못했다.

‘벼락치기’로 풀어보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 동안 청와대나 정부의 영남 출신 고위 인사가 ‘징발’되어 영남 선거에 투입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선거만 끝나면 장관 자리 등의 ‘징발 보상금’을 챙겨 서울로 돌아가곤 했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면서 야권에 대한 영남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영남의 교두보는 만들어야 하지만 중앙 스타 내리꽂기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야권에 남은 방법은 결국 ‘경쟁력 있는 인물’을 충분히 확보해서 ‘맨땅에 헤딩’을, ‘신뢰를 얻을 만큼 오랫동안’ 하는 것이다. 중앙 무대에서 전망이 있을 인물더러 사지(死地)에 가서 기약 없는 싸움을 하라는 꼴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합뉴스2년 전만 해도 외면하는 유권자를 상대해야 했다. 요즘은 다르다. 김부겸 대구시장 예비후보(오른쪽)는 유세를 다니면 이전과 달리 ‘악수가 붙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4년 지방선거, 야권의 중량급 정치인과 차세대 유망주가 나란히 영남 광역단체장 선거를 뛰고 있다. 이전처럼 일회성이 아니다. ‘10년 농사’를 각오했다. 누릴 수 있는 기득권도 진작 내려놓았다. “계속 때리면 깨지겠지”라며 바위를 치는 달걀들을 〈시사IN〉이 만났다.

 대구 김부겸, “쪽팔리면 안 되잖아”

정치인들 표현으로 “악수가 붙는다”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이 내미는 손을 유권자가 거절하지 않거나 심지어 먼저 다가와서 악수할 때 쓴다. 유력 대선 주자 정도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4월9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김부겸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이날 악수가 제대로 붙었다. 어깨띠를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보는 시민이 많았고, 갓난아이를 내밀어 악수하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기자에게 “수도권에서 이 정도 분위기면 선거 벌써 끝났다고 하는 건데!”라고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달랐다. 2012년 총선에서 그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다. ‘민주당’이 박힌 명함을 받자마자 눈앞에서 던져버리는 유권자를 숱하게 만났다. 목이 쉰 채로 방송 토론을 할 만큼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막판에야 분위기가 풀리고 청중이 모였다. 친박계 핵심인 이한구 의원을 상대로 40.4%를 얻었다. 그는 선거전 초반인 지금 분위기가 총선 막판 분위기만큼 좋다고 느낀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했다. 야권이 수도권에서 몰살당했던 2008년 총선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지역을 닦아두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일회성이나 이벤트성이 아니라고, 계속 대구에서 정치하겠다고 미리 퇴로도 차단했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경쟁 체제가 없으면 대구 발전도 없다. 한 당에만 수십 년을 몰아주니까 대구 발전을 위한 경쟁이 안 되고, 그래서 후퇴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도 경쟁자가 필요하다.” 정론이다. 하지만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말을 자르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 길을 왜 하필 ‘내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나? 개인에게 가혹하고 성공 전망도 어두운 길인데?” 이 대목에서, 인터뷰 톤으로 밋밋하던 김부겸의 사투리가 순간 걸쭉해졌다. “영화 〈친구〉 봤나. 거기 경상도 정서를 딱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쪽팔리믄 안 되잖아’.”

그가 3선이 될 무렵부터 학생운동을 함께한 오랜 친구들이 툭툭 한마디씩 던졌단다. “김부겸, 요새 정치인 다 됐데.” “니 인마, 편해 보인데이.” 농담 삼아 건넨 말들이 마음에 꽂혔다. “이제 군포에 나가면 얼굴만 보고도 저 사람은 나를 찍을지 안 찍을지 딱 감이 온다. 완전 동네를 꿰고 있는 기지. 그라다 보이 누가 내한테 와서 머라머라 해도, 아 내 안 찍는 사람이다 싶으면 그냥 안 들어버리는기라. 닳고 닳은기라.” 그렇고 그런 다선 의원으로 안주하며 ‘쪽팔리기 싫어서’, 그는 대구에 도전하기로 했다.

죽는 길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책임감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3선이나 했고, 이름도 좀 알렸고, 그쯤 되니까 시쳇말로 ‘판돈’이 좀 남아 있다. 하는 데까지 해볼 맷집이 된다. 후배들보다는 내가 먼저 깃발을 드는 게 맞다.”

그는 아주 오래전에도 지금처럼, 죽는 길인 줄 알면서 깃발을 든 기억이 있다. 박정희는 떠났고 전두환은 전면에 나서기 전이던 1980년 ‘서울의 봄’. 김부겸은 “제발 착실히 공부해서 졸업장만은 따보라”는 아버지의 신신당부를 듣던 운동권 출신 복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공군 장교였다. 아들이 ‘불순분자’로 찍히면 군 경력이 끝날 판이었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집회 단상에 올라 ‘총대’를 멨다. 정보기관에 신원이 접수됐다. 곧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그는 오랜 수배 생활을 했으며, 아버지는 좌천을 당했다가 몇 년 후 군을 떠났다.

1980년 그때의 연설 내용을 김부겸은 이렇게 기억한다. “모두가 민주화를 원하지만 누구 하나 희생하여 투쟁하지 않는다면 조국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주화를 영남으로, 투쟁을 정치로, 조국을 야권으로 바꾸면, 2014년 김부겸이 내세우는 문장이 된다.

선거전 초반, 그가 낸 대표 공약은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이다.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반발이 거셌다. 표를 얻겠다고 민주화 세력의 근본까지 부정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박정희 정권의 사법살인으로 잘 알려진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이 비판 성명을 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시작했다는 김부겸의 오래된 아킬레스건을 다시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연합뉴스김영춘 부산시장 예비후보(가운데)는 ‘중앙정치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 내려와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2월26일 부산시의회에서 출마선언을 했다.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이 지역에서 박정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그러면서도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걸 얼마나 주저하는지, 수도권 사람들은 짐작도 못할 거다. 박정희 담론을 어떻게든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헌사든 비판이든 공론장에서 해야 한다. 그게 결국은 가장 건강하게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박정희 담론의 ‘공론화 과정’이자 일종의 ‘씻김굿’으로 접근하겠다는 얘기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이렇다 할 경쟁 후보가 없다. 반면 새누리당은 서상기·조원진 의원, 권영진 전 의원,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 4명이 컷오프를 통과해 경선을 벌인다. 누가 상대였으면 좋겠냐는 말에 김 예비후보는 “대구는 새누리당이기만 하면 다 어려운 상대다”라고 답했다.

 부산 김영춘, 세 번의 거절과 한 번의 결심

출신은 부산이지만, 서울에서 잘나가는 재선 의원이었다. 젊은 나이에 당 지도부에도 들었다. 누가 보아도 전도유망한 경로였다.

“부산에서 출마해달라는 요구를 세 번 거절했다. 그러고 나니 미안해서 안 되겠더라. 세 번째 거절을 하면서는, ‘아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첫 번째는 2004년 총선이었다.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후, 창당 명분에 맞게 부산으로 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던 것도 맞지만, 그보다도 탄핵 역풍이 불기 이전까지 당이 위기였다. 수도권에서 생환 가능한 현역 의원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최고위에서 지도부가 서울 지역구를 지켜내라고 정리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공중분해된다. 창당의 한 축이던 그는 비감에 젖어 200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고 나서 부산에서 다시 요청이 왔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뒤였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부산시장 도전 의사를 물었다. 다시 거절했다. “국회의원은 전국 단위로도 일을 하니까 어느 정도 양해가 되지만, 부산시장 후보는 정말로 부산을 속속들이 알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몇 달 남겨두고 그 정도 내용을 만들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출마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거절하면서, 정치 복귀는 부산에서 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심했다. 김영춘은 2010년 10월 출범한 손학규 대표 체제에서 최고위원으로 지명됐다. 사실상 ‘부산 지역대표’ 몫이었다.

한나라당 이력과 2007년 문국현 후보 캠프 이력 때문에, 그의 부산행을 고깝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일종의 ‘경력 세탁’ 아니냐는 의구심은 지금도 남아 있다. 김영춘은 “10년 농사를 각오하고 왔다”라고 답했다. “선거 때 지역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영남이 야권을 더 믿지 못한다. 그래도 중앙정치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와서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 큰 추세로 보면, 부산의 야권 지지층이 10년 만에 30%에서 40%까지 올라왔다. 이 추세를 살려간다면, 뒤집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아쉬움은 있다. 수도권 2~3선쯤 되는 체급이 아닌 정치 신인은 ‘10년 농사’를 결의하기가 쉽지 않다. 영남의 마음도 결국 좋은 인물로 돌려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인물 수급이 안 되는 구조다. 그래서 김영춘은 중앙당이 제도적 유인책을 마련해줬으면 싶다.

비례대표를 줘서 중앙정치로 데려가는 것보다는, 석패율제(낙선 후보 중에서도 많은 득표를 한 순으로 일부 의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정치인이 많아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석패율제가 생긴다고 나나 김부겸 후보가 그걸로 배지 달겠다고 하겠나. 기약 없는 미래에 좌절하는 정치 신인들에게, 꼭 50%를 넘기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연합뉴스김경수 경남지사 예비후보(오른쪽)는 두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경남의 변화를 체감했다. 3월22일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

김영춘 예비후보는 경선만 사실상 2차전을 치러야 한다. 일단 당내 경선에서 이해성 예비후보와 맞붙는다. 여기서 이기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되는데, 다시 무소속 오거돈 후보와의 단일화가 기다리고 있다. 중앙당 지도부는 시민참여경선 모델, 이른바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모델’을 생각한다.

김영춘 예비후보는 “나는 야권 후보와는 누구와도 단일화를 한다. 다만 오거돈 후보가 내용상 야권 후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구심이 있다. 내가 당내 경선을 이긴다면,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며 오 후보가 과연 야권 후보라고 볼 수 있는지 판단하겠다”라고 말했다.

 경남 김경수, “뒤집힐 날 얼마 안 남았다”

시선 처리가 수줍다. 손짓도 훈련된 정치인과는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고, 문재인 후보를 대선 내내 수행했지만, ‘정치인’보다는 ‘수줍음 많은 청년’에 가까운 이미지다.

김경수는 친노 핵심 지지층 정도를 제외하면 무명에 가깝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쯤 재선 의원이 되었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안타까워한다. 2011년 4월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 총리 청문회에서 낙마하며 만신창이가 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야권에서는 김경수가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 지역이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인 봉하마을이 있는 곳이어서,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흠집 난 여당 후보 대 상징성 높은 정치 신인’ 구도라면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당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제동을 걸었다. 참여당도 원내 진입이 절박하던 참이었다. 이봉수 후보를 내세웠다. 친노 진영이 분열 조짐을 보였다. ‘김경수로 정리되는 것이 순리’라고 본 친노계 원로들이 물밑 조정을 시도했지만, 김경수는 돌연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 이때 국회에 입성했다면 2012년 총선 역시 이겼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김태호 대 이봉수 대결에서 김태호 후보가 이겨 재기에 성공했다. 김경수는 2012년 총선에서는 후보로 나섰지만 47.9%를 얻어 낙선했다.

2011년 불출마 선언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전혀. 그때 내가 출마했다면 노무현재단도 분열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정치를 바닥부터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상징성이 큰 김해을을 두 번이나 빼앗겼다. 그래도? “다시 가져오면 된다.”

셋 중 가장 젊어서일까. 셋 중에서도 그는 가장 낙관적이다. “경남이 참여정부 때와 달라진 게, 이제 사람이 모인다. 선거 출마를 대가로 뭘 받아갈 사람 말고, 정말로 길게 보고 해보겠다는 사람이 곳곳에 있다. 이러면 된다. 나는 정말로 뒤집힐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본다.” 2012년 총선 낙선 이후 정치를 업으로 삼을지 고민할 때에도, 그런 낙관은 결국 그를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정치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쉽지 않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의 주인공이었지만,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면서 야권 지지층과 부동층을 실망시켰다. 잠재 지지층의 상처가 깊다.

앞서 4월8일, 경남을 찾은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도지사 중도 사퇴에 대해 ‘석고대죄’라는 표현까지 쓰며 사과했다. 김경수 예비후보는 “김두관 전 지사가 남긴 도정의 성과를 계승하겠다는 말을 하려 해도 사과가 꼭 필요했는데, 김 전 지사가 잘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양당 모두 경선이 예정되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경수·정영훈 예비후보가 경선을 벌인다. 새누리당은 홍준표 현 지사와 박완수 전 창원시장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김 예비후보는 홍준표 지사와 박완수 전 창원시장의 뒤를 이어 3위를 달린다. 좋은 성적표는 아니다. 김 예비후보는 “홍 지사에 대한 거부층이 꽤 두껍다. 경선 이후 홍준표 대 김경수 구도가 되면,반(反)홍준표 결집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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