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인데 ‘심판’이라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 심판론은 쏙 들어간 상태다. 물론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새누리당 후보들이 ‘친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중간에 치르는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그 자체로 정권심판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친박’ 상징성이 큰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출마한 인천시장 선거는 좀 더 눈길이 간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친박’ 거물급 후보를 상대로 방어전에 나선 송영길 인천시장은 이번 인천시장 선거를 “시민을 위한 시장과 대통령을 위한 시장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4월2일 저녁 인천 청라지구에서 송 시장을 만났다.

ⓒ시사IN 조남진송영길 인천시장(사진)은 지난 4년간 매일 시정일기를 썼다. 송 시장은 “유정복 전 장관은 인천공항을 민영화하는 법안에 사인하고, 송도에 영리병원을 들여오는 데 찬성한 인물”이라며 유 전 장관과 각을 세웠다.
평소 하루 일정을 어떻게 시작하나. 지하철로 출근하는데, 지하철역까지 걷고 계단을 두 칸씩 빨리 뛰어오르는 것으로 아침 운동을 대신한다. 지하철역 분식집에서 김밥을 한 줄 사 먹고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한다.

새누리당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송 시장이 부채만 늘려놓았다. 인천시가 빚더미에 올랐다”라고 이야기한다. 인천시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빚더미라는 표현을 쓰는 건 인천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집의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인천의 브랜드 가치를 폄하해서야 되겠나. 지금 부채의 93.1%는 새누리당 소속인 전임 시장 때 것이고, 6.9%는 아시안게임 준비와 관련된 것이다. 지난 3년간 1조2000억원의 이자를 갚았다. 지난해부터는 원금도 갚아나가고 있다. 올해는 800억원 흑자 결산을 할 계획이다.

역시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안상수 전 인천시장도 “송 시장이 인천을 부패·부채의 도시로 만들었다”라고 비난했는데. 주어만 본인으로 바꾸면 딱 맞는 말이다. 처음 시장이 됐을 때는 인천 부채를 보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자다가 가위눌리기도 했다. 시장 월급을 100만원 깎았고, 4년째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해외에 출장 갈 때도 이코노미석(일반석)을 탄다. 워낙 부채가 많으니 참고 다녀야 한다.

덩치도 큰 사람이 이코노미석을 타나? 지하철 출근도 그렇고, 편하게 쉬고 일할 땐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생각도 했지만 인천에 워낙 빚이 많아서 그럴 수 없었다. 인천시가 월미 은하레일에 853억원을 투자해놓고 운행을 전혀 못하는 상황이다. 주민 중 일부가 나를 고발하기도 했다. 안상수 전 시장의 잘못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내가 일부러 운행하지 않는다고 비방한다. 무리한 공사였다. 안전성 문제로 운행을 못하고 있다. 월미 은하레일 사업에 도장 찍어준 공무원들은 어떻게 했나? 관련된 공무원들은 관련 업무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일부는 지금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송도는 지금 어떤가? 완전히 살아났다. 초기에는 부도 직전의 유령도시라고 했지만 지금은 출퇴근 시간에 차가 밀릴 정도다. 해외 기업을 비롯해 뉴욕 주립대학, 조지메이슨 대학 등 유명 대학들도 유치했다. 인천은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FDI) 1위를 했다. 얼마 전 정부가 승인한 영종도 카지노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필요하지만 내국인 허용 카지노는 반대한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이 연간 4000만명이고 단순 환승객만 해도 600만명이 넘는다. 외국인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곳이 영종도 카지노다. 수도권 광역 단체장인데 중앙 언론에는 잘 안 나온다. 개그맨 송영길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너무 잘해서 방송에서 안 보여주는 것 같다(웃음). 유정복 전 장관이 있었던 안전행정부가 매년 광역 지방자치단체를 9개 항목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인천이 1등을 해서 30억원 상당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유 전 장관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서가 1위로 평가한 지자체를 빚더미라고 공격한다면 자기모순이다. 7대 특별시·광역시 중에서 고용률이 4년 연속 1등이다. 박근혜 정부가 잘했다고 평가하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시청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도 서울보다 먼저이고, 지하철 해고자도 다 복직시켰다. 9월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데, 아시안게임 소식이 전혀 안 들린다. 언론에서 잘 다뤄주지 않는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남북 화해 측면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아시안게임을 시작하는 날이 9·19 공동성명일이고 끝나는 날이 10·4 선언일이다. 북한이 일부 종목이지만 공식 참가를 발표했다. 다른 종목도 참가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과 관련해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더라. 아이 울음소리가 늘었다는. 출산율이 늘고 있다. 출산장려금도 300만원씩 준다. 전국 광역 단위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무상보육도 중앙정부보다 먼저 시작했다. 인천의 집값이 싸고 일자리가 많은 것도 젊은 부부들이 이사 오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출산율이 다 떨어졌는데 인천의 감소폭이 가장 적었다.

다 자랑으로 들린다. 그래도 임기 동안 부족했던 점이 있을 텐데. 4년은 짧은 시간이다. 시정 파악에 최소한 3년이 걸린다. 송영길은 이제 숙련공이 됐다. 지금 시장을 바꾸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거다. 유 전 장관이 ‘시정 파악에 3년이나 걸린다는 건 준비가 덜 되었다는 걸 자백하는 것 아니냐’고 공격했는데, 직접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돌아보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투자 유치만 해도 성과가 나오려면 3∼4년이 걸린다. 안상수 전 시장 때 여의도의 50배 규모인 5000만 평(약 1만6500㏊)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다. 재개발·재건축 중에 78개를 해제했고 140개 정도가 남아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유 전 장관이 “박 대통령이 ‘능력 있는 사람이 (시장이) 됐으면 하는 게 (시민들) 바람일 거다. 잘되길 바란다’고 했다”라고 공개해 논란이 됐다.

그런 말 자체를 용납해선 안 된다. 내가 인천시장인데 예를 들어 중구청장이 새누리당 소속이라고 중구에 필요한 일에 예산을 안 준다면 시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일 거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민통합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보고 일해야 한다.
ⓒ연합뉴스2013년 8월16일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인천광역시 업무 보고를 받기 위해 송영길 시장(왼쪽), 유정복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오른쪽)과 함께 인천시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유 전 장관처럼 실세가 시장이 돼야 중앙에서 쭉쭉 밀어준다고 주장한다.
생긴 것도 내가 더 세 보이고 키도 더 크다(웃음). 경력이나 행정 능력 역시 내가 더 강하다고 본다. 힘은 결국 만들어준 사람을 위해 쓰이게 돼 있다. 나는 20대부터 인천 바닥에서 가구공장 노동자, 버스 노동자로 시작해 인천의 인권변호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송영길의 힘은 인천시민이 만들어준 힘이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의 힘은 대통령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만 들어가는 힘이다. 인천을 위한 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 전 장관이 인천시장이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인천공항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할 때 반대할 수 있겠나. 유 전 장관은 인천공항을 민영화하는 법안에 사인하고, 송도에 영리병원을 들여오는 데 찬성한 인물이다. 저는 인천공항 매각과 영리병원만은 반드시 막으려 한다. 인천에 필요한 건 대통령 말을 수첩에 받아쓰는 비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눈을 보고 민심을 전달할 사람이다. 박 대통령 주위에는 눈을 똑바로 쳐다볼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쳐다볼 수 있다. 국회에서 2년 동안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나란히 앉은 ‘짝꿍’이었다. 저는 박 대통령 눈 쳐다보면서 질문했다가 계속 재판에 끌려다니고 있다. 그러니까 애정 어린 눈으로 봐야 한다(웃음).

측근이 인천시장이 된다면 대통령이 갑자기 인천을 사랑하게 돼서 돈을 마구 내려보낼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논리라면 이미 대구는 프랑크푸르트가 됐고, 부산은 뉴욕이 되지 않았겠나. 인터넷에 매일 시정일기를 쓰고 있다. 읽는 사람도 없는데 왜 쓰나? 많이 본다(웃음). 4년간 매일 썼다. 조회 수는 낮아도 올려두면 퍼 나르는 사람들이 있고 공무원들이 열심히 본다.

인천에 SK 와이번스 야구단이 있다. 2007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뒤로 한국 시리즈에 네 번 진출해서 세 번 우승했다. 수장이 바뀐 뒤로는 성적이 잘 안 나온다. 김 감독은 뛰어난 리더였다. 개인적으로 팬이어서 북 콘서트에 초청하기도 했다. SK 와이번스 쪽에 김성근 감독이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했는데 안 들어주더라. 시민구단도 아니고 내가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이 ‘장’이 된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살면서 “처음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시청 환경미화원분들 전부와 밥을 먹은 것이었다. 20년 넘게 일하신 분들도 시장과 밥 먹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인천 한센인 마을에 가서 밥을 먹었다. 정부 수립 이래 시장이 온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 연평도 포격 때도 바로 연평도와 백령도에 들어갔다. 옹진군에 섬이 160여 개 있는데 다 돌아본 것도 처음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시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연임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현장 분위기는 좋다. 박근혜 시대에 시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절대 질 수 없다. 자신감은 있다.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시 낭송이다. 시를 30편 정도 외우고 시 낭송을 하면 다 좋아하신다. 경로당에서 시를 암송했더니 감동해서 우시는 할머님들도 있다.

그분들은 막걸리 마시고 트로트 부르다가도 잘 우시는 분들이다. 시 낭송을 하는 시간은 3~5분 정도다. 그런 짧은 시간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게 쉽지가 않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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