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풀고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꿈이 있는 공부
①김진애-‘공부 생태계’를 꿈꾸는 공부 이야기
②황선준-스칸디 부모가 말하는 북유럽 학생들의 공부 이야기
③강영안-철학자가 말하는 공부 이야기
④황농문-공부하는 힘, ‘몰입’에서 찾다! 
⑤정기원-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초등편 
⑥강영희-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중등편  
⑦송인수-꿈이 있는 공부와 진로:오해와 진실 


“공부는 거의 종교의 영역으로 승화한 듯합니다. 교회나 절에서도 공부는 못 건들죠.” 송인수 공동대표의 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꿈이 있는 공부-부모학교’의 첫 강좌 풍경이다. 주목할 만한 교육 강좌를 선보여온 이 단체가 이번에는 ‘공부’에 눈을 돌렸다.
누구는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아이들을 다그치고, 누구는 가혹한 점수·등수 경쟁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다며 공부와 거리를 둔다. 양 극단을 넘어선 공부의 길은 정녕 없을까? 아니, 그보다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이번 강좌는 이 같은 의문을 풀고자 기획되었다. 3월27일부터 5월8일까지 진행되는 공부학교의 7강 전체를 차례로 지상 중계한다. 첫 강의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출신 도시건축가이자 다독가로 잘 알려진 김진애 전 국회의원이 맡았다.

ⓒ시사IN 신선영
도시건축가 김진애씨는 “MIT에서 7년을 공부하면서 공부가 얼마나 신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문제 창조 정신, 현장 정신, 창업 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젊은 부모들이 많이 오셨다. 좀 더 연배 있는 분들이 오실 줄 알았더니(웃음). 내가 여기 불려나온 건 얼마 전 〈왜 공부하는가〉라는 책을 냈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책 내고 나서 놀랐다. 공부가 우리 사회를 이토록 사로잡고 있구나, 새삼 느꼈다고 할까? 일단 공부 열풍 자체는 좋은 사인이라고 본다. 어른들이 공부한다는 건 갈증을 느낀다는 거니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 열풍이 가짜였구나, 나 자신으로 돌아와 내공을 키우려면 공부를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는 얘기 아니겠나.

출판사로부터 공부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 2년 전인데 계속 망설였다. ‘공부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는데 나까지 뭘’ 하는 생각도 있었고, 전공 책도 아닌데 자칫하면 어쭙잖은 책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가 “선생님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을 드리고 싶다”라는 말로 내 마음을 움직이더라. 그 얘길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왜 공부를 하려 했던가, 그 꿈은 어떻게 변해갔나, 왜 지금 60대가 넘도록 여전히 철없이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에 불타오르고 있나.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책을 썼다.

나는 오늘 두 가지를 주로 얘기하려 한다. 하나는 공부 생태계, 또 하나는 부모에 대한 얘기다. 먼저 내 대학 시절 사진을 한 장 보여드리겠다. (1970년대 서울대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서울공대의 전설’로 불렸을 만하지 않나(청중 웃음). 당시 서울공대 800명 중 여학생은 나 하나였다. 그것도 7년 만에 입학한 여학생이라고 하더라.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남자 화장실을 함께 써야 했다. 대학 시절 공부는 하나도 안 했지만 딱 한 가지만은 분명히 공부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트라우마가 있다. 1남6녀 중 셋째 딸이었으니 사람대접을 못 받고 자랐다. 보통 그런 집에서 강한 여자가 나온다던데 나도 그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강한 자의식이 형성돼 있었다.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불알만 차고 나왔더라면…”. 잘생기고 공부를 잘하는 편이다 보니 고모들이 툭하면 그런 말을 하셨다. 그게 지독한 트라우마가 됐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남자로 태어나면 더 좋은 건가?’ 싶었다. 또 듣기 싫었던 말이 “넌 참 이상하다”였다. 이건 어린아이를 코너로 모는 말이다. 난 순전히 묻고 싶은 게 많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니, 내가 뭔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그때부터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입을 열면 상처를 받으니까. 그러고는 만화, 책, 영화로 도피했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때 결심했다. ‘내가 크면 말 못해 답답한 세상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거야’라고.

어찌 보면 이런 상처, 그로 인한 결단이 사실은 나를 세웠다는 생각도 든다. 불알 타령 들으면서 결심한 게 ‘반드시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겠다. 남자한테 돈 받아 사는 처지는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그 결심이 내게 엄청난 동력을 부여했다. 특히 고3 시절, 독하게 공부했다. 반드시 대학에 가야 했으니까. 부모의 트라우마가 좋은 스트레스 또는 나쁜 스트레스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난 지금도 두 딸이 질문을 잘 안 하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어진다.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들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내가 지금 무슨 한을 풀고 있는 거지?’ 하고.

MIT에서 경험한 ‘공부 생태계’의 세 가지 특징

오늘 공부 생태계 얘길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이 개념을 떠올린 것은 MIT 유학 경험 때문이다. MIT에서 7년을 공부하면서 나는 공부가 얼마나 신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유학 초기, 아직 영어도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갔는데 “건축이 왜 필요한가?” 이런 질문들이 막 던져졌다. 그게 너무 좋았다. 사실 난 건축이 자연에 대한 죄악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런 의문들을 비로소 표현할 수 있었다.

MIT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문제 창조 정신. MIT는 “너 자신을 디자인하라(Design yourself)”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현장 정신. 한마디로 땅에 발을 붙이는 정신이 살아 있다(Ground yourself). 개념·이론·추상적인 것을 강조하는 우리 대학과 달리 현장에서 출발해 연구도 하고 비즈니스도 한다. 셋째, 창업 정신(Enterpreneurship). 흔히 ‘창업 정신’ 하면 비즈니스만 떠올리는데 그게 아니다. 뭔가를 알고 나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만들라는 것. 그것이 MIT에서 말하는 창업 정신이다.

MIT야말로 공부 생태계가 구축된 곳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 생태계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아이디어라는 물방울이 물줄기가 되는 것이다. 생태계라는 게 자생력을 바탕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면서 끊임없이 움직여 에너지를 발산하고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지 않나. 공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그 안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어디선가 어떤 활동을 시도하고 추진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진화와 혁명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아이디어가 돌고, 돈이 돌고, 지식이 돌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시사IN 윤무영
‘공부 생태계’에서는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령 누구나 강사가 되어 가르치고 또한 학생이 되어 배우는 ‘지혜로운학교’(위)처럼. 이 학교는 2013년 9월에 문을 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르네상스 시기에는 왜 그렇게 근사한 사람이 많았을까? 세종 시대나 정조 시대도 마찬가지다. 왜 특정 시기에 수원 화성을 짓고 의궤를 만들고 북학파가 일어나는 혁신이 동시에 이뤄졌을까? 그게 과연 우연일까? 난 이들 시기에 바로 공부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지식·창업·혁신 생태계가 살아 있고, 이를 이끌어가는 리더와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토록 뛰어난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런 공부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 생태계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여러 분야, 여러 세대가 모여 함께 일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짜’의 철없는 열정과 경륜자의 지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일방적인 강의 대신 팀과 프로젝트 위주로 움직이며, 현장을 중시한다. 학생과 선생의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때로는 역할 바꾸기도 일어난다. 가르칠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태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험을 쌓다 보면 스스로 주도적이 되고 어디선가 일을 물어오게 된다. 이런 생태계 개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 지겹도록 말하는 ‘성공’ ‘일등’ ‘리더’ 이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교육의 목표는 탁월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생태계를 구축해 ‘좋은, 건강한,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려다 보면, 탁월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돼 있다.

다음으로 부모 얘기를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먼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부모 먼저인가, 부부 먼저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보통 아이가 먼저다. 부부가 먼저인 경우는 드물다. 이건 절대적으로 고쳐야 한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만큼 ‘아이 먼저’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이가 열 살쯤 되면 ‘부부 먼저’가 돼야 한다. 부부의 역할은 부모보다 훨씬 길다. 아이들과 사는 것은 기껏해야 십몇 년이지만 부부는 길면 70~80년을 함께 살아야 한다. 그뿐 아니다. 부모 역할은 부부 공동 프로젝트로 수행해야 한다. 요즘 보면 엄마 혼자 아이를 독점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선 안 된다.

아이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 훨씬 힘이 세다

아이는 스스로 자라야 한다는 말도 하고 싶다. 부모는 이를 지켜보고 도와주면 된다. 왜 열다섯 살 넘은 아이들의 진로를 부모가 대신 선택해주고 과외·학원까지 알아봐주나. 아이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으면 거기에 에너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 훨씬 힘이 세다. 학교 성적 좋고 가방끈 길면 다 좋을 것 같다는 편견도 버리시라. 내 경험으로 보건대 가방끈이 길면 할 수 있는 일의 옵션이 훨씬 줄어든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의사·변호사·교수 정도다. 세상에 그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전공, 전공 하면서 연연할 필요도 없다. 지식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나. 앞으로는 전공 지식보다 정보를 해석하고 가공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대학 시절까지 어떤 태도와 적응력을 기르느냐가 그 사람 인생을 좌우하리라 본다.

그보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해줘야 할 것은 일종의 프리허그라고 본다. ‘믿어줄게,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도와줄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품어줄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넌 할 수 있어’ ‘성공할 수 있어’ 같은 말은 그만 하시라. 그건 로또 맞으라는 얘기 아닌가. 그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공부 못해도, 왕따를 당해도, 이 사회 99%가 되어도 그 나름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아이를 보호하거나 지배하려 들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다. 그보다 ‘한번 독해보면 언제나 독해질 수 있다’는 걸 아이 스스로 깨닫는 게 훨씬 중요하다. 내 경우 고2까지는 성적이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고2 겨울방학 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년은 공부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걸 지켰다는 거다. 그 뒤 1년간 정말로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을 한 번도 보지 않고 공부만 했다. 이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니 용기가 생기더라. 독해져서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니 전에 보이지 않던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뒤 유학 때나 한국에 돌아와 일을 시작할 때 두어 번 더 이런 경험을 했다. 이런 단계에 이르면 자꾸 뭔가가 더 알고 싶어지고, 수수께끼가 늘어난다. 공부 진화론이랄까, 공부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거다. 결정적일 때 독하기 위해서는 평소 독하지 않아야 한다.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다그치는 분이 많던데, 중학생이면 최소한 앞으로 5~6년은 독하게 살라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나. 그토록 오랜 기간 자신을 계속 긴장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래서는 아이들이 결정적일 때 독해질 수 없다.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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