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공다음은 날로 늘어가는 블로거를 규합해 ‘블로거 뉴스’를 지원하는 것으로 네이버에 맞선다. 위는 지난 3월16일 열린 블로거 콘퍼런스 모습.

언론으로 불리기는 죽도록 싫은 모양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도 언론 기능을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때마다 손사래를 쳤다. 포털이 ‘검증받지 않는 언론’으로 사실상 여론 형성을 주도한다는 각계의 비판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하지만 포털이 정보 획득을 위해 들락날락하는 단순한 통로 차원을 넘어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는 ‘미디어’로 거듭나야만 미래가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그러려면 차별화한 콘텐츠와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이슈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시각의 칼럼과 기사를 끊임없이 공급해야만 네티즌이 포털에 오래 머물며 여론을 형성한다. 겉으로 보여주는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달리, 양대 포털이 뉴스 서비스에 쏟는 정성이 남다른 것도 그래서다.

업계 1위 네이버는 여기서도 스타 기자를 영입하는 ‘엘리트주의’를 들고 나왔다. 반면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고 출발한 다음은 ‘풀뿌리 콘텐츠’로 맞서는 형국이다. 물론 두 회사 모두 “그래도 우리는 언론이 아니다”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두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네이버는 올해 프로야구 시즌 개막에 맞춰 박동희 기자를 영입했다. 스포츠 전문 주간지인 〈스포츠 2.0〉 출신의 박 기자는 네이버가 영입한 네 번째 전문기자다. 야구 전문 민훈기·김형준 기자와 영화 전문 이동진 기자는 2006년 무렵부터 이미 활동 중이다. 민훈기 기자는 스포츠조선에서 메이저리그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김형준 기자는 2000년대 초부터 조인스(인터넷 중앙일보) 등에서 야구기록 분석으로 유명했던 온라인 터줏대감이고, 이동진 기자는 조선일보에서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로 고정팬을 확보했다. 댓글달기·퍼나르기 등으로 확인되는 마니아층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어디를 가든 이들에겐 늘 충성도 높은 독자가 따라붙는다.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쟁쟁한 명성을 쌓은 스타 기자다. 그래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데 매체 소속일 때보다 불편한 점은 없다고 네 사람은 입을 모았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반응도 많다. 이동진 기자는 “기사 분량에 제한이 없으니 취재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재원이 나를 더 신뢰하게 된다. 조선일보라는 매체가 주는 부담감이 사라진 것도 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데스크의 지시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이 꼽는 장점이다. 네이버는 이들의 기사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심지어 교열까지도 스스로 마무리해야 한다. 민훈기 기자는 “남이 교열을 봐주는 데 익숙한 나 같은 사람은 봐도 봐도 오타가 나온다”라며 웃었다.

 

‘해설자 출입증’을 든 ‘정체불명’ 기자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히려 소소한 행정 문제다. 민훈기 기자는 ‘민기자닷컴’이라는 1인 미디어를 만들어 네이버와 계약을 맺는데,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업자등록이니 세금이니 하는 문제에 영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야구장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박동희 기자의 출입증은 ‘기자’가 아니라 부업 격인 ‘SBS 야구해설위원’ 자격으로 되어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의 눈에, 기존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박동희 기자는 ‘정체불명’이다.
 

ⓒ민기자 닷컴,최병성민훈기 기자(왼쪽 사진 왼쪽)는 네이버가 영입한 전문기자 1호다. 오른쪽 사진 왼쪽은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증언하는 다음 블로거 기자 최병성씨.

이들 ‘스타 기자’의 몸값은 얼마나 할까. 한 기자는 “넉넉한 억대는 아니고, 살짝 넘는 억대다”라고 대략의 계약 규모를 밝혔고, 또 다른 기자는 “대기업 과장쯤 된다. 어쨌든 전보다 줄지는 않았다”라고만 말했다. 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존 매체에서 일할 때보다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취재비 등 지출이 느는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아닌 정도다.

“네이버에서도 많이 부담스러워했던 걸로 안다. 기자를 직접 영입하면 포털이 언론 노릇까지 하려 든다는 말을 들을 테니까.” 2006년 2월에 들어와 네이버의 영입기자 1호인 민훈기 기자는 자기가 계약하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네이버는 아직도 기자를 ‘영입’했다는 표현도, ‘연봉’을 준다는 표현도 극구 피한다. 전문기자 네 명과는 콘텐츠 제공 계약을 맺은 관계이므로, 기존 언론 매체가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네이버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 전문기자의 기사는 온라인에서는 오직 네이버에만 실리도록 독점 계약되어 있다. 기존 매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공들여 확보한 스타 기자의 콘텐츠를 다른 포털과 나눌 이유가 없다는 네이버의 태도에서 ‘미디어’로 자리 잡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네이버는 여전히 외부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이런 형태의 전문기자 영입을 조심스럽게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네이버를 뒤쫓는 다음은 같은 목표를 위해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온라인의 새로운 조류인 블로그를 적극 활용해, 네티즌이 직접 취재한 기사를 공급하는 ‘블로거뉴스’가 다음의 무기다. 5월16일 현재 블로거 6만8000명이 ‘기자’로 활동하며 하루에 ‘기사’를 약 3000개 쏟아낸다. 1주일간 다음을 찾는 전체 순방문자 1265만명 중 40%인 511만명이 블로거뉴스를 방문할 정도로 주력 서비스다.

블로거 정광현씨(ID ‘한글로’)는 “내 기사가 다음 첫 화면에 올라가고 하루 20만명이 내 블로그를 찾는 경험은 마약과 같다. 한번 맛보면 누구나 열혈 블로거가 된다”라고 말했다. 첫 화면에 걸린 기사에는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관련 글 수십 개가 ‘트랙백’이란 이름으로 달라붙는다. 소통의 에너지는 가볍게 흘러가려던 ‘뜨내기 손님’의 발길을 붙잡게 마련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다음은 뉴스 부문 순방문자에서 300만명 이상 네이버에 뒤졌으면서도 페이지뷰에서는 오히려 네이버를 40만회 이상 앞섰다. ‘눌러앉아 노는 손님’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다음 뉴스가 충성도 높은 ‘미디어’로 자리 잡는다는 징후다.

블로거 최병성씨. 그는 오프라인에서는 목사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쓰레기 시멘트 전문기자’로 더 유명하다. 2006년 4월부터 무려 2년이 넘도록 폐기물 재활용 시멘트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집중 취재해 거의 1주일에 한 번꼴로 기사를 썼다. 기성 매체에 속한 기자라면 엄두도 못 낼 장기 취재다. 그가 블로거 기자로 뛰어든 것도, 기성 매체가 한두 번 보도한 후에는 추적보도를 하지 않는 모습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은 한번 다룬 문제를 또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한번 두들겨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06년 12월부터 내가 직접 기사를 썼다.” 최씨는 끈질긴 취재를 인정받아 다음이 주는 2007년 블로거 기자상 대상을 수상했고, 환경부의 시멘트 재조사도 이끌어냈다. 미디어다음 열린사용자위원회 이준영 위원은 블로거의 이런 장기 취재를 두고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 저널리즘’이라고 표현했다.

네이버의 ‘스타 기자’와는 달리, 다음의 블로거 기자는 어디서도 기자 대접을 받는 일이 드물다. 정광현씨는 취재를 위해 공공기관에 질문을 하면 무엇 때문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답이 돌아올 때가 가장 막막하단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해보지만, 그 자리에서 줄 수 있는 정보를 몇 주씩 걸려 줄 때가 많다”라고 한탄하는 그는 이 때문에 실제로 기자를 사칭하는 블로거 기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온라인 명예훼손 방지를 위해 도입된 ‘권리침해 신고’ 제도는 블로거 기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게시물에 실명이 등장한 당사자는 블로거뉴스에 명예훼손 따위 이유로 권리침해 신고를 할 수 있고, 이것이 접수되면 포털은 30일간 그 게시물을 열람할 수 없도록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최병성씨는 “한국양회공업협회(시멘트협회)가 한 달 동안 기사 네 개에 대해 연속으로 권리침해 신고를 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명예훼손 소송의 전 단계가 아니라, 일단 기사만 내리고 보자는 식으로 권리침해 신고가 남용된다는 얘기다.

유명한 전업 블로거 월수입 120만원

다음 블로거 기자 중 가장 유명한 축에 드는 전업 블로거 김정환씨(ID ‘몽구’)의 한 달 수입은 120만원 안팎이다. 네이버의 ‘스타 기자’와는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김씨는 “하다못해 취재를 다닐 차비 정도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라며 아쉬워했다. 또다른 유명 블로거 기자는 “네이버처럼 다음이 우리와 소액으로라도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는다면 좋겠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다음의 방침은 한결같다. 다음은 언론사가 아니므로 취재를 직접 지원하지 않으며, 원하는 블로거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자기들 몫이라 본다는 것이다. 다음은 전체 뉴스 트래픽 중 블로거뉴스 트래픽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밝히는 것조차 꺼렸다. 포털이 언론 기능을 한다는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까봐서다. 네 전문기자를 굳이 ‘1인 매체’라 부르는 네이버의 태도와 큰 차이가 없다. 포털은 충성도 있는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미디어’로의 길을 서두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언론’이라는 규정만은 피하고 싶다. 네이버와 다음 앞에 놓인 딜레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